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똥이라도 되었으면.

횡설수설 칼럼

by 가가책방

어제 한 권의 책을 읽다 결국 미적거리며 덮어버린 일이 있었다.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끄적여 본다.


한 일 년쯤 종이를 끼니처럼 끼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도 읽고, 점심에도 읽고, 저녁에도 읽었다.

어떤 날은 자기계발서를 읽었고, 어떤 날은 소설을 읽었으며, 어떤 날은 인문서라는 이름이 붙은 책들을 두루 읽기도 했다.

얇은 책도 읽었고, 보통인 책도 읽었고, 두꺼운 책도 읽었다.


이상한 일은 거의 어떤 책을 읽든 한 시간에 읽는 분량은 거의 비슷했다는 거였다.

낯선 용어로 가득한 철학책을 읽어도, 난해한 인문서를 읽어도, 뻔한 이야기뿐인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소설을 읽어도 고만고만한 시간이 들었다.

드물게 판타지 소설이라든가, 추리 소설을 읽을 때는 평소 속도의 다섯 배쯤 되는 속도로 훑듯이 읽기도 했다. 그 외에는 거의 한 시간에 60~80쪽을 읽는 거였다.

이 속도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습관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읽는 속도가 습관이 되었다면, 책을 읽고 나서 휘갈기듯 써내리는 감상 역시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감상을 적기 시작하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끝을 내버린다.

드물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는 억지로라도 끝장을 내버린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스스로의 감상을 '휘갈겼다'고 표현하는 거다.


휘갈겼다는 말에는 다시 고쳐 쓰지 않았다는 의미 또한 포함되어 있다.

미리 개요를 짜거나 구상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의미 역시 포함되어 있다.


만약 내 감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이 있고,

그 감상이 전반부와 후반부에 상반되는 견해를 적은 모양처럼 되어 있었다면,

그것은 고의가 아닌 착각이나 실수였을 거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 싶은 정도라면 꼭 지적해주었으면 한다는 말도 전한다.

지적은 언제나 기쁜 이벤트가 되어준다.

내가 쓴 글의 어디를 지적하든, 비판하든, 평가하든 그 모든 반응을 환영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아아,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러와 버렸다. 다시 처음의 종이를 끼니처럼 으로 돌아가자.


종이를 끼니처럼 끼고 살다 보면 많은 정보가 눈으로 들어와 뇌를 스쳐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만약 이 과정에서 정보를 되씹고, 분석하거나 비판하거나 동의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 정보들은 말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없던 것처럼 사라져 버리기에 그 시간을 들여 읽은 수고는 아무런 보람도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정말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왜 읽던 책을 덮어버렸는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쉬운 교양'을 표방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화'와 '이분법'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물이나 현상을 단순화시켜서 이해하는 것이 난해한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는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단순한 것을 정말 단순히 더한다고 해서 복잡한 것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졌다고 해보자.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라고 하자.

사물을 단순화해서 각각을 파악하는 과정은 한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 그 사람을 무수한 조각으로 나누어 단순해질 때까지 쪼개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쪼갬은 물리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그 조각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조사해서 정보를 모은다고 해도 그 모든 정보를 합친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되지는 않는다. 정확히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쪽 혹은 반의 반쪽짜리 정보가 되는 거다.

사람에게는 물리적인, 생물학적인 요소와 함께 정신적인 요소도 함께 존재한다.

그런 사람을 '단순화'시켜 이해하려 들면 이해보다는 오해가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사회의 현상들은 하나의 생명체 혹은 사람과 같은 인격체로 간주하고 해석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해'가 요구되는 것이다.


쉬운 인문학, 혹은 교양을 표방한다는 것이 사물이나 현상을 단편화시켜 그 단편들을 제각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종합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어떤 현상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는 적어도 세 가지 측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여기부터는 지금 막 떠올린 생각이라 거칠고 정리되지 않은 내용이 많이 들어갈 수도 있다. 뭐, 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 그러려니 할 것이라 생각한다.


세 가지 측면이라 함은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세금과 복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생길 수 있는 견해는 다음의 세 가지 이상이다.

1. 세금을 올리면 복지가 향상된다.

2. 세금을 낮추면 복지가 열악해진다.

3. 세금과 복지는 필연적 관계에 있지 않다.


1이나 2는 익숙한 가정일 것이다. 그런데 3이 정말 그럴까?

사실 나도 그런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냥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세금과 복지는 분명 관련이 있다. 그렇지만 세금을 올린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복지가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금의 사용처가 '복지'뿐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과 복지를 마치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결과물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아아,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결론을 내려버리고 이 횡설수설을 끝내기로 하자.


책을 읽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믿을 예정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태도가 그 효과를 크게 하기도 하고, 사라지게도 하고, 깎아내기도 한다.


책이란 얼굴이 비치지 않는 거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과 책 속의 생각을 서로 비춰보는 과정이 독서라는 것이고 말이다.

일방적으로 책 속의 지식이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이나, 거부하는 것은 해로울지언정 이롭지는 않을 거다.


자신의 생각을 비춰보지 않을 거라면 지금 읽는 책은 그냥 덮어버리는 게 가장 현명한 행동이다.

그런 독서는 똥도 되지 못한다. 지적인 허영은 무엇의 밑거름도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덧 : 이렇게 적어놓고 내가 그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문득 극심한 찔림을 느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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