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을 달리는 말에게는 편자조차 필요하지 않다

천 개의 공감_김형경

by 가가책방


우리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는 사람의 멍청함을 순식간에 알아차립니다. 그 원리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인위적이고 우스워보이기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삐질삐질 터져나오는 겁니다.

여기에도 모순은 있습니다. 타인에게서는 그처럼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어색함을 자신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마치 올빼미가 밤에는 그처럼 밝히 볼 수 있음에도 낮에는 잠만 자는 것처럼 말이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일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행태를 독선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하지요. 혹시 독재자라고 하면 히틀러 같은 역사 속 인물이 떠오르시나요? 안타깝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독재자는 그렇게 드문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역사 속이나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남편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한 가정에서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릅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런 남편을 독재자라고 볼 수 있겠죠.

세상과 사회와 가정.

자, 또 어디에 어떤 독재자가 있을 수 있을까요?

세상과 사회와 가정이 언급되었으니 더는 독재자가 있을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안타깝게도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어떤 세계보다 냉혹하고 가혹한 독재자가 지배하는 공간이 한 곳 더 있어요.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개인의 내면입니다.


예상하셨을지도 모르지만 너그럽고 선한 사람들도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가혹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내면의 독재자의 경우 태도는 물론 생각까지 지배하고 제어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는 게 특징이지요. 그런데 이런 독재가 내면에 국한되느냐 하면 그것이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샐 수밖에 없습니다. 내면의 독재자는 점점 힘을 키우게 되고, 영역을 넓혀 가정과 사회로 확대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안에서 시작해 세상과 세계에 군림하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이러한 꿈이 좌절됐을 때,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기도 하지요.


일반적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내면은 극심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 부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러한 열등감은 다양한 원인을 통해 발현되고, 그 영향력을 키워간다고도 하고요.


이 책 <천 개의 공감>은 그러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사람들의 내면의 고민들을 듣고 해결 방법을 나누는 화해의 공간을 축소해 담아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왜 그러는지, 문제가 있는지, 보통인 건지 어떤지조차 모르고 지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조금은 이상하다거나 별나다거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각 이후의 행동, 개선 혹은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책 속 사연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것 같으면서도 닮은 그런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거의 모든 심리학 책이 그렇지만 이 책 속에서 제시된 대처 방법 혹은 해결 방안이 완전한 해답이라거나 정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작가가 심리학 전문가이고 아니 고를 떠나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이나 학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별적인 경험은 개별적인 인간을 만듭니다. 유사하다고 해서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쌍둥이조차 그 성격이나 사고의 구조가 같지 않다고 합니다.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에게, 거의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랐음에도 말이죠. 하물며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 책의 바탕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입니다. 인간의 억압된 욕망으로 심리를 해석하고 방법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특히 트라우마에 얽매이는 경우가 잦아 많은 경우 문제의 핵심을 유아 혹은 유년 시절의 분리나 좌절에서 찾고는 합니다. 트라우마와 함께 리비도라고 하는 성욕에 집착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너는 의식하지 못하지만"이라고 시작하거나, "트라우마에 의한 방어 기제가 의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요.

한 번 더 강조하기로 합니다. 이 책 속의 사연이 아무리 자신의 이야기 같더라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선뜻 믿어버리지는 마세요. 참고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까지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입니다.


책 속에서 김형경 작가가 내놓는 해석 혹은 조언, 해결 방안들은 대체로 객관적이고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상담자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것들만을 뽑으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입니다.


몇 가지 짚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적어봅니다.

책 속에 다루는 내용 가운데 '살리에리 증후군'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모차르트를 질투하다 독살했다는 의혹에 시달리기도 했던 살리에리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살리에리 증후군입니다. 시기심에 관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는 공동으로 곡을 작곡하기도 하는 등 흔히 세상이 이야기하듯 죽이고 싶을 정도의 시기심에 시달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세상의 판단, 의혹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밝혀지는 사례가 아닌가 해요.

프로이트가 그토록 외쳤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역시 그 신화적 기원을 따라가 보면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화 속에서는 오이디푸스가 처음부터 어머니에게 성적 환상을 가졌다거나 근친상간의 욕망에 시달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일 것이며, 친 어머니와 같은 침대를 쓰게 될 것'이라고 하는 신탁을 맹신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잘못이 발단이 됩니다.

오이디푸스가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은 후대가 왜곡시킨 신화 속 비극 때문입니다. 소포클레스는 그러한 일은 '인간이 빚어낸 비극이었다'라고 말하는데, 후대에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은밀하고도 강렬한 본능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으니까요.


본문의 327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딸,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은 아들들이 얼마나 찬란한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는지 흔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경우의 문제겠습니다만, 작가가 그토록 '흔하게 목격'했다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딸',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은 아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보고 계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 만연한 잠재적 우울증 환자군들의 문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부모의 전폭적이고 맹목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 자신감이 더 충만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가능성의 문제인 동시에 개인적인 인격 혹은 성격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사랑받고, 지지받은 사람들이 어긋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요?


이 책의 내용이나 해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해석이 가능할 뿐 절대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 거예요. 심리학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100%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저는 그를 '신'이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도 그러한 인식과 이해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겠죠.


공감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상황, 그의 경험, 좌절과 슬픔, 외로움과 기쁨까지를 깊이 들여다본 후에야 비로소 '아,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하는 해석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요?


지금 어떤 심리적인 고민이나 고통으로 책을 읽고자 하고 있다면, 그 안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얻고자 한다면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저마다의 크고 작은 마음의 병 앓거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세상의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 그 마음조차 생각처럼 드물거나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말은 아니지만 잊지 마세요.

"그 모든 외로움, 시련들, 힘겨움이 당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타인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내 손가락 끝을 베이는 것이 더 아픈 법입니다. 나의 외로움, 내가 겪는 시련, 끊이지 않는 힘겨움이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책은 그러한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일깨워 줄 거예요. 세상에는 삶의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잔혹한 세상에도 기쁨과 즐거움은 담길 수 있습니다.


시작하며 독재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 아직까지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의 괴로움에는 무력감까지 겹쳐 더 힘들게 느껴질 겁니다. 그 무력함을 괴로움의 근원이 되는 존재는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이용하고 있을 거예요. 정말 비겁하고 비열한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무력한 상태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무력감에 지배당하는 일이 너무나 잦다는 것입니다.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이론으로 도망치는 거죠.


자신을 지배하던 독재자가 사라졌을 때, 그 자리에 스스로 독재자로 군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괴로움을 끝내고 이제 그만 벗어나도 되는 상태임에도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한다는 거죠.

누군가를 지배하겠다,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몹시 파괴적인 생각입니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지배하겠다는 생각 역시 자기 괴멸적인 생각이고요.

타인에게나 스스로에게 자유를 허락하시길 바랍니다. 타인의 억압에서 벗어날 자유를 찾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론이나 통념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그 이론이나 통념이 주는 책임 회피를 통해 안정감을 구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정당화하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저명한, 힘 있는, 성공한 등의 수식어 뒤에 숨거나 의지하지 마세요.

그런 도피를 끝내고 스스로의 삶으로 돌아갈 때, 진정한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말의 발에 롤러스케이트를 신긴다면 말은 달릴 수 없게 됩니다.

그저 우습고 멍청해 보일 게 분명합니다.

이 글의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고 있다면 분명 비웃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말에게 어울리는 것은 바퀴 달린 신발이 아니라 돌이나 날카로운 쇠붙이로부터 말굽을 지켜줄 편자입니다. 그러나 초원을 달리는 말에게는 그 편자조차 필요 없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어떤 굴레도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그리고 어울리는 것을 찾고 또 지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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