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_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소문은 전부터 듣고 있었다.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그런 곳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걸 믿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봐왔고,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그렇지만 이런 의문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아는 걸까?"
"안다고 말한다면,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거다.
이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때 나는 어떻게 할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온통 과거에 있다. 그러나 과거를 알아서 무엇한단 말인가?
과거를 아는 것이 이다음 순간의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말인가?
현재 속에서 과거는 무력하다.
언제까지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가 미래로 이어진다고?
그것은 거짓이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것뿐이다. 그렇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어디에도 연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다'고 했던가?
그렇지만도 않다.
어떤 시간은 멈추어 움직이지 않으며, 그 시간에 존재를 붙들어 매고 놓아주지 않기도 한다.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과거는 현재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아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하자.
과거의 나의 결정, 행동, 생각들이 현재의 나를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나'가 곧 '지금의 나'와 동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은 이어져 있으면서 끊겨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적도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렇게 시간과 시간이 끊어진 공간, 단 하룻밤, 나미야 잡화점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 작가로 유명하다. 그런 그의 작품 가운데 드물게 추리의 주제가 '인연'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용의자 X의 헌신>과는 또 다른, 뻔하지만 따뜻함은 사라지지 않는 그런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나미야 잡화점'에서는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준다. 부인을 잃고 상심해 있던 나미야 씨가 자신의 가게를 찾은 아이들이 '나야미(일본어로 고민을 의미)'라고 놀리며 질문을 한 것에서 상담은 시작된다. 처음에는 시시한 장난뿐이던 고민들 가운데 어느 날 진지한 고민이 섞여 들어온다.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미야 씨는 돌연 가게를 그만둬 버린다. 자신의 상담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어땠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은 나미야 씨는 아들에게 유언을 대신해 자신이 죽은 후 33년 되는 해에 자신에게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자기의 상담이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지를 세상에 물어주기를 부탁한다.
유언의 날, 나미야 씨가 죽은 후 33년 후의 9월 13일 0시부터 새벽까지. 오랜 시간 사람이 찾지 않아 쇠락한 나미야 잡화점에서의 기적은 그렇게 시작된다.
아아, 앞에서 다 이야기한 것 같아 여기에 더 많은 말을 보태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이어질 수 없는 시간이 이어지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사실 크게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세상에 고민 하나나 둘쯤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거다. 점심에 뭘 먹으면 좋을까에서부터 죽는 것이 나을지 그래도 살아야 하는지에 이르는 크고 작으며, 깊고 얕은 그런 고민들 말이다.
만약 어떤 고민이든 들어주는 곳, 혹은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 가면 어떤 고민이든 풀어지게 된다고 한다면?
한 번쯤 고민을 보내고 싶어 지지 않을까?
나라고 해도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솔직히 믿을 수는 없지만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볼 것만 같다.
나를 속이는 것으로 그 사람이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밑져야 본전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모든 것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전혀 엉뚱한, 인연이 없을, 있을 수 없는 일이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막연하지만 있을 법한 가능성 말이다.
사실 나미야 잡화점의 나미야 씨는 어떤 고민도 직접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의 말처럼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할 것인지 정했으면서 참고 삼아 묻는다.
결국 고민을 들어준 사람의 수고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는 거다.
하지만 정말 무의미했던 것일까?
그렇게 하기로 정했지만 확신하지 못하는 마음에 같은 의견이 상담의 결과로 나왔다면 조금이라도 확신이 늘어날 것이다.
정반대의 의견이 나왔다면 그 의견에 반대하는 마음으로, 오기로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담자의 말보다 고민을 품고 있는 사람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만의 답에 닿기 마련이다. 적절한 조언이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조언이 전적으로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조언은 조언일 뿐 예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노력이다.
그런 노력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 아닐까?
나 역시 가끔 기적이 일어나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어떤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기적은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계획이 필요한 것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갈 때뿐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나미야 씨를 흉내 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 수단으로 보통의 기적을 꿈꿔보는 것도 재밌겠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