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_장 지글러
책이라는 축소된 매체에서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으로 시선을 옮아가게 하는 일, 그것이 책이 지닌 힘 아닐까?
이 책은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장 지글러가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적은 기아를 중심으로 한 현 세계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나라의 '이웃'에 대한 온정과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도움을 요청하게 된 배경과 함께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어려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미 실제로 그런 나라와 사람들에게 기부나 지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많은 시대, 여러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가운데서 유난히 눈길을 끌었던 표현은 이것이었다.
23쪽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169쪽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며 꺼낸 말과 이야기를 마칠 즈음하는 말이 무척 닮아 있다. 다른 많은 말을 들려줬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이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 이유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아파하는 유일한 존재."
저자는 인간을 그러한 존재라고 보고, 믿고,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성품을 방해하고 가리는 것이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이념이자 구조인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인간이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면 지금의 세계정세는 어느 때보다 기이한 것이 될 것 같다. 과거 노예제도가 맹렬한 기세를 떨치던 시절에 주인들은 노예를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개, 돼지와 같은 가축과 같은 존재 혹은 그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기도 했다.
현재의 세계정세가 기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더 이상 노예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임에도 노예 시대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예 시대에는 없던 심리적인 좌절과 무력감까지 보태 졌으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비참한 지경에 놓인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 이야기에 착안하고 있기에 어려운 용어나 통계 데이터를 인용하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어도 기아가 해소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나 기아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결국 원인은 통계가 아닌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이 하나 있다.
세계가 기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커다란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그 기아에 인도적 지원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나라와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자국에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도자를 조용히 혹은 본보기로 삼아 세계에서 지워버린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짜듯 가져가면서 주도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 나라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부추기고 빈부의 격차를 키운다.
결국 세계의 기아 상태를 지속시키는 것은 선진국들의 위선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정당한 경쟁이며 불가피한 선택인 동시에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이다. 가장 민주적인 나라가 행하는 가장 비민주적인 행위와 가장 인도적인 체 하는 나라가 행하는 무자비하고도 잔혹한 행위가 국가의 이득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나 다름없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제의 논리와 전략이 세계를 지배하는 동안에는 세계가 기아에서 벗어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그 근거다.
163쪽
금융 전략가들은 천문학자가 천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경제적 현상 앞에 서 있다. 천문학자는 자기장을 측정하여 별들의 궤도를 계산하고, 학문적 활동을 객관화한다. 오늘날 금융 전략가는 천문학자를 빼닮았다. 그들은 자연법칙을 들먹인다. 그들의 눈에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거듭 말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 약자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위에 적은 것처럼 '천문학자가 천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세계를 바라본다. 그들은 그 모든 결과가 필연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다. 자신들이 개입하지 않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경제적인 이익 앞에서 인정은 무력해진다. 그것이 개인의 문제를 벗어나 국가의 문제가 됐을 때 그 이기심은 정당성을 얻으며 더 강력해진다. 결국 누군가의 가난, 기아는 필연적인 것이 되는 거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세계의 기아를 극복하기 위해 언급한 세 가지 우선적인 과제를 적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1)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지원의 효율성과 함께 효용성을 따져봐야만 한다. 지원하고자 하는 곳,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이 닿을 수 있도록.
2)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배고픈 사람에게 언제까지 쌀과 고기를 지원해줄 수는 없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스스로 쌀을 생산하고 고기를 만들 수 있도록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3) 인프라 정비
위의 두 가지만큼이나 공허한 외침이 될 것 같지만 경작할 수 있는 농지와 관개시설의 정비가 없이는 기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개인과 사회와 세계가 동시에 기아를 해소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기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개인과 사회와 세계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일은 불가능에 한 없이 가까워 보인다.
진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어쩌면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든 진실은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노력하고 애쓰는 마음이 모이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세계에 기여하고 싶다는 거창한 바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던져보게 한다. 그 답이 간단히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같은 물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언젠가는 어떤 결론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은 남길 수 있었다. 지금은 고작 이 정도다.
가난과 기아를 체험하지 못한 나는 그저 머리로만 그 어려움을 헤아릴 수 있을 뿐이다. 미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