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마케터로 일하는 중입니다
1. 나에겐 제법 큰 도전이었다. 아름다운 이별과 새로운 시작이 맞닿아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6개월이 지나있다. 다행히 안 잘리고 붙어있는 걸 보면 아직 쓸만한가 보다.
2. 위계 조직이 아닌 역할 조직 구조에서 내가 맡은 ROL은 너무나 명확했다. Lead Generation(고객 리드 생성) 증대와 CAC(고객 획득비용) 안정화. 퍼포먼스 마케팅에선 국룰 같은 목표다.
3. 물론 '목표'라는 건 수치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얼마나 더 많은 고객 리드 생성과 얼마까지 고객 획득비용을 낮출 것인가. 현실 타당성을 검토하다 보면 자연스레 how가 뒤따라온다.
4. 중요한 건 '현실 타당성'의 기준인데 그간의 누적 데이터나 히스토리가 빈약하면 안타깝지만 지금에서라도 테스트하며 새 출발 해야 한다. 마음이 조급하여 자꾸만 직관에 의존하면 개인과 회사 모두에게 남는 자산은 시간이 지나도 0에 수렴한다. 그리고 나름의 metrics를 가지고 있어도 어차피 의사결정 단계에서 직관이 버무려질 수밖에 없다.
5. 미디어 별 직접 & 지원 전환 기여도와 전환 비용, 트래픽 품질을 판단하고 미디어 믹스를 다시 구성했다. 엄밀히 말하면 미디어 별 예산 재배치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CAC를 기존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트렸고, 최근 한 달은 3분의 1 수준까지 내려왔다.
6.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건 미디어 믹스 최적화, 광고 성과에 더 가깝다. 궁극적인 마케팅 성과는 대폭 절감된 CAC 이상으로 실 결제율에도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안착돼야 한다.
7. 이 과정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고객 유입부터 전환 프로세스까지의 과정 위에 내부 업무 파이프라인을 얹혀 놓고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지점과 튀는 숫자들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문제 되는 구간들이 발견되는데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문제 원인을 파악하는 접근 방식과 범위이다.
8. 예를 들어 고객 리드가 충분한데 실 계약률이 낮다면 수치상 표면적인 원인은 영업력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알고 보니 애초에 관여도가 낮은 고객들이 상당수였다면 이는 유입 품질 문제에 가능성이 있고, 거슬러 올라가 미디어 믹스의 아쉬움이나 랜딩페이지의 불친절함, 혹은 서비스 경쟁력 그 자체일 수도 있다.
9.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과값(수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봐야 한다는 뜻인데 결국 이는 전체를 볼 줄 아는 시야와 논리가 필수 덕목이라는 점. 더불어 민감한 이야기를 건드려야 하는 상황 속에 부드럽고 섹시한 의사소통의 스킬도 필요하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대행사와 인하우스 마케터의 대립관계, 혹은 내부 부서 간의 이해관계가 종종 목격된다.
10. 일 하는 동안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게 고객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 가령, 우리 서비스의 BM은 크게 A와 B 두 가지인데 A에 대한 관심도가 B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그 이유는 당연히 A의 수요가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1. 하지만 방문 유저의 페이지 별 트래픽, 이동 경로, 문의 유형 등을 고려했을 때 고객에겐 당장 A가 선결 과제였고, 보다 구체적인 상담 응대 과정을 거치고서야 고객이 B에 대한 필요성을 자각했다. '고객은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하지?'라는 질문보단 '고객에게 더 많이 물어보고 더 많은 피드백을 받아야지'라는 건실한 다짐이 필요하다. 때론 대시보드에 찍히는 데이터와 그래프보단 필드에서 벌어지는 날 것의 대화에서 A-ha Moment가 발생된다. 아주 중요하다.
12. 우리가 잘하는 게 아닌 고객이 불편해하는 것에 더더욱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우리의 '고객'으로 볼 것인가가 위 11번보다 200배는 더 중요하다.
13. 서비스 업종이나 시장 내 경쟁 정도에 따라 당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신규 유저 확보, 아니면 상품 가짓수, 아니면 구매 전환율, 혹은 재구매율 등등이 있을 텐데 동시에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정말 어렵다. 우선순위를 알고 집중하는 게 좋다. 이걸 잘하기 위해 7번 항목을 참고하면 되는데 보통은 KPI(핵심 성과지표)라고 한다.
14.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스팟성 테스트가 뒤따른다. 결과적으로 내가 무엇을 보고자 함인지 그 데이터들을 보려면 어떤 metrics를 준비해야 하는지 사전에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가설을 세운 배경과 신뢰할 수 있을만한 데이터 모수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실험을 위해 자원을 지원하고 용인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15. 힘든 시국임에도 땀나도록 뛰어다닌 C레벨분들과 크루분들 덕분에 몇 달 전 회사가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 생존 기한이 좀 더 늘어났을 뿐 성장을 담보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서비스가 사랑받는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까.
몰입하며 달려와보니 6개월이 뚝딱 지나있고, 지금은 새해가 되었다. 종종 좋은 글들을 읽고, 내 생각도 공유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다기 보단 목전에서 에너지가 방전되는 느낌.
작년 한 해는 모두에게 힘든 1년이었고, 올 한 해는 계획 따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걸로. 행복하자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