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 목격한 비둘기 한 마리의 죽음에서.
언제 시작된 건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냥 문득 "나는 요즘 우울한 모양이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랬구나."하고 생각해버렸을 뿐입니다.
이런 반응 역시 우울의 부작용 중 하나일 테죠.
'우울'이라는 상태를 특별히 극복하려고 애쓰는 편은 아닙니다.
그건 억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대책 없이, 막연한 구원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변해야 하는 건 '나'가 아니라 자신의 상태와 상황입니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법이고, 변하기는 하지만 그 변화 속도가 더디기 쉬우며, 갑자기 변한다고 해도 적응에 시간이 걸려서 자칫 처음으로 돌아가기에 '나'의 변화에만 매달리다가는 지치기 쉽죠.
하지만 상태와 상황, 환경은 바꾸기가 조금 더 수월합니다.
정확히는 '바꾸는' 게 아니라 '다르게 보는' 거지만요.
솔직히 다르게 보는 것도 간단하지 않고,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 노력조차 하지 않을 생각이면서 달라지고 싶다고 말하는 건 아직 간절하지 않은 거겠죠.
위에 올려둔 사진에는 '죽음'이 찍혀 있습니다.
사진에는 소음 하나 없지만, 소리 없이 사라지는 생명이란 어디에도 없기에 무슨 소리라도 만들어 주기로 합니다.
출근길이었습니다.
아마 우울하지 않았다면 못 보고 지나갔거나, 봤더라도 못 본 척 지나쳤을 겁니다.
사진 속에 흩어진 몇 장의 깃털이 말하는 것처럼, 검고 붉은 자국이 증거 하는 것처럼, 그리 오래된 죽음은 아니었습니다. 온전한 죽음도 아니었고요.
비둘기는 모양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납작해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
당연히 묻어주기 위해 도로에서 떼어내는 과정에서 확인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겁니다.
처음부터 흙을 찾아보기 힘든 도시인 데다, 겨울이라 그나마도 얼어있어서 묻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까운 곳에 묻을 만한 데가 있었습니다.
'묻히는 것도 운'이랄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비둘기의 죽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상상할 수 있나요?
자살하는 비둘기를.
엉뚱한 생각입니다. 자살하는 비둘기라니.
하지만 우울한 상태에서는 온갖 망상이 상상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르고, 사그라지는 법입니다.
평소에도 저 자리는 불법주차가 잦습니다.
바로 20미터 정도 앞이 막힌 길이라 고속으로 달릴 구간도 아니죠.
자동차 바퀴에 완벽하게 깔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비둘기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상상입니다.
아주 근거가 빈약한 상상이죠.
실제로는 사고였고, 어떤 의도나 의지도 없었을 겁니다.
또 하나의 가엾고 안타까운 죽음이죠.
하지만 날기보다, 살기보다 죽음을 택하는 비둘기가 있다면, 이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절망했다면, 함께 깃들일 이 없어 외로웠다면, 그럴 수 있다면 말이죠.
삶에는 빛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말이죠.
하지만 삶 속 빛은 아침 해처럼 매일 제시간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구름에 해가 가리듯 삶의 빛을 가리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작은 구름은 해를 가리지 못하지만, 작은 근심이 마음의 빛을 가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우울이 치명적이라는 건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죠.
우울을 걷어내고, 빛을 돌려받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죽음,
작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는 일은 제가 종종 쓰는 방법입니다.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비둘기를 수습해서 묻어주는 일은 잘한 일이지만, 이후에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것보다 잘한 일은 아닙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거니까요.
흔한 것은 생각을 자극하지 못합니다.
요즘에는 죽음 역시 너무 흔해서 생각을 이끌어내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그 죽음들이란 너무 멀리 있거나,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주변의 작은 죽음들을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우울함이 무력함으로만 생겨나는 일은 없죠.
무력함이 반복되고, 자포자기하게 되고, 나와 세상을 원망하고, 무관심해져서,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리는 일도 우울함일 겁니다.
우울은 소리 없이 찾아듭니다.
일요일 밤, 월요일 아침, 금요일 저녁.
언제 찾아와서 무슨 일을 벌일지 우리는 알지 못하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에 작은 불 하나를 밝히는 정도로 작은 일입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밝히는 불이 아닙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밝히는 불이죠.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울함이 정말 위험해지는 순간은 '나를 잃어버렸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너무나 작습니다.
그나마의 소리도 모른 척 무시하는 일이 잦습니다.
삶은 너무 바쁘고, 소란스러우며,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멈춤의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비둘기의 죽음이 저를 멈추게 했듯이,
매일 일어나는 그 흔한 일이, 저를 생각하게 했듯이,
저는 괜찮을 겁니다.
여전히 조금 우울하지만, 이렇게 소리 낼 수 있는 동안에는 괜찮습니다.
세상에 작고, 힘없지만, 이렇게 응원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은 괜찮습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괜찮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