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적'은 '인간적'의 반대말이 아니다.

도대체 '인간적'이라는 건 뭘까.

by 가가책방
binary-1536617_1920.jpg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 질 땐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어린 닉 캐러웨이에게 아버지가 해준 충고입니다.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시작하며 들려주는 말이죠.

지금부터 하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그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아무래도 좋은 그런 겁니다.

마음대로 생각하시면 된다, 그런 얘기입니다.

어쩌면 상관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누구나 '인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은 있을 겁니다.

'인간적'이라는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이란 뭘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라면 누구나요.

'인간'에 대해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던 첫 기억은 중학교 1학년 즈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의 고민을 한 문장으로 적어보면 이런 거였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거창해 보이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철학적이지도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이 물음이 시작된 이유는 서로 '속이기 위해' 거짓말하고, '상처주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니까요.

그때는 그냥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왜 싸우는지.


지금은 오히려 수다스러워졌지만 그때만 해도 무척 과묵하고 또 예민한 아이였죠.

주로 하는 건, '인간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늘, 인간을 보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어떨 때' 그렇게 하는지 알아내야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기이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인간적'이라는 게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거죠.


인간에 대한 정의는 인간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점점 더 늘어나는 듯 보입니다.

인간을 연구하고, 배우고, 알아가는데도 점점 더 정의가 다양해진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알면 알수록 알 수 없게 되어간다는 이야기처럼 여겨집니다.

'알면 알 수록 모르게 된다.'

기이하지만 간단히 결론 내리면 이렇게 되겠죠.


서두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합니다.

새삼스럽게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영화를 한 편 봤기 때문입니다.

제목은 <채피 Chappie>입니다. 2015년에 개봉한 인공지능로봇이 등장하는 영화죠.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범죄를 진압하는데 인공지능로봇 경찰이 동원되기 시작하고, 로봇 경찰은 경이로운 활약을 벌이며 많은 흉악범들을 제압하고, 굳건한 범죄 억지력으로 자리를 잡아갑니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이러한 성공을 시기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인공지능로봇을 불신하며 유인 로봇을 개발하는 개발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하지만 인공지능로봇의 활약이 계속되면서 유인 로봇 프로젝트는 위기를 맞습니다.
이때, 인공지능로봇 개발자는 드디어 완벽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완성합니다. 스스로 배우고, 사고하며, 성장하는 '마음'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낸 거죠. 유인 로봇 개발자는 경악합니다. 인간에 대한 도전도, 인공지능로봇의 성공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겁니다. 유인 로봇 개발자는 악성코드를 만들어 로봇 경찰들에게 퍼뜨리고, 로봇 경찰은 작동이 정지됩니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범죄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면서 나라는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이때 '마음'을 가진 로봇이 범죄자들을 돕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혼란은 잠재워지게 되는지,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불신을 회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신 분은 한 번 보시길.

"이 영화는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너무 많은 장면에서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는 인간도, 인공지능로봇도 지나치게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온통 인간이 생각하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두려워하는 로봇의 미래로 가득하다고 할까요.


알파고 이후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게 될' 미래를 겁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언젠가'가 될 막연한 불안이었다면 이제는 실체가 있고, 조만간 실현될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겁니다.

비전공자가 로봇이 어떠하고, 인공지능이 어떨 거라고 말하는 게 전공자들과 전문가들에게는 우습게 보일 수 있고,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 있지만 이제부터 하는 얘기는 제 생각이기에 너무 혼내지는 말아주시길.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염려 가운데 가장 크게 보이는 건 '로봇에 의한 지배'가 아닌가 합니다. <터미네이터> 라거나 <매트릭스> 라거나 하는 식의 미래가 현실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영화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런 미래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처럼 보입니다.

어떤 '인간적인 생각'이냐 하면, 로봇이 '인간처럼' '살고 싶다'라고 느낄 거라고 여긴다거나, 적 혹은 위협이 되는 존재는 '말살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라고 판단한다거나, 인간처럼 '속이고 거짓말'하게 될 거라거나, '인간을 지배'하고 싶어 할 거라거나 하는 모든 '전제들'이 인간적이지 않은가 하는 겁니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로봇에게서 두려워하는 것.

한 줄로 적어보면 이런 게 아닐까요.


'너무나 인간적인 로봇의 탄생.'


로봇은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적일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이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성'이란 경험과 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로봇과 인간이 겪는 같은 사건이 로봇과 인간에게 동일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입니다.

로봇이 인간을 '멸종'시키려 할지 모른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인간이 미워서라거나, 지배하고 싶어서라거나, 살고 싶어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목적들은 너무나 인간적이니까요.


<채피> 속에서 '마음'을 가진 인공지능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슬퍼하고, 화를 내며, 더 오래 살고자 하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었습니다.

채피, 인공지능로봇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속아 넘어가기는 하지만 속여 넘기지는 않죠.


'거짓말'은 '인간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나요?

만약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적'인 걸까요?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선량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적'인 걸까요?

두려움도 없고, 욕망도 없고, 질투하거나, 복수를 다짐하는 일도 없다면, 그 사람은 '인간적'인 걸까요?


오래전부터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무엇이 '인간적이지 않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양심적인 사람들, 죄라고 하는 건 티끌만큼도 없는 사람들은 사실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인간이면서 인간적이지 않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을 사람들은 범죄자나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어느 순간에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사람, 죽더라도 거짓말하지 않을 사람들 쪽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고 배웠습니다.

인간은 '절제하는 존재'라고 배웠습니다.

인간은 '법과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라고 배웠습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본능을 이겨내는 지성을 지닌 존재'라고 배웠습니다.

이런 특징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정의를 정면에서 부정 혹은 왜곡합니다.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말.

우리는 이 말을 언제 쓰고 있나요.

생각하지 않았을 때 씁니다.

절제할 수 없었을 때 씁니다.

법을 어기고 양심을 저버렸을 때 씁니다.

이성을 잃고 본능에 휘둘렸을 때 씁니다.

그러면서 면죄부처럼 쓰는 말이 이런 거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비인간적'이라는 말이 '인간적'이라는 말의 반대말이 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불완전'하기에 '인간적'이라는 말은 '비인간적'이라는 말을 포함하게 되니까요.


'비인간적'이라는 말보다는 '동물적'이라거나, '기계적'이라거나 앞으로 이런 말이 생길지 모르지만 '인공지능적'이라거나, '로봇적'이라는 말이 '인간적'이라는 말에 더 반대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어떤 순간에든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인간적'인 면모는 모두 인간이기에 보이는 모습이니까요.

전쟁, 살육, 범죄, 욕망 등등등.

인간이기에 벌이는 너무나 인간적인 행위들이 아닌가 이 말입니다.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 절제하고 억제하며 사는 사람들, 수도자니 성인이니 부처니 하는 존재들이야말로 모두 인간적이기보다는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극단적으로는 '신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인간이라고 하기 어려워지는 겁니다.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화두가 될 거고, 동시에 '인간적'이라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 역시 좀처럼 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인간적'이라는 말의 반대말이 '비인간적'이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비인간적인 인간의 비인간성과 인간적인 비인간의 인간성'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세상에 똑같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다른 경험이 되어 개인을 형성하게 됩니다.

한 부모, 한 가정에서 자란 형제, 자매, 남매, 심지어는 쌍둥이조차 다릅니다.


모순된 말이지만 인간은 다르기에 같아지려 하고, 이해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닉 캐러웨이의 아버지가 남긴 충고처럼 말이죠.

인간은 인간이기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거죠.


'인간적이라는 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건 제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변명이라고 하면, 정말 그럴듯한 변명이고, 억지를 부린다고 해도 아니라고 하지 못하겠지만 인간이기에 인간적이기에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만약 제가 '인간적이라는 건 무엇일까'하는 물음에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답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아마 더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이 되어있을 테니까요.


삼차원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는 사차원적인 개념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사차원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는 삼차원적인 개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요.

이 말은 인간적인 존재는 '인간적'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바꿀 수 있겠죠.

그러니, 길고도 어지러운 이 생각이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