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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Nov 21. 2016

기억은 견고한 사상누각이다.

『2012 제 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좀처럼 해설을 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외부의, 소위 '전문집단'이라고 하는 자들의 생각이 끼어드는 것이 싫다는 막연한 거부감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거부감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막연한 거부감이 아니라 조금 더 구체적인 거부감이 되었다는 게 조금 다릅니다. 구체적이라고 적었지만 어떤 점, 어떤 면에서 이러하고 저러하다고 콕 짚어 말할 정도는 못됩니다. 다만, 이제는 왜 해설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는지 조금은 스스로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해설을 읽는 이유는 다양한데, 작품이 난해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 해설을 찾게 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나의 생각, 해석이 얼마나 '전문가의 해석'에 가까웠는지 궁금할 때 읽게 됐고 말입니다. 

 『2012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가장 마지막에 읽은 작품이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이었습니다. 해설이 유난히 짧기에 슬쩍 들춰봤는데, 어쩐지 제가 생각한 것과 먼 지점에서 해설을 풀고 있어서 뭔가 묘한 기분이 되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허술하고 짧으나마 <국경시장>에 집중에서 감상을 적어보자는 거였습니다. 


 이제부터 적는 건, <국경시장>의 짤막한 감상문이 됩니다. 

『2012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흥미를 끌었던 몇 작품 중에 한 편이니, 한 권을 아울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 생각에서는 말입니다.


 제목은 <기억은 견고한 사상누각이다>입니다.

모래성을 지어본 경험이 있으신 지 모르겠습니다. 모래성이 아니라도 두꺼비집 정도는 지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어려서 두꺼비집을 지을 때 부르던 노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다오."하고 무한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노래를 부르며 손등 위에 얹어둔 모래를 두드렸던 기억도 함께 말입니다. 한참을 두드리고 조심스레 손을 빼내면, 손등 위에 얹어둔 모래는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고, 간단히 무너지지 않으면서, 내부를 파내고 소꿉놀이 도구를 넣을 때까지도 버텨주고는 했습니다. 

 모래로 지은 집, 가운데를 받치는 기둥 하나 없는 집은 어떻게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지 오래 궁금해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이 모래에 묻어있는 수분이 모래집과 모래성의 견고함의 비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래성을 허무는 줄만 알았던 물이, 모래성이 버티게 하는 힘의 원천이었던 겁니다. 

충격입니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은 직역하면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라는 의미입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간단히 무너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재밌는 건 모래로 지은 성이라고 해도 적절한 수분이 유지된다면, 그렇게 간단히 무너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견고한' '사상누각'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여기에서 생겨납니다. 


 <국경시장> 속에 그려진 '국경시장'이라는 공간은 '도깨비 시장'처럼 허황되고,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동시에 위험합니다. 이곳 국경시장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15세 미만의 소년들만이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의 비늘입니다. 소위 '어른'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팔아야만 이 비늘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처음 비늘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파는 기억은 '기억나지 않는 기억'인 유년기의 기억 혹은 '잊고 싶은 기억'인 나쁜 것과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기억을 파는 사람들은 '필요 없는 것'을 팔아서 '지금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 기억을 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 번 기억을 팔기 시작하면 결국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분별하게 기억을 팔게 되면서 결국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인간은 대단히 강한 존재입니다. 동시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도 모순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인간이 강할 수 있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나'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연약해지는 순간은 '나'를 잃어버렸을 때가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 '나'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는 과거와 현재 모두를 합친 총합을 의미합니다. 나쁜 기억이든, 기억나지 않는 기억이든 그 모든 것이 있기에 지금의 '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이 나쁜 기억, 기억나지 않는 기억이 사라지게 되면 더 이상 나로 존재할 수 없게 되고, 마치 견고하게 세워져 있던 모래성이 단지 몇 알의 모래알이 빠져나감으로써 무너지게 되는 것처럼 대단히 빠르고 걷잡을 수 없이 파멸로 치닫게 된다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상누각과 닮아있습니다.

무한히 단단해질 수 있는 동시에, 한 없이 약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높은 압력과 고온을 견딘 모래는 사암이 되어 좀처럼, 간단히 깨지지 않는 디딤돌 역할에 쓸 수 있게 됩니다. 

동일한 경험을 했다고 해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겁니다. 


 회피와 부정은 잠시 시간을 벌기에는 유용하지만 마침내는 간단히 무너지는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두려움을 품고 살아갑니다. 도망치고 싶고, 부정하고 싶고, 회피하고 싶은 욕망과 매 순간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세계를 부정하고, 거부함으로써 국경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대단히 비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자신과 세상은 별개일 수 없습니다. 어느 곳으로 가든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부정(不正)은 부정(腐井)을 낳고, 결국 주변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부정(否定)하기에 이르러 모든 것을 잃게 될 테니 말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대단히 견고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필요 없어 보이는 것조차, 실제로는 대단히 요긴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겁니다. 한 인간이 완전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 없는 기억이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합친 것이 '나'이고, 그런 나로 살아가는 '세상'이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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