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행자는 서두르지 않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_스티브 도나휴

by 가가책방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JPG

우리는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듯 살아가든, 나날이 즐겁고 흥겨워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든 살아간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 어떤 힘겨움도, 즐거움도 죽음과 함께 사라져 마치 신기루처럼 없던 것이 된다.


우리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 여정은 어느 것일까?

산을 오르는 것일까?

사막을 건너는 것일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보통의 길을 가는 걸까?


산을 오른다고 해도 틀리지 않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으니 보통의 길과도 다르지 않으며, 막막하고 아득하기에 사막을 건너는 것과도 닮아 있다.

때로는 산 정상의 바람을 쐬는 것처럼 개운하고, 사막에 있는 듯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사막이 오아시스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얘기 같다. 사막에는 사막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삶이 있기에
사막도 오아시스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책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은 저자인 스티브 도나휴가 젊은 날에 건넌 사하라 사막에 대한 추억과 그 추억이 거울이 되어 삶을 비춰 들려준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다.

저자의 견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저자의 이야기는 진실이며 사실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에게 사하라 사막을 건넜던 경험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그래서 삶이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등산을 삶에 빗대는 이가 적지 않았다. 많은 책에도 그렇게 적혀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 높은 히말라야 산맥의 정상도 그다지 넓지 않다고 한다. 산의 정상은 계속 올라 있을 수도 없다. 언제 날씨가 변해 내려갈 수 없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정상을 향해 나아가서 정상에 오른다 해도 그 정상에 오른 기쁨을 오래 누리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것으로 인정을 받으면서도 성공의 기쁨을 오래 누리지 못하는 것도 삶을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오르는 등산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고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가 아닌 나침반을 보며 가라는 것과 사막을 건너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막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의 두 가지일 것 같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변수와 환경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상 가능 혹은 예측 가능하다고 믿을 때 더 많은 이들이 실패를 하고 함정에 빠진다는 것도 있다.

'안다'고 믿는 것이 종종 자만의 씨앗이 된다는 건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예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고, 각박하다고, 너무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삶을 사막을 건너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그런 가혹함, 각박함이 갑자기 당연한 것이 된다. 어차피 모든 삶에는 그러한 어려움이 숨어 기다리고 있다. 나름 나름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뿐이라는 거다.


삶에서 도피하는 것,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은 사막의 주변을 맴도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영원히 사막을 건널 수 없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면서 안 된다고,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마 이런 사람들이겠다. 만약 사막을 건널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상태,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에 머무를 것인지, 어디로 향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재밌는 걸 발견했다.

<모모>에서 나온 말, '느리게 갈수록 빨리 가는 것'과 닮은 표현을 발견한 거다.

"더 많이 쉴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때로는 쉬는 것이 더 멀리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이것은 휴식의 문제뿐 아니라 시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때는 죽어라고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이 또 어느 때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던 경험이 있을 거다.


사막은 거대한 시련이다. 그 시련은 거대한 만큼 가혹하다.

하지만 그 시련이 꼭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도 삶이 있고, 즐거움과 행복이 있는 거다.


사실 이 책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깨달음을 준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번 읽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재확인 한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확인 작업 또한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생텍쥐페리는 왜 사막을 미워하지 않았을까?

물도 음식도 없이 불시착한 상태로 이제 남은 것은 죽음이 먼저 올지 구조가 먼저 올지를 기다리는 것뿐인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사막에서의 경험을 그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로 적어 남길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그토록 위태로운 순간에도 사막이 너무나 커다란 아름다움을 품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이 사막을 건너는 것인지, 산에 오르는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삶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느끼고, 간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만 삼고 정상을 찍고 음미하지도 못하고 내려오는가?

사막으로 간 사람들은 왜 모래와 태양뿐이었다고 말하는가?


지금의 삶이 마치 사막을 건너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잘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한두 명의 진실한 동료와 순간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만 더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은 더 없을 거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여기 적은 것은 일단은 나의 바람이다.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이다.

이미 깊숙이 들어왔다고 느끼기에 할 수 있는 건 더 깊이 들어가는 것뿐이다. 사막의 끝은 그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고 불분명하다고 한다. 어느 순간 불현듯 사막이 끝났음을 깨닫는다는 거다.


운이 나쁘다면 그 순간은 죽음의 순간과 함께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의 여정이 모든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혹시 고민에 지쳐있다면, 잠시 쉬어가는 마음으로 읽어봐도 나쁠 것은 전혀 없을 거다.

마음을 가다듬자. 하루 이틀 혹은 일이 년의 짧은 여정이 아니다.

가야 할 길은 지금도 멀고, 지금보다 더 힘겨운 날도 무수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 확실하다.

살아가자.

사막을 아름답게 한다는 오아시스에게 의미가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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