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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을지 Feb 18. 2019

직장 생활_디지털 마케터 3년 차

초임 팀장 시절

입사 3년 차, 난 좋은 상사가 되고 싶었다.  


31. 여자 셋, 남자 하나. 이렇게 4명이 한 팀이 되었다. 분명 나 신입 때 우리 팀은 죄다 남자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2년이 지난,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 팀은 나 빼고 죄다 여자였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지났고 날 편하게 대하던 후임들은 종종 나에게 언니라고 불렀다. 가끔 머리와 손톱을 좀 길러야 하나... 생각이 들더라.


32. 물론 그전에 몇 명의 남직원과 여직원이 거쳐갔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스쳐 지나간 후임 중 임팩트 있는 녀석이 있었는데 입사 첫날부터 꾸준히 업무시간에 웹툰을 보더라. 사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딱히 시킬 것도 없었고 어떻게 하는지도 보고 싶었으니까. 며칠간 지켜본 결과 생각보다 매우 규칙적이고 일관성 있는 녀석이란 걸 알았다. 넓은 어깨를 들썩이며 보는 뒷모습 까지도.


33. 보다 못해 4일째 되는 날 내가 사람들 많은 데서 한마디 했다. “ㅇㅇ씨!! 지금 뭐 봐요? 그게 그렇게 재밌어요?” 그때 날아온 답변이 지금도 생생하다. ”팀장님 이 웹툰 몰라요? ㅎㅎ 정말 재밌어요~ 꼭 봐보세요.ㅋㅋ”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난 그녀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심심하지 않을 안주로 그때를 회상하며 함께 술 한잔 하는 사이가 되었다.


34. 회사 생활 3년 차로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정색이란 걸 해봤다.

어느 고객사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었는데 후임의 의사소통 실수로 모바일 사이트를 거의 공짜로 만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후임은 실수를 책임지기 위해 별다른 보고 없이 고객사에 직접 소통하며 이야기를 번복했고 난 분노했다. 내가 화가 난 지점은 실수 자체가 아니라 해결 방식의 문제였다. 책임감을 앞세워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혼자서 움직이려는 모습이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였기때문. 조직에서 상급자와 부하직원이 존재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35. 난 어려서부터 화를 내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쾌활하고 발랄하고 짓궂고, 나를 통해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간혹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문제는 어느 순간 난 항상 유쾌한 사람이어야만 하고, 화를 내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조직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보다 포용하는 범위가 꽤 넓은 편인데 임계치를 넘어서면 모든 것이 마비된다. 주변에 불편한 기류를 주는 것. 그리고 내 업무가 마비되는 것. 그게 싫어서 어지간하면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이것 또한 내 속을 갉아먹는 감정 소모이므로 보다 더 현명한 방법을 부단히 찾고 있다.   


36. 초임 팀장의 행운이라고나 할까. 신규 클라이언트가 점점 늘어나고, 팀 매출도 가장 우수했다.

따라서 직원이 더 필요했고, 내가 처음으로 이력서 검토부터 면접까지 참여한 최초의 인재 채용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 여기가 첫 직장이라는 신입사원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르쳐줘야 하나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역시나 일하는 내내 질문의 연속이었고, 나중엔 환청까지 들릴 정도. 하지만 난 정말 즐거웠다. 더 잘하고 싶은 신입의 패기가 느껴져서 기특했고, 하나를 알려주면 항상 나에게 그 이상을 보여줬으니. 그 신입은 내가 디렉팅만 잘하면 무섭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동안 매주 1~2일씩 퇴근 후 시간을 할애해 실무 교육을 해줬는데 내가 지금까지 봤던 모든 신입사원들 중 노력의 양과 질이 달랐다.  

참고로 그 직원은 현재 우리 사업부의 운영 팀장이 되었다.


37. 입사 후 3년 가까이 난 아이보스에서 예스맨이었다.

지금 내가 회사에서 하는 걸 보면 아무도 안 믿겠지만 정말 그랬다. 팀장이 돼서도 대표님이 무언가 미션을 주면 대부분 예스를 외쳤다. 내 상황이 어떻든 간에 못하겠다는 말을 죽어도 하기 싫어서. 그래서 어떻게든 항상 부딪쳐 보려는 식이었는데 이게 반복될수록 죽어나는 건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이라는 걸 알았다. 한 번은 내 바로 밑 부하직원이 따로 나를 불러 따끔하게 이야기하더라. "팀장님~ 적당히 눈치껏 좀 하세요.. 대표님 이야기한다고 해서 제일 먼저 손들지 말고, 아무거나 다 그냥 넙죽 받아오지도 말고 좀..!!"

참았어야 했는데.. 후임한테 이런 소리 듣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한 소리 하고 말았다.

"알겠어 다음부터 진짜 안 그럴게"  


38. 돌이켜보면 미숙한 팀장으로서 가장 후회되는 게 2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과잉보호.

난 내가 맨땅에 헤딩하면서 하나 씩 올라온 과정이 모두 소중하지만, 아까웠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기 때문에 내 후임들은 그러한 기회비용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했다. 좋은 취지로 세심하게 알려주려 노력했고, 낯선 땅을 밟을라치면 내가 손수 첨병이 되어 길잡이가 되려 했다. 그때만 해도 난 그게 좋은 리더십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겐 또 다른 인사이트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때론 넘어질 때 스스로 일어나는 힘이, 지름길을 아는 것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린 이미 모두 성인이다.  


39. 또 하나 가장 후회되는 것은 팀원들에게 다양한 역량을 쌓도록 채근했던 것.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다른 역량도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내 욕심이란 걸 인정하는 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각자 잘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을 찾아내어 전체를 맞추는 게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고, 성향이 다르듯 각자 잘하는 걸 더 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마치 잘 팔리는 상품을 더 잘 파는 게 중요한 것과 비슷하다.


40. 착한 상사가 되고 싶냐, 좋은 상사가 되고 싶냐?라고 묻는 다면 난 좋은 상사가 되고 싶었다.

권위를 앞세워 후임을 힘들게 하거나 부당한 일을 지시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움받을 용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불행히도 난 그 둘 사이 애매한 선상에 있었던 것 같다. 후임들에게 항상 착하고, 편하고 따뜻한 선임으로 기억되면 좋겠으나 조금 재수 없고 덜 편하더라도.. '그래도 저 선임처럼 되고 싶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미움받을 용기. 그거 정말 쉽지 않지만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수 틀리면 그냥 직장 내 왕따로 가는 지름길이 될테니까.


41. 학교와 직장이 다른 점이 있다면 학교는 돈을 주고 다니지만 직장은 돈을 받고 다닌다.

다시 말해 학교는 내가 돈을 주는 대신 배움을 통해 견문을 넓힌다면, 직장은 내가 월급을 받은 만큼 그 이상의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간혹 직장을 학교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배우기만 하기엔 직장이란 곳은 냉정하다. 혹시라도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 중 신입사원이 있다면 회사에선 반드시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맡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과 공부는 업무 외 시간에 하는 게 맞다.

만약 마케팅 업무를 하는 신입사원인데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분이 있다면 그에 맞는 외부 교육 수강도 좋은 방법이다.  


42. 자랑할만한 일은 아닌데 난 입사 후 3년 넘도록 11시 전에 귀가한 날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나아지긴 했으나 크게 다르진 않다. 월요병 따위는 1도 없었으며 심지어 너무 일이 하고 싶고 팀원들도 보고 싶어서 주말 중 하루는 회사를 가는 경우가 꽤 많았다. 미친놈 같아 보이겠지만 그냥 재밌었다. 내가 무언가를 몰두하며 노력할수록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는 일들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늦게 귀가하는 건 일이 많아 야근하는 것도 있지만 업무시간에 감히 하지 못하는 호기심을 해소하는 데 야근만큼 좋은 소스가 없다. 야근하면 구내식당에서 공짜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고속 성장과 계단식 성장이 있었던 것 같다.

신입사원 기준으로 초반 어느 지점까지는 우상향 직선의 형태를 띤 고속성장을 보이는데, 임계치에 다다르면 그때부턴 계단식 성장을 보이게 된다. 이때 우리는 보통 슬럼프, 정체기 혹은 매너리즘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도 일정 이상 수준에 도달한 경우에나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즐겁게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으로 전진하면 된다.


43. 아이보스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매우 놀라웠던 점은 내 삶의 일부였던 '축구'라는 취미생활을.. 평일 저녁 시간대에 하는 팀으로 옮기면서까지 주말에 회사를 나갔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간 팀은 '농심' 본사 축구팀이었는데 사내 직원이 아니었음에도 긴 장문의 입단 희망서를 작성하여 결국 함께 뛸 수 있게 되었다. 100% 출석률 덕분에 난 거기서 가장 성실한 선수로 칭찬받았고, 종종 새로운 기수의 신입 남직원들이 팀에 합류할 때마다 자꾸 나에게 '선배님 안녕하십니까~'라고 크게 인사를 했다. 첨엔 난 여기 직원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며 인사했지만 나중엔 이것도 너무 귀찮아서 그냥 쿨 하게 대답했다.

"부서 배치됐어요? 재밌게 잘해봅시다~"


44. 전에 다녔던 영업 기반의 광고대행사와 달리 아이보스는 관리 기반 회사였기 때문에 광고주들 기대가 큰 편이었다. 더욱이 대표님의 인지도와 브랜딩이 상당해서 광고주들의 막연한 기대치를 채우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한 번은 신규 광고주 문의 중 나에게 이런저런 요청을 하다가, 내가 초임 팀장이라는 걸 알고 난 뒤부터 대표님 이름을 거론하면서 자꾸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그래서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럴 거러면 그냥 저희 대표님한테 직접 광고대행 맡겨주세요. 하지만 결국엔 저와 다시 이야기하게 될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대표님이 그 사람보다 나를 더 믿어줄 거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45. 초임 팀장의 팀원 업무 분장은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업무를 던져줘야 하나.. 이게 최선일까. 생산성이 정말 높아질까 등등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하지만 누구든 팀장이 처음이었던 것처럼 그들 역시도 내 후임으로는 처음이었다. 회사 내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고의 업무 분장은 서로 간 솔직한 대화와 배려다.


'이건 내가 해볼 테니 나머지 것들에서 역할을 분배해보자'

'제가 전에 해왔던 거니까 그냥 그것도 제가 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요'

'해본 적은 없지만 조금만 가르쳐 주시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안되면 같이 하면 되니까 해보고 버거우면 이야기해줘'


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고 그들의 팀장이었다.

(속편은 다음에..)




이 글은 시리즈형태 입니다. 처음부터 보고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brunch.co.kr/@captain10/1

https://brunch.co.kr/@captain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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