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센 파도를 보지 못하고.

왜 길을 잃었느냐고 물으시는지요.

by 가가책방

몇 주간 여유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난독증이라도 걸린 듯, 책하고도 조금 멀어졌어요.

업무로도 이미 충분히 많은 책을 보고, 또 판단하고 있기에 읽지 않았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멀어졌다는 말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분명한 하나의 증거는 감상을 적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적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적지 '못하고' 있었죠. 읽은 지 한참인 책들은 기억에서도 흐릿해지는데, 멀어지는 걸 넋 놓고 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걸 압니다.


미리 얘기하자면 이제부터 적을 건 '요즘의 나'에 대한 '리뷰'입니다.

공개되는 일기, 혼잣말, 거의 의미 없는, 그런 단어와 문장의 나열입니다.

관심 없는 분이라면 더 읽을 필요가 없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써 둔 글을 다시 읽을 때면, 혼자 얼굴을 붉히게 됩니다.

나만 아는 그날들의 모습과 생각들, 기억이 떠오르는데 정말 우스운 건 그 기억들이라는 게 어떻게 공개적으로 써붙일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날 것 그대로의 상태이기 때문이죠.

요즘이라면 '이불 킥' 수천 번은 날릴 그런 글들을 구구절절이, 참 길게도 적었으니까요.


그 기억이 무의미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배운 것도 있었죠.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너무 아프다거나, 슬프다거나, 심지어는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있어도 "얘는 또 왜 이러니"하는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떠올리는 일이 드물다는 겁니다.

거기서,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에 공감하고, 동정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드물게 공감 능력이 뛰어나거나, 진정 동정하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발견한 '나'의 감정, 생각에 공감하고, 동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사람은 원래 다 그렇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이 생각도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드물지만 다른 사람이 되어 생각하려고, 느끼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부끄러운 날것의 이야기들을 남기고, 적을 수 있었던 거죠.


저는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즐거움, 책을 읽고, 느끼고 생각한 걸 적는 정도의 시간을 낼 수는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거면 됐다고, 충분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깨닫게 됐습니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고, 감상을 쓰려고 앉아서도 딴생각만 하다가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며 자리에 눕고 있는 지금의 '나'를 요.


이런 태도, 생각이 글렀다고 훈계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여유 있을 때 읽고, 쓰려고 해서는 절대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는 거죠.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스스로, 강력하게, 추진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가르침인 거죠.

모르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아니면서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틀에 박힌 충고를 하겠다면 모른 척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표현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회의주의자이고,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을 먼저 떠올리는 버릇을 오래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부정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죠.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면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렇게 말하고, 또 요구합니다.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면 해야 한다.

그러니 해라.


에휴.

어쩌겠어요.

세상을 좀 더 오래 살아가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남의 탓을 자주 합니다.

물론 저의 잘못과 부족함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과 남을 탓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도 있죠. 그럴 때는 짜증이 납니다.

누구는 그렇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래서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하죠.

일을 하는 것도 나, 책임을 지는 것도 나, 그 일을 시키는 것도 나.

일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모두 '나'만 있을 때가 제일 마음 편합니다.

포기도 쉽고, 시작도 간단하니까요.


세상을 그렇게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네, 맞습니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삶이라고 더 나아 보이지 않을 때도 많죠.

오히려 조금 참고 같이 지내는 게 더 편해 보일 때가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좀 제멋대로, 혼자가 더 편하다고 느낍니다.

정말.


혼자 살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한데, 물론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여러 의미로요.

하지만 종종 혼자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살기 힘들어지기도 하죠.

역시 여러 의미로요.


제멋대로와 혼자되기가 적절히 더해지면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동의나 공감을 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혼자될 수 없는 사람은 여유도 가질 수 없죠.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로울 텐데 여유가 어디서 생기겠어요.


아, 여기까지 쓰고 나니 벌써 쓰기 싫어졌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쓰는 사람이나, 혹여라도 이걸 읽을 사람에게나 의미 없기 마찬가지인 일을 하는 건 역시 낭비겠죠.


허나, 조금은 개운해진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지만, 뭔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식으로 외친 기분은 드니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외친 사람의 결말은 아실 겁니다.

죽죠.

속이 시원해진 후에.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거죠.

뭐가 그런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넋두리니까요.

의식의 흐름이랄까.


사실, 이런 낙서가 의미 없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다시 적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적더라도 지면에, 혼자 보는 일기장에 끄적이고 말 생각이었죠.

하지만 사람, 그렇게 간단히 변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일은 현재에 재현하게 되죠.

그게 무서운 겁니다.

반복된다는 것.


나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순간 잘 모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에 닿게 하는 건 때로는 사람, 책, 전해 듣는 이야기.

형태나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죠.

중요한 건, 소위 잘 아는 사람들은 "왜 길을 잃었느냐"라고 묻거나, 추궁하거나, 충고하거나, 조언하거나, 분석하거나, 판단한다는 겁니다. 이때의 판단은 그들이 보는 '나'를 기준으로 할 뿐이라,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파도'는 고려되지 않죠.

정확히는 고려될 수 없는 '한계 지점'에 진짜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여유 없어하는 나를 리뷰하고 싶었는데 하소연이 되고 말았군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스스로를 리뷰하겠다는 포부라니.

특히 오늘처럼 여유 없는 마음으로 무얼 따져보겠다고.


사실은 다만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길을 잃고 싶어서 잃은 게 아니라고, 거스를 수 없는 힘, 불가항력, 바다 위의 배를 덮친 파도, 그런 일이 나의 일상에서 생각보다, 너무 자주, 크게, 거칠고,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라고요.


이 글을 다시 읽게 되면 분명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지금의 나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려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이라도 다시 읽고 나면 올리지 않을 테니.

여기서 멈춘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의 기대를 꺾는 즐거움이란 제법 쏠쏠하니까요.

작은 복수랄까.

누구를 향한, 누구의 복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의미 없는 아무 말 잔치였습니다.

뭔가를 기대했다면.

다음 기회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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