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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May 06. 2021

기억의 조각 1 _ 시애틀(1)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여행을 어떻게 했을까?

2010년 나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었고 전자 사전을 갖고 있었고,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일단 서점에 가서 여행책을 고르며 계획을 짜야만 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리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그때는 또 그때만의 낭만이 존재했다. 

친한 친구들 번호를 외우고 다녔고 친한 친구들끼리는 혹은 연인들끼리는 단축번호로 지정해 두며 0번을 꾹 누르면 나에게 소중한 의미 있는 사람에게 연결되곤 했다. 그때의 낭만이 문득 떠올랐다. 코로나 시국이라 더더욱 그 시절이 그리울 수도 있지만 10년도 더 지난 그때의 기억을 들추어 보니 켜켜이 먼지가 쌓여 있어서 모든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란 너무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냥 사진을 보고 그때 느꼈던 감정 혹은 지금 느끼는 감정을 표현해보자.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에세이가 될 수도 소설이 될 수도 그 중간 즈음이 될 수도 있겠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어차피 객관적일 수가 없으므로 주관이 혹은 상상이 많이 가미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다. 

2010년엔 내가 처음으로 해외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첫 자유 여행은 시애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애틀은 나에게 많이 특별하고 소중하다. 사진들과 함께 그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다르게 굉장히 칼라풀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나는 사람들 속에서 튀지 않도록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지만. 그때의 옷들을 보면 굉장히 다채롭다. 젊음이란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AA에서 산 옷들과 팔에는 초침이 없는 금시계를 뱅글, 팔찌 마냥 차고 다녔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비타민워터를 사랑했다. 꽤 비싼 금액이었는데 비타민워터를 들고 다니면 뭔가 멋이라도 부린 것 같은 하나의 치장 아이템 같은 느낌도 들었기 때문에 액세서리처럼 들고 다녔다. 


이 날은 여행 가기 하루 전이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고 캠퍼스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심심해서 도서관이라도 와서 MP3에 헤드셋을 끼고 책을 보려고 했지만 공부가 전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첫 미국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 바로 내일이 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비타민워터 특히 XXX맛을 좋아했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작동되는 카시오 전자사전과 설정 사진을 찍으며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이날 밤에는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을 보며 여행에 대한 낭만을 키웠다. 운명적인 만남이 시애틀에서 기다릴 것만 같은 그 나이 때의 소녀들이 꿈꿀법한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타고 시애틀로 떠났다. 친구와 시애틀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작부터 불안했다. 친구는 늦잠을 자다가 비행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친구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먼저 시애틀 도심으로 향했다. 시애틀은 여행하기에 정말 깔끔한 동네여서 처음 자유여행이라 무서웠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호스텔은 그린 톨토이즈 호스텔이었다. 여름방학 시즌이라 북적북적한 호스텔에서 우린 심지어 방까지 따로였다. 그리고 심지어 첫 여행인데 믹스동...! 즉 남자방 여자 방으로 구별되지 않은 방이었다. 나는 짐을 들고 떨리는 방으로 배정된 방으로 갔다. 자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남자들도 여자들도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나의 존재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지 않았다. 조금은 안정된 마음으로 캐리어의 자물쇠를 한 번 더 확인 후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호스텔 근처를 조금 돌아보았다. 



스타벅스 1호점이었을 아마도..  호스텔 바로 앞이 퍼블릭 마켓이라 그래도 구경거리가 꽤 있었다. 혼자서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친구가 왔다. 마음씨 좋은 항공사에서 무료로 그녀를 그 바로 다음 비행기로 태워준 것이었다. 친구와 체크인하고 우리는 바로 미국 느낌 물씬 나게 클램 차우더와 웨지포테이토와 클럽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때의 감성이란 대충 찍는 감성이 분명하다.

사진에 흔들림만이 존재할 뿐.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 맥주 거품이 나름 풍만하다. 

클램 차우더는 맛있었지만 그저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맛이다. 나는 웬만하면 모든 음식이 다 맛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감탄하며 그 맛있는 맛과 맥주를 마셨다. 

밤의 퍼블릿 마켓을 뒤로하고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그다음 날은 아쿠아리움과 크루즈를 탔다. 딱, 관광객의 전형적인 코스.

첫 여행이니만큼 돈도 마음도 관광객 모드로 가기로 했다.

아쿠아리움은 누구나 아는 그런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아쿠아리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

이 당시에 나는 사물보다는 인물사진을 중심으로 모든 사진들이 존재하고 있다. 즉, 쓸만한 사진이 없다는 말... 

선착장으로 갔다.

하늘도 맑고 바다도 맑고. 풍기는 냄새가 좋았다.

그만큼 좋았다는 것이다.


날씨가 맑은 기념으로 정말 많은 셀카를 찍었다.

사진의 대부분은 셀카와 전신사진과 셀카다. 모든 것이 인물 위주의 사진이기 때문에 글에 쓰기는 좀 아쉽다. 그래도 크루즈 투어는 항상 느끼지만 한 번은, 딱 한 번만 해볼 만하다. 

감성이 부족한지 특히 이런 시티 크루즈 투어라면 정말 비추이다.

그냥 여행 초심자들이 한 번 해볼 만한 그런 크루즈.

그래도 초심자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이런 것들 위주로 여행책에 쓰여있으니까 유일한 지침서였던 여행 책을 볼 수밖에 없다. 

도시의 모습. 크루즈를 타고 찍었다. 사실 이런 도시 그 자체의 모습은 서울 한강에서 봐도 충분하다. 

지금은 전혀 감흥이 오지 않지만 이때만 해도 신이 나서 저런 비슷한 피사체의 모습들을 열심히 찍어댔다. 그래서 언뜻 보기엔 똑같은 모습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미국에서 먹은 베트남 쌀국수. 

고수 빼주세요. 

"Without the cilantro, please."

이 때는 고수가 뭔지도 모를 때였다. 친구가 너 고수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 나는 고수가 뭐냐라고 답했다. 

친구는 고수를 넣어서 먹는다고 했지만 대부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해서 나는 친구가 말해준 말을 앵무새처럼 읊었다. 친구가 맞았다. 나는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처음 베트남 쌀국수를 먹어봤는데, 베트남 쌀국수도 나의 입맛에는 딱히 땡기는 음식은 아니었다. 친구에게는 소울푸드 그 자체였지만.


이날 무슨 행사가 열렸다. 퍼레이드가 시애틀을 가로질렀는데 그 모습이 신기했다. 에버랜드에서나 볼법한 모습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행사를 우연히 마주하여 기분이 좋았다. 

특히 외국에서 우리나라 기업을 보면 국뽕에 취하곤 하는데 LG 로고를 보는 순간 사진을 찍었다. 

"어맛 저건 찍어야 해"



이날의 쇼는 정말 화려했다. 낮에 시작한 쇼가 저녁에 끝이 났으니까.

화려한 쇼 중간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는데 퍼레이드 도중에 도주자와 경찰 간의 추격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까지도 아직 미국의 총기의 무서움을 모르던 터라 크게 무서워하진 못했다. 뭐든지 경험이 있어야 무서운 법이니까. 

사실 돌이켜보면 꽤 아찔했는데 도주자들 4~5명이 내 옷깃을 스치며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뛰어갔고 그 뒤에 경찰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쫓는 중이었다. 만약 그들이 인질로라도 퍼레이드의 시민 중 한 명을 잡았다면? 꽤 큰 소동이었지만 다행히 무사할 수 있었다. 

LA에서는 밤에 절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사람들이 몇 번이고 강조를 했는데 시애틀은 '잠 못 이루는 시애틀'을 반증이라도 하듯 새벽에 친구와 호스텔로 걸어갔는데도 위험한 일이 없었다. 혹은 무식하면 용감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특히 지금 같은 혐오가 넘치는 때에는 모두 작은 일 하나에도 예민하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때는 갬성이라곤 없어서 꽃을 보고도 우와 꽃이네 라고만 생각하고 지나쳤다.

요즘 해외에 가면 꽃 한 송이라도 사서 호텔에 꽂아두거나 살까 말까 고민하는데 이때의 나는 오 꽃도 파네? 이러면서 지나쳤다. 다시 사진을 보며 가격을 보니까 꽃 가격이 꽤 저렴하다. 저 꽃들 한 다발이 $5.9니까 저 정도면 요즘 꽃다발 생각하면 1/10 가격밖에 안된다는 점.

물가가 오른 건지 아니면 이 시장의 꽃이 저렴한 것인지 문화적 차이인지는 알 수 없다. 


조금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온다. 모래는 전혀 이쁘지 않았다. 이끼가 잔뜩 끼어있고 넘실대는 파도도 한국의 서해를 떠오르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바다를 보는 것은 항상 기분이 좋은 일이다. 바다는 가끔 넘실대는 화조차도 정돈해주곤 한다. 

이 것은 꽤 유명했던 것 같다. 

킹크랩인지를 망치로 쪼개서 먹었던 별미. 

잘은 생각나지 않지만 이 시절에 정말 거금이었다. 다시 보니까 옥수수도 빵도 큼직큼직한 것이 우리나라 아기자기함과는 다른 미국만의 그런 느낌이 있다. 

솔직히 나는 각종 갑각류는 다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왜냐하면 먹는대에 큰 노동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어이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때는 그래도 행복했다. 맥주와 친구와 분위기에 취해있었으니까. 

어떤 소품샵에 들어갔다. LP판부터 각종 각종 신문도 팔았는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날의 뉴스들이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시절의 나는 감성이라곤 없어서 지금의 나였다면 뭐 하나라도 사 오고 간직했을 텐데 아무것도 사 오지 않았다. 아쉬울 따름.

하지만 맥시멀리즘의 현재의 우리 집을 생각해보면 감성이 없었던 내가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들고.

SEATLE'S BEST

시애틀에 오면 시애틀 최고(?) 커피는 맛봐야지.

카페에 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마시는 커피는 꽤 괜찮다. 그래서 다들 창가 자리를 선호하지 않을까.

그리고 잔디밭에서 먹었던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

지금은 하루라도 한식을 먹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 그러나 이 시절의 나는 어리고 어렸기 때문에 서양 음식을 먹어도 괜찮았다. 케첩과 머스터드와 마요네즈가 색감이 괜찮다. 거의 이때 찍은 사진들 중에는 최고라도 말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항상 빠질 수 없는 미국 여행 책.

이 시절에는 정말 여행 책은 여행의 시작이었다. 

여행책,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MP3.

많이 깔끔한 거리와 난해한 나의 옷.

이시절의 나는 정말 다양한 ST로 옷을 입고 다녔구나. 

그래도 지금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개성이 존재하던 때이니까.

그리고 거리도 느낌이 있다. 

새로운 사치.

회전 초밥.

초밥을 좋아하는데 내가 있던 동네에는 회는 찾으래야 찾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올 때면 못 먹은 음식의 한을 풀어야 했다. 양껏 먹진 못했지만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시애틀 여행은 나름 사건들이 꽤 있어서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에 풀어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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