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사랑은 같은 것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트 카터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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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이전의 희미한 기억 가운데 일상에 관한 것이란 거의 모든 것이 산과 들과 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그렇게 크고, 넓고, 높기만 하던 그 모든 것에 희미함이 덧씌워져 돌아보면 이제는 아련하기만 합니다.


문득 처음으로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진다는 걸 '인식'했던 것이 언제였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몰랐을 때, 아직은 발 딛고 있는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그 무렵의 하루란 어떤 의미였을지.


사실 그 하루가 어떤 의미였는가 하는 것이 그날의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동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시간의 개념조차 희미했기에 밝은 날 정도의 생각만 했을 테니까요. 산 속을 다니며 아지트를 만들고, 개구리며 잠자리를 잡고, 물이 흐르는 걸 보고, 그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보고, 미지의 세계인 이웃 마을을 탐험하고, 자연의 이치와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던 시간.


지금이라면 시간 낭비라고 할 많은 일들에 쏟아부었던 유년의 시간들은 삶 가운데서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떠세요?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시겠어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체로키 인디언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작은 나무'는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부모님을 여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작은 나무에게 주입식으로 교육을 시킨다거나,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주지 않아요. 인디언의 방식으로 자연 속에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며 깨달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려 주지요.


작은 나무는 스스로 생각하고, 물음을 반복하며 지식이 아닌 지혜를 쌓아갑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해하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을 통해 깨달아 가죠.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분별하는 법도 배워갑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거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무력하거나, 무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 없이 한 사람의 몫을 감당하게 하며, 뜻과 의지, 생각을 존중해 줍니다.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는 결코 삐뚤어지지 않습니다. 타인과 세상을 존중하는 법도 함께 배우기 때문이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가르치는 법을 하나 예로 들어볼게요. 한 번은 작은 나무가 자신의 전재산인 50센트로 병든 송아지를 사는 일이 생깁니다. 그 송아지는 집까지 오지도 못하고 길에서 죽고 말죠. 할아버지는 그 송아지가 병들었음을, 곧 죽을 것임을 알았지만 작은 나무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이었어요.

저녁을 드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자, 봐라, 작은 나무야. 나는 네가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단다. 만약 내가 그 송아지를 못 사게 막았더라면 너는 언제까지나 그걸 아쉬워했겠지. 그렇지 않고 너더러 사라고 했으면 송아지가 죽은 걸 내 탓으로 돌렸을 테고.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중

오래전 처음 읽을 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어른들은 자녀와 제자들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조언하고, 말리고, 시키고는 합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

"그걸 했다가는 평생 후회할 걸!"

"내 말을 들어, 그게 가장 나은 길이야." 하는 식으로요.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다른 것은 어떤 사람은 실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남과 세상을 탓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가장 큰 책임은 어른들의 친절에 있습니다. 그 친절과 배려가 아이들이 경험하고 스스로 깨닫는 기회를 빼앗아 버리고 마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쉽게 합니다.

"요즘 애들은 왜 그런지 몰라."

그러나 그 요즘 애들은 사실 그 사람들의 아이이거나, 그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의 아이입니다. 남의 일처럼 '요즘 애들'이라고 말하며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거죠.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는 글씨를 읽지 못하지만 현명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말 많은 그 빌어먹을 놈의 자식들이 이렇게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단 말이야. 앞으로 너는 누가 다른 사람을 헐뜯는 말을 하면 그 말을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런 건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거니까. 그것보다 말투를 잘 들어봐. 그러면 그놈이 비열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중

인디언인 할아버지는 자연과의 조화를 깨뜨리고, 거짓말을 일삼는 이들을 미워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건 정치인인데, 그들이 위스키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세금을 높게 받기 때문이었어요. 참 어린아이 같지만 솔직하고 진실된 사람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는 성품을 갖고 있지요.


작은 나무를 가르치는 말도 조금은 험하고, 투박하지만 그 가르침은 진짜배기입니다. 번지르르한 말을 듣고 휘둘리면 안 되며 그의 진심과 의도를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작은 나무가 경험한 것을 통해 알기 쉽게 가르쳐주니까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가르침 가운데는 허무맹랑하거나 뜬구름 잡기 식의 이론적인 지식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삶과 맞닿아 있는 살아있는 가르침이었던 거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작은 나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가르침은 '사랑'에 관한 것이에요.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중

사랑이 넘치는 시대인 동시에 항상 사랑에 목말라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입니다. 이들에게 '이해와 사랑이 같은 것이다'라고 하면 뭐라고 답할까요?

참 많은 사람들이 성격 차이로 이별합니다. 물론 성격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다른 것을 참고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에너지와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성격을 바꾸겠다는 생각도 허황된 것이지요.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노력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작은 나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작은 나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의지와 지혜를 전해줄 수 있게 되지요. 흔히 열 살짜리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믿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까지 배웠으니, 오히려 그보다 몇 배는 나이를 먹은 저보다도 더 많은 깨달음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우리 소중한 아이를 어떻게 곱고 귀하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프랑스 아이처럼 키워라, 일본 엄마처럼 가르쳐라,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 등등 참 복잡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조언에는 아이 본인이 빠져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하는 의지는 들어있지 않은 거죠.


"아이들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이 말은 분명히 틀린 말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두 살, 세 살짜리 아이들의 행동을 보세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말을, 행동을 해서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아이들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부모의 말과 행동, 그 모든 것에서 아이들은 배움을 얻고, 생각을 형성해 갑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소설입니다. 그저 마음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한 소설이에요. 하지만 한 아이가 성장해가는 모습과 그 아이가 배움을 얻는 과정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옛날이야기다."

"시대착오적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결국 뒤처질 뿐이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겁니다. 어른들, 부모님들이 경험했던 세계에서 통했던 지식과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올 거라는 거죠. 그 시대의 과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건 단순히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 편의 소설 이야기에서 너무 멀리 왔네요.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따뜻함을 어린 시절부터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쩐지 그렇게 바라게 되는, 이 이야기는 그런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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