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도, 상처를 낫게 하는 것도 사람

사랑받을 권리_일레인 N. 아론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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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까지도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생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2016년 현재에는 '멘탈'이니 '용기'니 하는 이름과 함께 '자존감'이라는 이름 역시 제법 알려졌다. 이러한 심리적인 장치 혹은 요인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던 시절에는 자신감이 없거나 소극적인 사람들은 부적응자나 환자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러한 경향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정신과에 상담을 다닌다고 해서 미친 사람이라고 보는 식의 극단적인 편견은 상당히 누그러진 것처럼 보인다.

자존감이 주목받을수록 커지는 부작용도 있다. 그 가운데서도 마치 자존감만 높이면 모든 심리적인 문제나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 믿는 단순화가 가장 심각해 보인다. 자존감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높이거나 회복하는데 한계가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 이해와 수용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개인이 심리적으로 연약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오랜 기간 노출되었거나, 심각하게 경험한 결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자존감에 대한 가장 커다란 오해가 바로 이것이다.

자존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다.


이 책은 낮은 자존감의 정체를 아울러 '못난 나'라고 부른다. 자기 부정, 비관적 예측, 자책 등 못난 나는 무수한 얼굴을 갖고 나타나 자아를 괴롭히고 위축시킨다. 만약 어떤 계기나 사람을 통해 그러한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평생을 그렇게 위축되어 살아갈 수도 있다. 더 좋지 않은 것은 '못난 나'가 평소에 낙담을 담당할 뿐 아니라 이미 익숙해진 현재의 괴로운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까지 꺾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는 이러한 방해자를 '보호자-학대자'라고 부른다.

마치 자아를 보호하는 것처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게 위협하고 괴롭히는 학대자나 다름없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온갖 마이너스의 감정의 주범이자 근원인 '못난 나'와 이 못난 나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는 '보호자-학대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일레인 N. 아론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의지했을 것이고, 그녀 역시 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을 것이다.


2015년 갑자기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용기' 열풍을 일으킨 알프레드 아들러 역시 사람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었다. 결국 의사나 심리학자가 병이나 증상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심과 이해가 사람을 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 되는 거다.


이 책에 담긴 주된 심리학의 이론이나 접근 방법은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보다 프로이트의 상담 심리학에 가까워 보인다. 다만 재밌는 것은 '못난 나'를 극복하는 방법에서는 아들러의 방식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거다. 트라우마에 기초하면서도 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만 봐도 그러한 경향을 알 수 있게 되는 거다.


사실 이 책은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다고 말한 사람을 위해 다시 읽어본 책이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이지만 현재의 심리 상태를 상세하게 알아볼 수 있는 점검 방법과 함께 구체적인 실천 방법까지 담겨 있었기에 기억에 남아 있었다. 실제로 다시 읽어본 책은 최근에 쏟아져나오는 인문학과 심리학을 가장한 자기계발서들보다 훨씬 나았다.


'못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못난 나'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

왜 사람이 스스로 곤란에 처하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곤란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곤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다른 선택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절망적이고 절박한 상황이라 느꼈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부족한 자기이해를 부정한다.

자신은 마치 자기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자신은 잘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자신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괴롭히고 상처를 줘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사랑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다.

그렇게 대등한 관계에서 우리는 더 커다란 만족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거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의 '위에' 오르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이 자신과 '동등'하다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행동과 태도들은 자신을 고립시키고 '못난 나'를 자라게 하며, 상처 주고 상처받기를 거듭하게 만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인 거다.

먼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자.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자. 마지막에는 사회와 세상까지 그 범위를 넓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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