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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을지 Dec 26. 2018

직장 생활_디지털 마케터 1년 차

31세 늦깎이 신입사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입시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었다.

정답이 없는 학문을 정답인 마냥 가르쳐야 하는 현실 속에 큰 부작용을 느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상경하여 제품 디자이너의 길을 택했으나 예상대로 매우 험난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하게 된 스타트업과 벤처회사에서의 직장 생활 동안..

전혀 생각지 못한 마케팅 업무를 병행하게 됐고,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되어 삶의 방향도 바뀌었다.  

30살 나이에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첫 광고대행사에 입사했으나.. 상상과 달리 업무의 99%가 전화영업 이었고, 해당 직무를 1년간 하다가 퇴사했다.

난 진짜가 되고 싶었다. 진짜 마케터. 그래서 내 다음 행선지는 아이보스였다.



아이보스 신입사원 시절.


1. 네 번의 도전 끝에 아이보스라는 곳에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그 당시 31살. 회사는 나에게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나만 빼고 다 바빠 보였다. 근데 난 첫날부터 야근을 했다. 참 미스터리다. 대체 왜 그랬을까.


2. 사실 이것보다 더 놀라웠던 건.. 입사 첫날 사무실에 왔는데 아무리 봐도 내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직원분들도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봤고, 난 일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때 마침 면접을 보셨던 지금의 본부장님이 내 얼굴을 보면서 한말이 여전히 생생하다.
"아... 참, 오늘이었구나.."


3. 매주 화요일 오전 9시마다 진행됐던 선임들의 클라이언트 마케팅 성과보고와 브리핑. 다들 그 브리핑 준비와 발표에 스트레스받으며 힘들어했지만 난 그런 스트레스는 전혀 없었다.
뭘 알아야 스트레스라도 받든 말든 하지.


4. 입사와 동시에 신용성 대표님의 첫 마케팅 서적이 출간됐다.
이 책을 읽고 숙지하면 대표님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언젠가 인정받는 선임으로서 일할 수 있으리라~라는 상상은 일주일째 30페이지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날 보면서 조금씩 희망에 균열이 갔다.


5. 누군가 도움되라고 펴낸 책 한 권 이해하지 못하고, 매주 브리핑 때마다 듣기 평가하는 기분으로 출퇴근 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첫 월급이 들어왔다. 어렵게 입사했지만 퇴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일하면서 받아도 되는 건가.. 란 생각 때문에.


6. 그러던 찰나, 다른 대행팀 팀장으로부터 콜업을 받고 고객사 마케팅 업무를 서포트 하기 시작했다. 일별 데이터 취합, 리포트 작성, 바이럴 콘텐츠 작성 등 단순 반복되는 데일리 업무들. 신입이었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업무들이었다.


7.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선임들의 말과 팀 메신저의 이야기들과 고객사에서 온 요청 메일과 대표님이 쓰신 책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봤다. 슬슬 조금씩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알아가는 짜릿함이란... 참 달콤하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그 당시 자괴감을 느낀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후임들 모두였다는 걸.
대표님이 이 글을 보면 맘 아프겠지만 그 책, 우리 직원들 중 읽은 사람 몇 안된다.

왜 그런지는 한번 읽어보면 금방 안다.


8. 머지않아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광고 툴을 다루며 이것저것 세팅도 하고, 분석도 하며 실무력을 키울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들 때 즈음, 고객사 병원의 급격한 매출 하락으로 인해 경영적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때 난 팀장으로부터 소방수 역할을 부여받아 명함 한 장 들고 외부 제휴업무를 하러 다녔다. 내키지가 않았다.


9. '아.. 역시 난 회사에서 버리는 카드인 건가' 이런 업무를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난 언제쯤 다른 사람처럼 광고 툴을 다룰 수 있을까. 그때만 하더라도 마케팅이란 업무는 광고를 잘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해보기도 전에 내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하는 데 까지 해보고 안되면 그때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10. 총 5군데의 크고 작은 공공기관과 대기업과의 제휴를 성사시켜 해당 시즌에 나올 수 없는 매출을 만들어냈다. 아직도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 폭발적인 고객 문의로 인해 상담 전화가 원활치 않았던 그때.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 걸 알면서도 병원을 살려줘서 고맙단 말에 그간의 노고와 여독이 사르르 녹았다.


11. 결과만 보면 대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난 약 4개월 동안 저 업무만 했었고 5군데의 기관과 제휴를 맺기 위해 컨택한 기관은 120군데가 넘었다. 잘한 것보단 무식한 게 가까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메일보단 유선통화가, 그리고 전화보단 대면 미팅이 압도적으로 성사율이 높다라는 걸 알았다. 혹시라도 여전히 파트너사를 물색 중에 여러 메일 주소를 취합하고 있는 담당자가 있다면 당신이 쓴 메일 제목을 보기도 전에 휴지통으로 간다고 보면 된다.


12. 신입 시절 제일 힘들었던 건 내가 과연 성장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처음부터 주로 외근을 많이 해서인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선임과의 대화에서, 혹은 팀 내 소통하는 사이사이 서로 웃고 떠드는데..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될 때마다 몹시 힘들었다. 뭔가 나만 동떨어진 기분은 언제나 별로다.


13. 어떻게든 그 속에서 융화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때부터 꽤 오랜 기간 동안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선임의 의도를 곧바로 이해하고 싶었고, 선후임 동료들과의 대화에 잘 섞이고 싶어서.


14. 그렇게 어느덧 입사한 지 10개월쯤 됐을 때 내 윗 선임과 팀장이 퇴사를 하면서 엉겁결에 팀 내 최고 선임이 되었다.
당연히 내 의도완 상관없는 상황이었고, 그 당시 나를 포함하여 우리 팀원은 총 2명이었다.
두려웠다. 많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속 편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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