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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을지 Dec 30. 2018

직장 생활_디지털 마케터 2년 차

준비 안 된 팀 내 선임

아이보스 2년 차 시절_난관


15. 차례로 선임과 팀장이 이탈하면서 너무 급작스레 팀 내 최고 선임이 되었고,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 2명이었으며, 내 후임은 나보다 더 많이 불안해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별 일 아닌 척 침착함을 보여줬다. 한 번만 날 믿고 따라와 달라고 했다.
적절한 허세는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


16. 그래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내 앞에서 펑펑 울더라. 사실 그 친구도 다른 팀에 있다가 힘들게 우리 팀으로 합류한 경우라서 더욱 심경이 이해가 됐다. 이해가 되면서도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내가 충분한 역량을 갖췄더라면 저렇게 불안해 하진 않을 텐데.'
그냥 미안했다.


17.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첫 째, 우선 기존 고객사의 계약을 최대한 유지시키는 것.
둘째, 나와 팀원의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
셋째, 당분간 그 허세를 유지하는 것.


18. 끈끈한 전우애는 놀라웠다. 안 지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우린 매일 야근의 연속이었고 이탈된 고객사가 한 곳 있었지만 나머지를 유지하면서 선전했다. 얼마 뒤엔 고객사 중 한 곳을 업계 1위로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는데 고객사의 탁월한 사업수완과 손 빠르고 일 잘하는 내 후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잘한 거라곤 월별 미팅과 리뷰를 마치고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3차까지 센 척하다가 기특하게 집에 들어와 신발장 근처에서 잠이 드는 일.


19. 팀 인원이 2명밖에 되지 않을 경우의 장단점은 명확했다.
장점: 둘 다 실무를 하다 보니 빠른 의사소통과 실행이 가능하다.
단점: 둘 중 한 명이 아프기라도 하는 날엔 X 된다.


20. 잘 나가던 고객사의 매출 정체가 찾아왔다. 매출이 제 아무리 수직 상승하더라도 언젠가 정체는 오기 마련이다. 모든 서비스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따르며 내가 뛰어든 시장 범위 내에서 또 다른 대체재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래서 마케팅은 점유율의 싸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고객을 최대한 잠식/흡수할 것인가 시장 자체 파이를 키울 것인가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걸 결정하는 시점은 더 중요하다.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21. 그래서 클라이언트들은 더 좋은 광고 채널, 새로운 매체, 효율 좋은 마케팅 기법 등에 목말라있다. 그리고 요구한다.
“지금 하고 있는 거 말고도 또 다른 좋은 제안 없나요?”
난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이제야 실무다운 실무를 하게 된 내가 뭘 어떻게 제안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그동안 난 뭘 한 걸까. 현타가 왔다.


22. 준비 안된 상황에서 다가온 ‘선임’의 자리는 예상대로 무거웠다. 특히 고객사와의 의사소통이나 외부업체로부터 새로운 광고 상품을 소개받을 때 난 모르는 게 있어도 적당히 아는 척을 해야 했다. 이 지점이 많이 힘들었다. 그 당시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아는 게 많았기 때문에.


23. 모르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못은 아니다.
꼴에 선임이라고.. 나의 무지함 때문에 몸담고 있는 내 회사가 저평가되진 않을까. 그게 너무 조바심 나고 신경 쓰였다. 나에게 아이보스는 그런 곳이었다.


24.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 중 신입사원, 혹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똑똑히 말해주고 싶다.
“괜찮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세요. 상대방은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을 뿐 당신의 지식수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25.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
자칫 이게 습관이 되고, 경력만 쌓이다 보면 그땐 정말 몰랐을 때 솔직해지기가 더욱 힘들다. 그래서 신입사원, 후임 시절엔 정말 잘 배워야 하고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선임을 귀찮게 하더라도,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일 지라도 신입의 패기로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시절이 그 시기이다.


26. 물어볼 사람도, 사수가 없다는 것도 많이 답답했다. 지금처럼 아이보스의 다양한 실무교육이 그 당시에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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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여기저기 물어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해결 안 되는 부분은 아이보스 게시판에 물어봤고, 거기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주변 지인을 통해 외부 전문가를 만나서 물어봤다. 한 번은 대형 랩사에서 근무한 경력자 분을 소개받아 이것저것 물어볼 심산으로 퇴근 후 곧장 명동으로 향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만나서 한 시간 반을 이야기했는데 그때 알았다. 아는 게 너무 없으면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28. 하지만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핸드폰에 녹음을 해뒀다.

왠지 모를 안도감.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며 이어폰을 꽂는 순간 그때 알았다.
아까 녹음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걸.
나와 GDN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9. 나보다 선임이고 상사라고 해서 내가 모르는 걸 다 알 수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서 선임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강의를 하면 할수록 가장 큰 수혜자는 수강생이 아닌 나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구에게 경험과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내가 일단 확실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30. 이 말은 좋은 선임이 후임을 올바르게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있듯, 좋은 선임을 만드는 것 역시 후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나를 그나마 이렇게 사람 구실 하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그간 나와 함께 일한 후임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혼자선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준비 안된 선임이 팀원 빨로 하루하루 연명하다 보니 어느덧 팀원이 한 명 씩 늘어나면서 제법 팀에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고, 난 또 다른 도전과 고민에 부딪쳐야 했다.

(다음 편에 계속..)




이 글은 시리즈형태 입니다. 처음부터 보고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brunch.co.kr/@captain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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