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솔로프리너의 2025년

등대를 꿈꾸는 시간

by 조을지

1. 사업자 등록

- 솔로프리너를 선언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아직 생존 중인데 사실상 절반 이상은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어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체감은 한 80%..?) 3개월 단기 계약으로 시작한 포티파이에서 인연은 곧 2년을 앞두고 있다. 별 의미는 없지만 작년 2월 '그로스 마그넷'이란 이름으로 개인 사업자를 냈는데 세금 문제가 아니라 자기 선언에 가까웠다. 시장에 내던진 나의 역할과 방향에 더 분명한 의도를 두고 싶었다.


2. 인프런 신규 강의 개설을 준비했으나 런칭 실패

- 연초 인프런에서 온라인 강의 개설 제안이 왔지만 결과적으론 지금 하고 있는 업무의 밀도와 역할 확장으로 인해 계획대로 오픈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됐다. 그래도 인프런이 기억에 남는 건, 담당자가 바뀌어도 제안이 계속 왔다는 점이다. 비즈니스에서 타이밍은 운이지만, 빈도는 실력이다. 컨트롤할 수 있는 건 결국 '얼마나 자주 노크하는가'였다. 아이보스 퇴사 이후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의리(?)를 들먹이며 정중히 고사했던 난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각 잡고 신규 강의를 새로운 곳에서 오픈해보려고 했다. 아이보스 교육 사업을 이끌었을 당시, 동일한 콘텐츠로 다양한 곳에서 교육을 펼치는 강사님들이 이해가 되면서도 운영자 입장에선 모객이 쪼개지고, 개인 브랜딩에 어시스트만 하는 상황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좀 씁쓸했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3. 그로스팀으로 팀 역할 확장

- 웨이마크 서비스를 담당했던 우리 팀은 2분기 시작과 동시에 웨이마크 외에 업피플 서비스 성장에 기여하는 그로스팀으로 역할이 확장되었다. 전사적으로 힘을 모아야 하는 시기였지만, 이상하게 반감이 먼저 들었는데 근인을 들여다보니 쓸데없이 웨이마크에 애정을 쏟아버린 탓이었다. 어차피 난 회사의 문제를 풀러 온 사람인데, 언제부턴가 특정 서비스에 감정을 실고 있었다. 다행히 금세 정신을 차렸고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


4. SEO/AEO의 시작

- B2B 서비스는 대부분 리드타임이 길며, 브랜드 인지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시장 내 후발주자는 늘 한정된 리소스로 속도와 경쟁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겪는다. SEO는 '하면 좋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 어딘가에서 늘 미뤄진다. 단기 성과도 없고, 기여도 불투명하니까. 모두가 하면 좋은 거고,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대부분 시작도 못하거나 시작하더라도 상당수 얼마 못 가 힘을 잃는다. 기여성과로 추적하기 전에 애초에 원하는 검색어로 노출부터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조직은 달랐다. '심리적 안전감'과 경영진의 '신뢰' 덕분에 자사 블로그를 개설했고, 나의 자원을 SEO/AEO에 투자할 수 있었다. 결과가 조금씩 올라오는 중인데 생태계가 변화무쌍 하다보니 녹록지 않다. 언러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포인트.


5. '국내 리더 번아웃 실태조사' 리포트 발행. 그리고 업피플 웹사이트 리뉴얼

- 3분기는 물리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8~9월, 새벽 1시 전에 집에 들어간 날이 손에 꼽았다. (나 때문에 고생한 팀 동료 리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와 미안함을 전합니다. 올해는 아마..음..)

'국내 리더 번아웃 실태조사' 리포트 발행과 업피플 웹사이트 리뉴얼. 두 프로젝트는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안 하면 안 된다'의 성격에 가까웠다. 웹사이트 퍼널 전환율에 문제가 컸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선 서비스가 더 직관적이고, 더 전문성 있고, 필요한 내용을 더 잘 보여줘야 했다. '업피플'의 경우 도메인 특성상 시즈널이 존재했는데 4분기는 비수기지만 기업들의 내년도 사업계획이 세워지는 시기라서, 그들의 플레이리스트에 우리가 포함되려면 어떻게든 3분기 안에 매듭을 지어야 2026년 상반기에 결실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10월 말, 계획보다 조금 늦게 런칭했는데 아직 마이너한 유지/보수 작업이 남았지만 올해 상반기를 통과할 즈음이면 비즈니스 임팩트가 있는 액션이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AI가 없었다면 이 기간에 소화해 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6. 우연히 알게 된 나의 마음인지력

- 작년 8월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기면서 씁쓸하다. '국내 리더의 번아웃 실태조사' 리포트를 만들면서, 나 자신에 대해 몰랐던 걸 알게 됐는데 나는 마음인지력이 매우 낮은 사람이었다. 크런치 모드로 일해도 번아웃을 느끼지 못했던 건,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내 상태를 잘 캐치하지 못해서였다. 일하는 입장에선 축복일까, 저주일까. 사회초년생이었다면 가스라이팅 당하기 딱 좋은 자질이다. 요즘엔 타인의 목소리보단 내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7.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교육 활동

- 올해엔 틈틈이 외부 강의도 병행했다. 스타트업 대표 및 현업 대상으로 기업교육 4회, 마케터 취준생 대상으로 5회, 마케터 실무자 대상 밋업 1회. 총 10회의 외부 강의를 했다.

늘 가장 힘든 대상은 취준생이다. 유익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 하니 에너지 소모가 몇 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많이 배우는 대상이기도 하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고의 제한이 없고, 질문이 뻔하지 않다. 시각이 남다르고, 어떨 땐 영감마저 얻는다. 무엇보다 비기너들에게 똑바로 가르치지 않는 건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짓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사전에 내 것으로 온전히 흡수하는 좋은 재료가 된다.

내가 경험한 것들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어 진정성 있는 감사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게 얼마나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좋은 기여자로 이끌어주는지.


8. 25년 화두는 단연 AI

- 2025년 화두는 단연 AI였다. 'AI 시대'라는 말이 노이즈처럼 느껴질 지경이지만, 새로운 물결은 늘 그래왔다. 수용하는 자와 부정하는 자 사이의 격차를 잔인하게 벌려왔다. 작년 한 해, 내 업무의 60% 이상은 AI와 함께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놀라움이 커지는 한편, 나의 여백을 AI에 의존하는 듯한 불편함도 공존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실질적 경험을 가진 영역에서 프롬프트를 작성할 때는 리턴 받는 퀄리티가 확연히 달랐다.

결국 중요한 건, 난 무엇을 어디까지 해봤는가. 충분한 맥락 속에서 내가 원하는 의도를 잘 다운로드할 수 있는가로 귀결되었고, 나의 오리지널리티가 곧 AI 활용 리터러시라는 걸 깨달았다. AI는 분명 좋은 도구다. 포크로 쓸지, 이쑤시개로 쓸지는 온전히 나의 역량이다.

기업도 비슷하다. 이젠 개인의 생산성을 넘어 조직의 워크플로우를 얼마나 개선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우리가 하는 일을 노드 형태로 나열했을 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AI를 활용할지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우리 일의 대부분이 서로 합의된 명세의 데이터로 축적되어 있어야 하고, 비즈니스 임팩트를 위한 아키텍처 설계와 기획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게 결국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9. 인턴의 합류와 정규직 전환

- 현재 조직엔 3명의 인턴이 있었고, 3명 모두가 작년 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이 중 2명은 대학 졸업 후 첫 회사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한 명은 학업과 회사 일을 병행하는 중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인턴들이 좋은 경험은커녕 충분한 시간을 부여받지 못한 채 3개월 혹은 6개월 내로 계약이 종료된다. 인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고용자는 굳이 모험을 하면서까지 불확실성에 투자할 이유가 없고, 피고용인은 신입 채용이 없으니 어떻게라도 경험을 쌓아야 하는 구조다. 솔직히 난 Z세대고 뭐고 잘 모르겠다. 인턴 채용도 타협하지 않고 충분히 좋은 사람을 뽑아 의미 있는 역할을 주면 어지간한 주니어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된 3명의 인턴들, 똑똑한데 인성도 훌륭하고 일도 잘한다. 이 분들이 경험할 첫 직장과 동료들. 그리고 각자의 커리어에 나 역시 의미 있는 도움이 되기를.


10. 불쑥 찾아온 노안

- 100세 시대라지만, 골골 100세면 뭐 하나. 얼마나 건강한 심신으로 살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이가 80세라면, 난 이제 반환점을 지났다. 양쪽 시력이 정말 좋았는데, 언제부턴가 안경 없이는 가까운 게 잘 안 보인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수면이 부족하면 코와 입술에 수포가 생기고, 열정만으로 몸을 끌고 가기엔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30여 년 루틴으로 지켜온 주 1회 축구도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때마다 알량한 승부욕이 튀어나온다. 열정도 체력이 뒷받침돼야 꺼내 쓸 수 있다. 건강에 더 신경 쓰자.


11. 반쪽짜리 솔로프리너

- 한 해를 정리하고 돌아보니 3개월 단기 계약으로 시작한 이곳에서 이제 별도 계약기간 없이 2년째 일하고 있다. 드문 드문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신분은 3년 차 솔로프리너이지만 절반 이상 직장인과 다름없어서 "와~ 지금까지 생존중이시면 대단하시네요'라는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면 자신 있게 "네"라고 말을 못 하겠더라. 한 2년 전쯤부터 앞으로 회사들은 점점 전통 방식의 근무 형태를 벗어나 더 타이트하고 기민한 조직을 꾸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직 내가 생각한 변화의 크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같은 입장이다. 중요한 건 조직과 사람 간의 기대치 세팅인 것 같다.


12. 어떻게 살 것인가

- 2025년은 나에게 '증명'과 '질문'의 해였다.

업무적으론 목표 달성을 위해 몰입하고, 증명하려 했지만 개인적으론 삶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나의 쓸모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떨 때 행복감을 느끼는가.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정답은 없는데 간혹 이건가?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삶의 과정에서 작고 잦은 기쁨들이 나를 지탱한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

내 삶에 거창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 줄 아는 것

본능적으로 마주하는 '감정'은 어쩔 수 없어도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선택할 수 있는 것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무력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다.


예전엔 많은 이들에게 반짝이는 별처럼 높게 빛나는 영광의 순간들이 멋져 보이고 대단해 보였다.

지금은 필요한 이들에게 늘 같은 위치, 일정한 높이, 일정한 조도로 불을 밝히는 등대 같은 사람이 진짜 진짜 대단하게 느껴진다.


멀었지만 그렇게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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