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오해

햄릿_윌리엄 셰익스피어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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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구나."

오늘의 우유부단함의 대명사인 햄릿을 만든 한 마디입니다.

그 누군가는 햄릿의 이름을 빌려 '햄릿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만들었지요.

그런데, 정말 햄릿은 우유부단했을까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제대로 읽기 전인 고등학교 때까지는 햄릿이 우유부단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를 두고 고민한다는 게 우습게 보였고, 어쩐지 햄릿은 유약한 서생 같이 생겼을 것 같다고 상상했지요. 하지만 햄릿을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점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햄릿은 결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닿은 것은 자연스러운 거였지요.


또 한 가지.

햄릿은 결코 유약한 서생 같은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검술 실력을 가진 레어티스와의 대결에서도 패배하지 않는 실력자였던 겁니다. 지식과 체력, 거기에 생각까지 깊었으니 이른바 '완벽한 왕자'였음이 분명한 인물이 바로 햄릿이었던 겁니다.


<햄릿>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햄릿의 아버지인 덴마크 왕이 숙부의 손에 살해당하고, 숙부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왕위에 올라 왕비까지 차지하지요. 아버지의 죽음에 놀라고, 어머니의 재혼에 실망한 햄릿은 고뇌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유령에게서 진실을 전해 듣게 되지요. 진실을 알게 된 햄릿은 사랑도 버리고, 미련도 내려놓은 채 복수에 몰두합니다. 그렇게 우유부단함의 대명사였던 햄릿은 복수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계획을 실행하지요.

<햄릿>이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하나라는 건 거의 모르는 분이 없을 겁니다. 결말이요? 비극입니다. 궁금하면 읽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해결책이겠지요.


지금까지 햄릿이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왔던 분이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그 생각을 달리 하시는 게 좋습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햄릿은 복수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모른 척합니다. 복수를 시작한 다음 순간부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복수의 실행에 몰두하지요. 대담하다 생각할 정도로 무모한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에게서 우유부단함을 찾아보기란 어린아이에게서 흰머리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아 보이지요.


만약 햄릿이 고뇌했다면 그것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복수로 인해 희생될 이들이 걱정됐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복수에는 많은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어쩌면 복수는 복수를 실행하는 자기 자신의 피까지도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고 해도 죽어서 썩어지면 부서지기 쉬운 해골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래턱까지 잃고 위턱만 가진 맨들맨들한 해골이 되는 거지요. 햄릿은 복수의 덧없음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 된 도리와 당시에 만연했을 '복수'의 완수라는 사명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정말 반전이 되는 이야기겠지만 우울증으로 반쯤 정신이 나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진실이 아닌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거짓을 따랐는지도요.


어느 쪽이었든 햄릿은 우유부단함을 보이지 않습니다. 깊이 고뇌하는 모습이 있을 뿐이지요.

한두 번 햄릿을 읽어보면 햄릿에게 우유부단한 면모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을 텐데 왜 사람들은 여전히 선택을 못하는, 결정 장애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햄릿의 이름을 달아주는 걸까요.

'햄릿 증후군'은 현대에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 같이 매력적이거나, 하나 같이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들만이 선택지로 주어지니까요.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햄릿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햄릿처럼 행동하는 것이지요. 햄릿은 마음을 정하고 난 후에 흔들림 없이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임기응변은 있었지만 머뭇거림이나 망설임은 없었지요. 그렇다고 무자비했던 것은 아니지만 자비롭지도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었지요.

사람들은 착각을 합니다. 선택지가 많아졌기 때문에 선택하기 어려워졌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선택지가 아무리 많아지더라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진짜 문제는 선택지가 많은 것에 있는 게 아니라, 하고자 하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기회가 아니라 욕심에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기회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나'라는 그릇의 크기만큼만 담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끝없이 늘어나는 선택지는 기회가 아닌 욕망만을 키워놓습니다. 기회는 여전히 제한되어 있음에도 욕망은 끝을 모르고 자라나는 겁니다. 결국 고뇌가 시작되는 거죠.


당신이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게 된 데에 햄릿은 조금의 책임도 없습니다. 선택을 하는 것도,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당신의 책임입니다. 세상과 환경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세요. 그러고 난 후에도 세상의 무자비함과 모짊을 탓할 마음이 남았다면, 그때 탓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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