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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r 02. 2017

책도 처방이 되나요?

책은 부작용 없는 만병통치약에 가장 가까운 약이 아닐까.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_카를로 프라베티/문학동네

책 추천을 넘어 책을 처방해주는 서점이 생겼더군요. 

"아, 이거 내가 하려고 했던 건데."하는 생각이 한편에 떠오르긴 했지만, 정말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역시 할 사람은 따로 있는 거라며 마음을 달랬습니다.(후후)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는 사려고 했던 책이 아니었는데 읽어보다가 사게 된 책입니다. 

안 사려다가 산 이유는 '책'이라는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이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아, 이렇게 얘기해도 "뭔 소리야?"싶으실 테니 간략하게 줄거리를 먼저 적어보겠습니다.


 루크레시오라는 좀도둑이 하나 있습니다. 이 도둑은 친한 친구, 수프와 함께 한 집을 털기로 하고 약속을 합니다.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간에 루크는 그 집에 먼저 도착해서 친구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친구는 나타나지 않죠.
 집이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고, 헛걸음을 하는 게 아쉬웠던 루크는 혼자서라도 집을 털기로 합니다. 그런데! 막 집에 들어가려던 순간 묘하게 생긴(묘하게 무서운?) 남자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모를 아이에게 들켜버립니다.
 처음에 루크는 힘없는 아이 하나쯤이야 하고 생각하고 무시하려고 하지만 애완견으로 키우는 거대한 늑대가 등장하자 깨갱하고 물러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아이는 루크를 보내기는커녕 자기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탁(협박)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낯 모르는 아이의 아빠 역할을 하게 된 루크.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요? 점차 아빠 역할에도, 기이한 집에도 익숙해져 갑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간단히 흘러가지는 않죠. 거대한 늑대(85킬로그램)를 산책시키는 일과 칼비노(이상한 아이)를 병원까지 데려가는 일이 루크를 기다립니다.
 루크는 병원에서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정신병원이었는데, 환자들이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속 인물들처럼 말하고, 행동했던 거죠. 마치 루크가 좀도둑이면서 칼비노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누구인지 자각하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끝까지 다 얘기해버리겠네요. 아무튼, 마지막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관심이 있으시면 슬쩍 읽어보시길. 얇고, 짧고, 쉽고, 은근히 재밌습니다.


 줄거리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 속 인물들은 어딘가 '모호함'을 품고 있습니다. 이중적 혹은 다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남자아이 같은가 하면 여자 아이처럼 보이고, 사납고 거칠 듯 보이면서도 소심하고 겁이 많습니다. 제정신인 듯하면서도 얼마간 미쳐있고, 미친 듯 보이지만 지극히 정상이죠. 

 

 이야기를 시작하며 꺼냈던 책에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을 이제는 얘기할 수 있겠군요.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핵심입니다. 루크가 칼비노와 함께 방문했던 '정신병원 도서관'에서는 환자들에게 책을 처방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읽기를 권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을만한 인물이 등장하는 책을 찾을 때까지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정신병자는 말 그대로 정신에 병이 있는 사람, 좀 더 해석하자면 자아를 잃어버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불안정한 상태 이기에 자신을 책 속 주인공이라고 '착각'하거나 '동일시'하는 거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런 행동은 수동적인 반응도, 제어 불가능한 발작도 아닙니다.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환자 자신도 자신이 주인공과 다름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상태죠. 자신이 주인공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의 본래 모습을 인지하면서도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상하겠죠. 이상한 상태라고 생각되겠죠. 이게 무슨 소리야 싶을지도 모릅니다. 좀 더 얘기해보죠.


 이 환자들은 스스로 이야기 속 인물들을 선택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물론 쓰인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스스로 생각하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떠오르는 걸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차이가 발생하는 거죠. 

 소설 속 인물들은 평면적입니다. 입체적으로 성격을 그린다고 해도 한계가 있죠. 하지만 그 인물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인물의 성격, 특징, 습관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야기의 줄거리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불안은 덜어질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 속 인물의 성격이나 습관, 특징은 고유한 상태로 존재하니까요. 혼란은 덜고,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정신질환의 주된 원인은 불안입니다. 너무 불안하고 또 불안해서 끊임없이 걱정하고 근심하고 노심초사하다가 보면 지쳐서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어 불안한 사람에게 확실한 존재를 부여한다는 게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에서 책에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믿을만한 사람도, 의지할만한 데도 거의 없죠. 그렇다 보니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보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정상으로 보일 때도 적지 않습니다.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에서는 책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에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건 사람이며, 사랑이라는 메시지도 놓치지 않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중대한 건 사랑의 문제입니다. 부자이거나 권력자 거나 힘이 세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약자가 될 수밖에 없죠. 결국 사랑의 문제라는 겁니다.


책을 처방하는 일, 전문가라는 공식적인 인증을 받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맞는 이야기를 찾거나 발견하는 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큰 도움은 아니더라도 댓글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이야기 걸어주세요. 그럼 처방은 아니더라도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호오, 저런.

시작해 볼까요?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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