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취중진담이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다시 밝힙니다.
취한 날에 씁니다.
그러나 '취중진담'같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진담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어떤 원리 혹은 이치에 의한 것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제게 맥주 5,000CC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주량을 물려주셨습니다.
화장실에 자주 들락 여야 하고 가끔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을 주체하지 못하는 날이 있기는 하지만 함께 마신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던 것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주량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에 단 한 번 필름이 끊긴 기억이 있는데,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였습니다. 그날 마신 술을 열거하자면 소주와 맥주와 동동주와 막걸리였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 간간이 기억의 결락 혹은 공백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필름이 끊기는 경험이었던 거죠.
필름이 끊기는 경험 후에 한 가지 확신하게 된 게 있습니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얼마나 비겁한 것인가 하는 깨달음이었죠.
취중진담을 적나라하게 풀어놓으면 이런 말이 됩니다.
'술에 취하면 취기를 빌어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속엣말을 쏟아내는 것.'
취기에 쏟아낸 말이 비겁한 이유는 언제든 철회 혹은 회수가 가능하다는 '취소'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진담'이라는 말에는 어울리지 않는 취중 발언에 어떻게 '진심이 담긴 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는지 처음 이름 지은 이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 저는 어느 정도 취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오늘 아침에 깨어나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다시 읽어보고는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고치거나 지워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취중에 쏟아낸 '진담' 같은 거라는 변명을 붙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제는 참 좋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노력한다는 말, 많이 달라졌다는 말, 나아졌다는 말, 좋아지고 있다는 말, 나쁜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었죠.
나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깨도 으쓱으쓱 하게 되고, 허파에 바람도 차서 신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좋은 사람'
이것은 종종 하나의 콤플렉스가 되기도 하는 환영의 주체가 됩니다.
어쩌면 순수하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이지만 욕심인 게 분명하고, 그것이 욕심이라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는 상태에서 무리가 되지 않는 만큼의 노력을 기꺼이 하는 상태. 하지만 돌아봤을 때 그것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은 후회하게 되는 상태를 저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라고 이름 짓습니다.
한 때 오만했던 사람으로서, 스스로가 결코 타인보다 우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믿는 보통의 인간으로서, 이 시간 저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이대로 잠들어도 누구도 무어라 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의무로서 어제의 나와 지금 이 시간의 나를 기록하여 잠에서 깨어난 나, 오전의 나 혹은 내일의 내가 나를 조금 더 알 수 있게 하는 단서로서 필요한 기록이기에 남기기로 합니다.
얼마만큼은 취한 상태, 감성이 지배하는 새벽이라는 시간에도 온전한 나를 잃어버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내일의 나는 얼마간 안도하리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이 기록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됩니다. 이 증언을 필요로 하는 심판관, 혹은 판사는 내일의 나 하나뿐이니까요.
앞에서 취중진담을 이야기했지요.
더하여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몹시 비겁하다고도 했고요.
이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으로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확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술의 기운을 빌려 속엣말을 털어놓고,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는 취기를 핑계 삼아 없던 일로 하려는 속셈.
제가 생각하는 취중진담의 정의란 고작 이런 것입니다. 언제든 회수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일.
아, 이런 진심이란 얼마나 하찮고도 가벼운 것인가요.
용기를 내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이 가져다준 취기를 빌어 말을 꺼내고,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관계없이 어제처럼 행동하려고 하는 무책임함은 얼마나 비겁한가요.
그래서입니다.
취중진담은 그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성립할 수 없는 거라고 믿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이제 이 글을 쓰는 걸 마치고 잠에 들었다 다시 깨어나 읽게 된다면, 오늘까지 깨어있던 오늘의 내가 아니라 이제 다가올 아침에 깨어날 내일의 내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지금까지 적어둔 이 글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록하는 자 가운데 하나로서 이 글을 지우는 걸 허락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증거, 어쩌면 결정적인 단서로서 어제의 나, 오늘 새벽까지의 나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물증'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스스로의 기억을 믿고 의지하다, 그 기억에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어리석은 인간으로서 기록의 유의미함을 충분히 의식하고, 인지하고 있다고 믿기에 도저히 삭제를 생각할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한 건 어제 너무 좋은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내가 그 말들을 기쁘게 들으며, 만족하고, 행복해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만족과 행복이 제 안의 나태와 허영을 자극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태는 게으르게 하고, 허영은 눈을 흐리게 합니다.
취중진담의 취중은 나태함으로 맑은 정신일 때의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들고, 우쭐해하는 마음, 허영 섞인 진담은 '나의 마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셈이 된다는 걸 보지 못하게 합니다.
어렵게 말을 꺼냈던 거라며 분노하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잔뜩 술에 취해 무어라 말하는지 알 수도 없을 지경인 이들이 울분에 차 부르짖습니다.
'으어어어' 혹은 단말마의 욕설들을 말이죠.
이것은 취중진담인가요.
취중진담이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폭력일 수 있으며, 폭력이 아니더라도 강요 혹은 무례일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진심이라면 맑은 정신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심이라는 말 자체가 진실된 마음, 다르게 풀어보면 찌꺼기가 끼어있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요.
불순물로 가득 차서 혼탁한 마음이 쏟아내는 말이 어떻게 진담일 수 있는지.
오늘까지의 저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여기까지 적고 나니, 이만큼 적은 말들이 얼마나 우스운 헛소리일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납니다.
취중진담을 부정하는 동시에 하나의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지금의 상황이 몹시 우습기 때문에요. 하지만 덧붙이건대 이 말들은 술에 취했기에 늘어놓는 충동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말짱한 정신에서 취중진담을 부정하는 이야기를 적었었고, 오늘은 그 연장으로서 취한 상태에서 얼마나 온전히 사고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하나의 시험대에 던져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시간도 늦었고, 취기도 올라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꿈 없이 잠들었으면 합니다. 그랬으면 합니다.
고운 하루하루가 되기를.
오늘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게 안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