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를 좋아하세요?

할매가 돌아왔다_김범

by 가가책방
할매가 돌아왔다.JPG

신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여곡절이 있고 마지막에는 "어이구, 그랬어? 그랬구나. 으흐흑"하고 끝나는 식은 거의 질색이지요.


이 책이요?

이 책은 거의 완벽한 한 편의 신파극을 담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라는 거지요.

하지만 한 페이지,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습니다.


난 어떻게 할머니를 믿을 수 있었을까? 거짓말쟁이 할머니를 믿게 된 것은 할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아주 많은 것이 변한다.
제일 먼저 변하는 게 바로 수용이다. 그가 무슨 짓을 했든 이해가 가고 용서가 된다. 그가 억울하다고 하면 그대로 믿게 되고 그가 아니라고 하면 비현실적이라도 일단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남녀 간 사랑과는 다르게 이런 사랑은 신뢰를 만든다.
<할매가 돌아왔다> 249쪽

이 문장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동의하기 때문도, 공감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 말은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작가가 하는 말을 믿지 못했다는 이야기겠지요. 만약 이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의 말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면, 이 이야기를 읽은 시점에서 아주 많은 것이 변했을 것이고, 이야기가 아무리 비현실적이라도 믿으려고 했을 테니까요.


다르게 적어보기로 합니다.

만약 사랑이 이 이야기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변화하는 것이라면 아마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일이 없는 것이 될 겁니다. 그런 거지요.

소설을 읽고 이런 말을 내놓는다면 우스운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해야겠습니다. 어떤 사랑이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대상을 위하는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거절하고, 막아설 수 있어야 사랑입니다. 무조건 믿고 수용한다는 것은 신뢰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책임 회피 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네가 어떻게 나에게."

최후의 순간에 이런 대사를 내뱉을 수도 있게 되겠지요.

그리고 이런 대사를 내뱉곤 하는 것이 신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신파는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아주, 아주 많은 것을 정당화하고 무마시킵니다.

보통의 사람은 감정 앞에 무력하니까요.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67년 전 전쟁 중 염병으로 돌아가셨다는 할머니가 갑자기 찾아옵니다. 이 할머니가 어떤 할머니냐 하면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와 동료를 일제에 팔아넘기고, 자식과, 가족과, 집안과,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 순사와 붙어먹은 '개잡년'라는 군요. 일본 순사를 따라 일본에 머물다가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갔던 할머니가 67년 만에 자식들을 보러 돌아왔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60억이라는 재산을 유산으로 상속시켜주겠다고 합니다. 어쩐지 낯익은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위대한 유산>이라던가 하는.
그렇게 이 이야기는 할머니의 유산과 과거의 배신의 진실을 밝혀가는 동시에 최 씨 집안의 개개인의 사정을 들여다보고 풀어갑니다.
미리 이야기해두지만 끝까지 신파입니다.

<위대한 유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위대한 유산의 핍과 할매가 돌아왔다의 동석은 어쩐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중요했던 것은 유산이 아니라 그 유산과 얽힌 사건을 겪으며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랄까요. 허허,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신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싫지 않았습니다. 기묘하기는 하지만 이런 낭만을(찌질함이라고도 하지만) 품고 있는 이야기를 싫어할 수는 없으니까요.


허전하기는 했습니다. 뭔가 재밌게 읽은 것 같기는 한데 다 읽고 나서는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구나'하는 어쩐지 막연해서 산만한 기분이 되고 말았거든요.

전쟁 막바지의 독립 운동가들은 징용을 피하기 위해 일종의 위장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거다라거나, 정치는 역시 인맥과 줄이지 능력이 뛰어나거나 청렴한 게 중요한 건 아니다라거나, 교수나 잘 나가는 강사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그게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라거나, 아이엠에프가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꿔놨다거나. 등등


그렇게 자주 있을 것 같지는 않은 이야기지만, 또 그렇게 드물 것 같지도 않은 이야기라 뭔가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기분으로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비록 돈이 아주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는 하지만 가족이라는 것이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너무 무겁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 속 할머니의 사정을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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