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_김 산, 님 웨일즈
이 책을 읽고 있자니 한 친구가 물었다.
"그건 몇 권 짜리야?"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과 혼동한 탓이다.
배경이 되는 시기는 비슷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소설'이나 이것은 '기록'이므로.
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것은 이상형에 관한 것이었다.
'이상형'
다음 구절이 그 생각을 떠올리게 된 계기다.
내게 어떤 특정한 종류의 인간적인 교제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반성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에게는 나를 변화시키고 내게 영향을 줄 사람, 내 의지를 꺾고 내 의견을 비판해 줄 사람, 내가 옳을 때에는 지혜롭게 축하해주고 틀렸을 때에는 그 오류를 깨닫게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게는 강하고 뛰어난 사람이 필요했다. 아니라면 내가 충분한 것일까? 그렇다면 왜 자신을 향하여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일까?
<아리랑> 중
이 부분은 김 산이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인물과의 만남 이후에 일어난 내면의 갈등을 적은 것이다. 이때 김 산은 이미 결혼했기에 이 여성을 거절하지만 아마도 그 거절이 힘겨웠던 모양이다. 그야말로 자신이 찾고, 기다렸던 뛰어나고 강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종종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도 나는 연애를 못한다. "안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도 적잖이 듣지만, 못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단순히 애정을 나누는 관계로,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면에서든 나를 나아지게 만드는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틀렸을 때 오류를 깨닫게 해주는 사람,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물론 애정을 나누는 것, 사랑을 주고받는 것 역시 '인간성'을 나아지게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그것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오래 견디지 못할 게 분명하기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아차, 어째서 여기에서 이상형을 고백하고 있는 것인가!
진짜 책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김산은 잊힌 혁명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다 숨을 거두었음에도 잊히고 말았다. 오히려 기억된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두 번쯤은 망설이거나 머뭇거렸고, 일제와 타협하기도 했으며, 변절하거나, 전향한 자도 적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조차 '독립운동가'로 남는 세상에 진정한 혁명가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마침 오늘은 6월 6일, 현충일이다.
잊힌 혁명가들을 기억하기에 좋은 날인 셈이다.
1919년 3월 1일, 3. 1 운동 이후, 김산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를 결심하고 11살의 나이로 집을 나선다. 이후 일본, 중국, 만주를 다니며, 서른하나라는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혁명가로서 그야말로 불꽃같은 삶을 살아간다.
저자인 님 웨일즈는 조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중국으로 간다. 거기서 김산과 운명적으로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게 된다.
내용은 대부분 김산이 회상한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이며, 그 기록에는 필연적으로 그가 가담했던 조직과 운동, 노력과 좌절, 사랑까지가 담겨 있다. 님 웨일즈는 몰랐지만 이 책의 원고를 완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김산은 중국 공산당에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뛰어난 자를 시기하는 건 하늘이 아니다. 언제나 인간인 거다.
김산은 뛰어난 혁명가였으나 조선인이었으며, 중국 공산당의 주요 요인으로 활약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놓고, 성과를 만들어도 암암리에 돋아나는 차별과, 질투까지 극복하지는 못했던 거다. 그러나 그는 미련 없이 삶을 끝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완성된 인간,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무장된 완벽한 혁명가였기에.
그대는 소근거리는 소리와 침묵의 웅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개인과 집단들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그리하여 그 때문에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진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지 큰 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아리랑> 중
김산은 생애의 마지막을 공산당에서 보냈다. 세력을 키우고, 민중을 깨우기 위해 노력했다. 커다랗게 떠들며 민중을 선동하기보다 민중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김산이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한 진리다. 언제나 떠들썩한 외침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기보다 혼란을 만들어 무엇인가를 가리거나, 숨기거나, 속이려고 하는 시도이기가 쉽다. 그러므로 진정 신중한 이들은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후 20여 년이 흐른 뒤, 중국의 공산당이 한국의 통일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면 어땠을까?
김산이 주로 활동한 곳이 중국이기에 대부분의 이야기 속에 중국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김산은 조선인과 중국인의 성정의 차이를 거듭거듭 이야기한다. 중국인의 잔인함과 야비함, 비겁함이 일본 제국주의를 저지하는 것을 방해하고, 내부의 분열을 야기하며, 간단히 배신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김산은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승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잔혹성은 긍정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중국인과 일본인의 잔인함에 몇 번이나 거듭 놀란다.
모옌의 소설『홍까오량 가족』에서 나오는 것처럼 일본이 야욕을 드러낸 이후에도 중국 내에서 분열과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다투는 동안 피를 흘린 것은 결국 민중들이었다. 김산 역시 이 모든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그의 좌절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언제부턴가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산의 삶을 보면서 역시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엄혹한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함은 투쟁하기보다 타협하기를 선택했음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살아 남아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동료를 팔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자들이 적지 않다. 지휘자의 임무를 내팽개치고 살아남기 위해 홀로 전장을 떠난 장군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다. 결국 용감한 이들, 굽히지 않고 투쟁을 계속한 이들은 죽음을 맞는다. 살아남은 비겁자들은 만약 굽히지 않은 이들이 살아남았다면 차지할 수 없었을 자리를 차지한다. 비겁자의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혹여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번에는 비겁자들이 그를 질투하고 시기하기 시작한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그는 밀려나게 되고, 마침내는 역시나 비겁자들이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역사는 언제까지나 퇴보를 거듭한다. 약자들이, 살아남음으로써.
김산이 민중을 깨우는 일에 집착한 이유도 그런 것이었을 거다. 만약 민중이 모두 깨어있다면, 진실을 바로 본다면 비겁자들은 꼼수를 부릴 수 없게 되어 자연히 밀려나게 된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는 그보다 더 비겁할 수 없는 변명이 된다.
'어차피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해. 그게 나일 필요는 없잖아?' 살아남은 자들의 변명이다.
어차피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그것이 나인 것이 낫다. 성인인 척할 생각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삶은 반드시 누군가를 감동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감동은 간단히 사라지지 않는다.
김산은 자신의 투쟁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투쟁이야 말로 그가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승리를 얻기 위한 잔혹성은 긍정한다고 했지만, 스스로 돌아봤을 때 비겁하다고 느끼는 것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님 웨일즈가 미국에서 출간한 이 책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에서 일본에 번역되어 출간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이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출간이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금서로 지정되어 단속의 대상에 오르게 된다.
살아남은 자들이 비겁한 자, 기만하는 자, 속이는 자, 배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에 대한 무지를 새삼 실감했다. 이렇게나 모르고 있었다니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빼놓고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없다. 새삼스럽지만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산처럼 불꽃같이 살 수는 없다고 해도, 나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조급해지지도 않을 것이며, 건강 관리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한 번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나름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새삼, 다시 하게 됐다.
신념과 믿음, 나라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육체와 생명, 영혼까지 불살랐던 모든 숭고한 희생자들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 삶들,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