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것도 살게하는 것도 살아 있는 사람이다.

하나와 미소시루_부키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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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얘기지만 어떤 영화를 보든 한 번은 눈물을 찔끔 흘리곤 한다.

지난해 <매드 맥스>를 보면서도 눈물을 찔끔했을 정도라고 하면 더 이야기할 필요 없지 않을까.


책 이야기에 앞서 영화와 눈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책 <하나와 미소시루>가 영화화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극장에서 본다면 훌쩍거리고 말 것이니, 그냥 조용히 책으로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말자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하나의 부모인 싱고와 치에의 만남과 결혼에서 시작된다. 아니, 정확히는 교제기간을 거쳐, 결혼을 결정하고, 프러포즈까지를 마친 후, 결혼을 기다리던 행복한 순간 속에 불쑥 끼어든 암세포에서 시작한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암에 걸린 사람과의 결혼, 사랑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거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격려를 하며 결혼을 강행하기보다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서로를 위해 이쯤에서 끝내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는 게 오히려 상식적인 상황이었음에도 싱고와 치에는 결혼을 강행하고 투병생활과 함께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수술 후의 항암치료 부작용과 고통으로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다행히 항암치료의 결과가 좋아 불안하기는 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치에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깨닫는다.

치에가 걸렸던 암은 유방암으로 호르몬이 암의 재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암은 하나의 불안이자, 불길한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치에는 임신을 기뻐해야 할지를 정하는 것도 하지 못했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고민하기는 했지만 열 달 후에 태어난 아이, 하나는 두 사람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폐에 암이 재발하고 만다. 치에는 놀라고 좌절하지만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이 있기에 이겨내겠다고 다짐하고, 화학적인 치료와 함께 식생활과 생활습관을 개선해 나간다.

치에와 가족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암과 싸우며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애쓴다. 이 책은 그들의 투쟁의 기록인 동시에 행복한 시간의 기록이다.


사실 처음에는 치에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권하는 남편이나, 아버지, 다른 사람들이 무척 잔인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는데, '임신을 해도 괜찮을지 모른다'거나 '죽을 각오로 아이를 낳아라'고 하는 생각과 말들이 무책임하고, 자기들 생각만 가득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치에는 '아이가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린 이후에 정당화를 위해 내놓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나 불행하고 비참해지고 말기에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외부의 관찰자인 '나'의 생각일 뿐, 당사자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그런 것인 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야기 속에서 이 세 가족은 정말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남편인 싱고는 오히려 못 미더운 편이었지만,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딸 하나는 너무나 꿋꿋하고 착하고 대견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치에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나에게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키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유치원에 가는 준비를 하는 것, 간단한 음식은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다섯 살 아이에게는 버거울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쳤던 거다. 아빠나 할머니가 할 수도 있겠지만, 치에는 엄마로서 딸에게 자신이 삶을 소중하게 여겼으며, 그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기억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치에의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후의 싱고와 하나의 삶을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에서 느낀 것이 크게 두 가지가 되었다.


하나는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는 '스스로의 삶에 성실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낮은 건 아니지만 한국이 자살률 1위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그들을 향해 치에는 차라리 그 인생이 '필요 없다면 나에게 달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지루한 오늘이 어떤 사람이 그토록 갈구했던 내일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찮은 삶, 시시한 삶, 불필요한 삶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단 하나뿐이다.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지고 마는 거다.


또 하나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도, 살아가게 하는 것도,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멀거나 가깝거나와 무관하게 그 순간만큼 자신의 삶을 강렬하게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생명이 꺼지는 것은 우리의 삶 역시 언젠가 꺼질 것이라는 것이라는 필연적인 결말을 예고해주기에, 새삼스러운 애착과 삶의 기쁨이 살아나기도 한다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잔인하다거나 너무하다 싶다면, 마음이 너무 여리거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분명 필요하다.


'행복감'과 '상실감'이 교차하는 나날이었지만 지금 나는 있는 힘껏 버텨내고 있었다. 이렇게 견딜 수 있는 것은 모두 치에가 이어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싱고는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치에의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정확히는 '치에가 이어준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이다. 살아갈 수 있도록, 버틸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서 얻는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덕분이다. 딸 하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 들어있는 세상을 떠난 이의 모습들이 살게 하고, 버티게 해주었다는 거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하는 말 가운데 '세상에 오는 것에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다. 어느 순간 어떻게 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치에는 언제가 마지막인지 알 수 없었기에 다툰 채로 헤어지거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을 오래 품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 역시 남겨진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잘못한 채로 헤어졌다가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면 남겨진 사람은 평생 미안함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와 미소시루>를 읽는 동안 오래전에 읽었던 <1리터의 눈물>의 주인공 키토 아야가 떠올랐다. 그의 경우도 역시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며 삶에 더 충실해지지 않았던가.


딸 하나는 올해 열다섯 살쯤 되었을 텐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책은 사실 나와 전혀 무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전에 떠올린 궁금증처럼 나와 전혀 무관한 누군가의 삶을 궁금하게 하고, 관심을 끌어낸다.

가까운 사이라서 무관심하고 소원하기 쉬운 우리에게 지금을, 살아있는 시간을, 함께 하는 순간을 조금 더 소중히 하지 않으면 분명 후회하고 말 것이다.


일주일은커녕 한 달에 한 번 전화할까 말까 한 가족에게, 내일은 전화 한 통 넣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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