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살아있습니까?

그래도 나는 꿈을 꾼다_미즈노 케이야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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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보면 5분, 천천히 봐도 10분이면 다 볼 수 있는 책입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려서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좋아하는 여자는 돌아봐주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원하는 지위에 올라가지도 못했습니다.

연이은 실패와 좌절에도 그의 곁에는 늘 꿈이 있어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지요.

하지만, 사람은 쉬이 지치고 포기하기란 계속하기보다 쉬운 법입니다.


어느 날 남자는 더 이상 꿈과 함께 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루지도 못할 꿈과 함께 하는 삶이 더 괴롭고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꿈을 버리고 난 후의 삶은 불과 몇 페이지에 그려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밋밋하고 또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세월은 훌쩍 흘러 늙고 병든 남자는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됩니다.

그때서야 남자는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꿈과 함께 하던 시간이 더 행복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때 꿈이 다시 나타납니다. 늙고 병들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요.

남자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무엇 하나 남기지 못한 채로 사라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꿈은 주섬주섬 펜과 종이를 챙겨 옵니다. 마지막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뭐라도 남기라면서요.

그러나 남자는 다시 할 수 없다며 포기해버립니다.

꿈은 사람은 역시 변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써보기를 권합니다.

남자는 길지 않은 편지를 남겨요.

누구인지 모를 누군가에게요.


이 책은 그 편지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꿈과 삶에 대한 이야기지요.


언제부터인가 삼포니 오 포니 칠 포니 하는 말이 돌기 시작하더니 다포 세대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포기한 것이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인지, 다 포기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말은 참 슬픈 말이에요.


꿈을 사치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비웃음을 사기 일쑤지요.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하면서요.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누구의 생각입니까?


울고 싶은 아이 볼기 친다는 말이 있어요.

포기하고 싶을 때 마침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니 이 참에 포기해버리자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겁니다.

꿈이 옷이나 물건처럼 몸에 걸치거나 손에 들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군가가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에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이 꿈이지요.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꿈을 빼앗겼다고 말하는 걸까요?

상황, 여건, 환경, 배경.

네, 이런 것들이 꿈을 방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방해받는 것과 포기하는 것에는 필연성이 없어요.

사실은 타협했거나 먼저 포기해서 편안해지려는 마음이 더 컸을 겁니다.

혹은 그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설득당했을 거예요.


꿈이 밥을 먹여주느냐고 합니다.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분명 돈이 없으면 불편합니다. 불행해지기도 하지요.

살 수 있는,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만능은 아닙니다.

황금만능의 신화는 만들어진 것이지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에요.

역사는 보여줍니다. 지금만큼 물질적으로 풍부한 시대는 없었다는 것을요.

충분히 과잉 생산되고 있음에도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쟁과 다툼, 이익의 논리 때문입니다.

물질이 불충분해서가 아니라는 거지요.


엉뚱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만, 꿈 역시 물질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시간이 많은 부모를 선택하겠느냐, 아니면 시간은 없지만 부자인 부모를 선택하겠느냐 하고요.

놀랍게도 몇몇 아이들이 부자인 부모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요?

돈이 없으면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 아이가 말한 행복한 추억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가는 것이었을까요?

호화로운 호텔이나 리조트에 머무는 것이었을까요?

'시간'이 없는데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아이와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이를 챙겨주지 못하는 부모는 미안함에 대한 보상으로 더 많은 용돈을 준다고 합니다.

아이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어지겠지만 마음은 늘 공허하겠지요. 그런데도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시간이 없어도 부자인 부모를 선택했다는 건 순수하다는 아이들조차 물질의 논리에 잠식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꿈을 꿀 까요?

부자?


꿈은 사람을 한 번도 버리지 않지만, 사람은 언제든 꿈을 내팽개 칩니다. 갈아치우기도 잘하고 아주 없이도 잘 지내는 것처럼 살아가지요.

하지만 정말 많은 돈을 모으고, 유명해진다면 죽음이 임박했을 때 후회가 없을까요?


그때가 되면 스스로 이렇게 묻게 될 겁니다.

"나는 무엇을 남겼나?"


삶의 모든 시간과 노력과 바꾸어 지위와 명예와 돈과 재산을 남기면, '정말 잘 살았어, 이제 여한이 없군.' 하며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요?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족과 자녀들은 제각각, 재산을 두고 다투지나 않는다면 그나마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며 만족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겠지요.


꿈을 꾸는 것은 사치라는 말은 만들어진 말입니다.

세상의 논리 속에 사람들을 가두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 쓰기 위해 만들어낸 관점이라는 겁니다.

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소모되고 이용당하다가 쓸모가 없어지게 되면 버려질 뿐입니다.

어쩔 수 없다고요?

그 어쩔 수 없다는 생각 역시 만들어진 겁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을 돌아보며 한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더군요.

"인간의 격언에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이 맞는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이유도 하나는 있지요.

그것은 한 번뿐인 인생, 단 하나의 인생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노인은 말합니다.

"산다는 건 그 자체로 빛나는 일이었습니다."라고.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음에도 죽어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살아간다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죠.

눈물 나는 일입니다.


살아 있다면, 살아간다면 제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꿈은, 버리지 맙시다.


꿈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그리고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꼭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의 소중함을 알아 차린다면, 그까짓 꿈 못 이룬들 어떠할까요.


노인의 마지막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살아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너무나 눈부시답니다.


당신은,
지금,
살아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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