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by 가가책방

시대와 사회, 세대를 초월하여 존속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는 어떤 이름이 붙여져 있을까요?


'시대', '사회', '세대' 모두 'ㅅ'으로 시작하는군요. 기가 막힌 우연이네요.

그럼 재미 삼아 'ㅅ'에서 그것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사상?

그럴듯 하기는 한데 어쩐지 사상하니까 고리타분하고 낡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신화?

아, 멋지기는 한데 어딘가 이 세상에는 없는 허구적이고 뜬구름잡기식의 느낌이 듭니다.


아아, 이건 어때요?

'사랑'

어쩐지 식상하고 흔한데다 새로운 느낌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리지 않나요?


네, 이 책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사랑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무려, 50대 후반의 프랑스 남자와 갓 스물을 넘어선 브라질 여자의.

막장이라고,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습니다. 불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막연히 동경하는 분도 계실겁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남자 이야기

얼마 후면 60이 됩니다.
이제는 결코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겁니다.
아니, 더 솔직해지기로 합시다.
다 끝장 났습니다. 다 끝났어요. 저는 완전히 끝장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니, 사실은 너무나 행복하게도. 나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행복해서, 너무나 행복해서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어요.
두려움, 괴로움, 그리고 그 너머에 숨어있는 분노조차도.
그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진짜 고민은 그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하는 겁니다.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만남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수이거나 어떤 잘못 같은 것 말입니다.
이제 남은 건, 더 무력해지기 전에, 무능함을 들켜버리기 전에 스스로 나를 파괴하는 것 뿐입니다.
지금 나는 그 결정을 그녀에게 전하려 합니다.

아직, 내가 가진 승차권이 유효한 동안에.
여자 이야기

제가 그를 만난 건 다른 어떤 사람과 착각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사랑임을 의심한 적도 없었고, 그와의 만남을 후회한 적도 없어요.

요즘 그는 부쩍 괴로워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도울 수 있는 게 없는지 물어보려고 해도 그는 괜찮다고만 하며 자꾸 멀어지려고 하는 걸 느껴요.

오랫동안 꾸려온 사업이 위기에 몰려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괴로워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보다 그를 괴롭게 만드는 다른 어떤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경질이 늘고, 짜증을 부리는 일이 많아졌어요.
관계를 가질 때도 저의 반응을 의식하고,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걸 느낍니다.
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왜 그는 나에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서른일곱 살 차이입니다.
하지만 서로 나이를 의식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사랑하니까요.

장난치듯 아들에게 저를 소개하고 농담을 던집니다.
저와 결혼하라고요.
그리고 어쩐 일인지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저를 떠나 멀리 가버릴 것처럼,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를 사랑해요.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을 그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제 사랑의 승차권이 유효한 동안에요.

시간은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합니다.

낡게 하고, 닳게 하며, 무디게 하고, 약하게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단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너무나 많은 것이 사라집니다.

시간이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어느 날 홀연히.


보통의 경우, 사랑이라는 것 역시 시간 앞에서 무력합니다.

변하게 하고, 옅어지게 하고, 사라지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 정말, 사랑은 사라진 걸까요?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에서 자크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스무 살의 여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자크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높은 곳에 올라있으면서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결코 방탕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여성 편력도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그가 60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것만 빼면 여전히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 나이는 남자에게서 정력, 성기능 역시 빼앗아 갑니다. 여러 가지 방법들로 보완하고 버틸 수는 있겠지만 약해지는 것을 궁극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요.


반면에 로라는 이제 피어나는 꽃처럼 싱싱하고 또 활발합니다. 자크는 점점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하고, 결국 실패하기에 이릅니다. 시간에 패배한 거죠.

사실 로라는 자크의 부나 육체적 능력을 보고 사랑에 빠졌던 것이 아니었기에 자크의 좌절과 절망을 완전히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 하죠.


고민하던 자크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 선택이란, 일종의 '자살'이었고요.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시면 일독을 권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로맹 가리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처음 부분을 읽을 때는 어쩐지 말년의 로맹 가리가 왜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쓰는 것에 도전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전체에 무력감과 패배감이 가득하다고 느꼈거든요. 육체의 쇠약함도 담겨 있겠지만 그보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고 있는 사람에게서나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무력감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마치 부활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부활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시한부 인생의 기도처럼 읽혔습니다.


결말로 나아가면서 로맹 가리가 기대하는 어떤 최후의 희망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봤어요.

로맹 가리는 이전의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의 나를 죽임으로써 오늘의 나로 새로 태어날 수 있기를 꿈꿨던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꿈이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더 깊이 침잠함으로써 더 높이 날아오르기에 성공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자살을 택했던 죽음의 방식이 결코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것이었다는 것 역시 확인 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어쩐지 로맹 가리는 속으로 이런 말을 되뇌었을 것만 같습니다.

새로울 수 없다면, 죽어 사라지겠다.


표면적으로 이 작품은 노년의 육체 능력과 성기능의 감퇴라는 신체적 약화 뿐 아니라 기억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는 정신적인 쇠퇴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덧붙여 사멸해 가는 젊음에 대한 아쉬움과 그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압도적인 분노가 담겨있는 것 같았고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포기할 수는 없는, 한 인간의 투쟁을 본 것 같아 어쩐지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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