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된 한 편의 시를 읽다

시옷의 세계_김소연

by 가가책방
시옷의 세계.JPG

하물며,

시는 조금도 막연하지 않다.

시야 말로,

과녁에 꽂히는 살과 같이 깊고 또 날카로운 것이니.


본래라면 두 달도 전에 이 책은 다른 이의 손에 넘겨져 내 곁을 떠났어야 옳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나와 함께 있으니, 이는 이 책이 나의 살에 더 가까움이라.


어쩐지 무르고 달달할 것 같은 제목 <시옷의 세계>에 끌려 가볍게 읽으라고 건넬 생각으로 샀던 책이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한 권이 한 편의 시 같아서 그만 되가져오고 말았다. 이 책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읽지도 않은 책을 다른 이에게 사주려 했던 안일함을 기억하라는 하나의 증거로써다.

거기에 읽은지 두 달이 넘어 적는 감상은, 또 하나의 증거로 삼아 다시 실수를 거듭하지 않기 위함이다.


'시옷의 세계'란 얼마나 깊고도 넓은가.

나는 아직 '기억의 세계'도 돌아보지 못했건만.


솔직히는 왜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편의 길고 긴 시를 읽는 것 같다고 느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막연한 느낌이 무엇보다 더 확고한 증거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법이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이것은 확실히 한 편의 시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어떻게 달리 생각할 수 있을까.


'시옷'이라 읽고 'ㅅ'이라 쓰는 이 자음은 참 기묘하다. 시옷이라고 읽는 순간 'ㅅ'이 아니면 다른 어떤 것도 '시옷'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시옷'만큼 모순된 자음이 또 있을까?

'사랑'과 '실연'이 모두 '시옷' 안에 들어 있고, '순수'와 '술수'는 한 끗 차이밖에 나지 않으며, '생(生)'과 사(死)'마저 시옷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은가.


시옷은 또한 생김 마저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기대고 선 두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날아가는 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고, 날아가는 새는 독립된 존재로 자유를 누린다. 자유와 의지가 한 몸에 있으니 '사람'이 '시옷'으로 시작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다.


아, 시옷의 세계.

시인은 또한 '시옷의 세계'의 대표적인 주민이기에, 그 맺음이 끈끈하고 어울림이 짙은 모양이다.

시인이 시인들의 이야기로 한 권의 책이라는 세계를 만들었으니 그렇게 생겨난 책이 시가 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역시 처음의 그 느낌처럼,

이 책은 한 권으로 된 한 편의 시가 분명하다.


어쩐지, 숨 쉴 틈도 못 찾고 단숨에 읽히더라니.

조금만 그 호흡이 길었다면 지금 이 감상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산문시보다 더 긴 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이후로 처음인지도.


다시 곱씹어 읽고,

오늘의 감상과 비교할 날이 기다려진다.


덧: 시 아니랄까봐 감상 쓰는 것도 유난히 더디고 또 어렵구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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