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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y 14. 2017

천재는 단 한 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20세기 맥베스의 부활과 유혹

인간은 언제 절망하는가?

완벽하다 믿었던, 완전하다 여겼던 완성의 순간을 눈앞에 뒀을 때. 

단 한 줄, 한 단어.

너무나 하찮은 실수.

그 순간에 인간은 완전한 절망 속으로 침몰한다.


종종 인간은 유혹받고 이끌린다.

터무니없는 기대.

완전 범죄의 가능성에.


 완전 범죄에 성공한 경우는 알지 못하지만 '거의 성공한 경우'는 제법 잘 알고 있다.

나보코프의 <절망>이 그러하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그러하다.

비록 그 '성공'이 망상이나 환상 속 이야기라 해도, 그들은 '완전 범죄'를 '거의' 손에 넣었다.

그들은 실패한다.

너무나 사소한, 그러나 결정적인 '실수'로.


 게르만은 독일 출신의 초콜릿 사업가다.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실은 파산 직전이다. 어느 날 게르만은 공원에서 잠들어 있는 부랑자를 보고 깜짝 놀란다. 부랑자가 마치 자기와 '쌍둥이'이기라도 하듯 '닮았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그의 뇌리에 사특한 계획이 수립된다. 실행할지 말지는 운명이 정할 일이다. 운명이 이끈다면 계획은 실행될 테고, 실행된다면 성공은 확실하다. 완벽한 계획, 완전한 범죄다.  
 <절망>은 파산 직전에 놓인 게르만이 부랑자 펠릭스를 만나며 시작된다. 계획을 실행할지, 계획은 이루어질지, 두 사람은 정말 '완벽하게 닮은' 것인지. 정신을 똑바로 붙들고 읽어야 한다.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아차, 앞에서 스포일러를 해버렸군.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5장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문득 <맥베스>가 떠올랐다.

욕망과 유혹에 굴복해 주군을 살해하고, 결국 파멸해 간 비극의 주인공 맥베스.

국적도 시대도 신분도 다르지만, 게르만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맥베스의 환영은 짙어졌다.


 게르만은 곤경에 처해있다. 

사업은 곤란을 넘어 파산 직전이고, 사랑하는 아내는 자기보다 가난한 예술가 나부랭이에게 끌리는 듯 보인다. 우연히 마주친 부랑자는 자기를 너무나 닮아, 완전히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의심할 수가 없다. 

유혹의 시작이다. 

 맥베스는 충성스러운 기사다.

전쟁에서 승리했고, 왕이 죽고 나면, 어쩌면 왕위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적이 나타난다. 지금 해치우지 않으면 왕위의 영광은 영원히 멀어지리라. 

유혹의 시작이다.


 게르만은 고민한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부랑자를 속여보려고 했지만 간단히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계획은 실패다. 최악의 인간이다. 게르만은 도망친다. 그러나 운명은 놓아주지 않는다. 기어코 운명은 펠릭스를 게르만의 앞으로 다시 이끈다.

 맥베스는 고뇌한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미련한 욕망을 떨치고 내려놓으려고도 생각해보지만 마녀들은 유혹한다. 운명은 너의 것이라고. 쐐기를 박은 건 아내다. '지금이에요, 해치워 버려요!' 맥베스는 물러설 자리가 없다.


게르만은 후회한다.

완벽했다고, 그보다 나은 선택은 없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실패다, 이보다 더 처참한 실패는 있을 수 없다.

단 한 줄, 단 한 단어가 게르만을 파멸시킨다.

아니다.

실제로 게르만은 파멸한 지 오래다. 부랑자 펠릭스와 마주친 순간, 이미 파멸해 있었다.


 맥베스는 후회한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스스로를 저주한다. 

그러나 전쟁이다. 여자가 낳은 사내는 맥베스를 해치지 못한다. 

무적의 맥베스.

한 사람, 단 한 명의 사내를 몰랐다. 

그는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 

이미 운명은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이유로 나는 <절망>을 읽으며 <맥베스>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실제로 등장하는 건 <죄와 벌> 속 라스꼴리니코프요, 푸쉬킨의 시인걸.

터무니없는 오독이다. 

오독의 즐거움의 중독이다.


 열여덟, 러시아 혁명의 참화 속에 러시아를 떠나는 나보코프를 떠올린다. 

스물셋, 극우 테러리스트의 총에 아버지를 잃는 나보코프를 상상한다.

뒤틀리고 비꼬인 천재, 불신과 망상, 어쩌면 복수를 꿈꾸는 청년을 그려본다.

자신만만한 동시에 나약하며, 당당함과 비굴함을 천형처럼 품은 언어유희의 마법사를 읽어나간다.


 무엇이 남는가?

절망이다. 

읽어도 읽어도 내가 무엇을 읽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렵다. 

아니다. 솔직히는 터무니없이 덜 읽었다는 걸 안다. 

단 한 번 읽어 넘기고는, 몇 분, 몇십 분을 생각해보고는 오만하게 질문을 던지다니.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터무니없다. 

그러나 읽기는 즐거웠다. 

혼란스럽기까지 한 언어유희와 의식의 흐름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자신과 자신의 힘과 운과 운명의 인도를 믿고, 너무나 거침없이 파멸로 나아가는 게르만.

그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확신이 우스운 만큼 나를 괴롭게 한다.


 단 한 줄도, 단 한 단어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한 줄이, 한 단어가 모든 걸 망쳐놓으리라.

그러나 나는 나에게 관대해져야만 한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천재는,

오직 천재만이,

단 한 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특권을 지닌다.


'절망'은 나의 몫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이 터무니없는 감상을 거리낌 없이 마칠 수 있다.

끝.


-아아, 나는 얼마나 오만한가.

-그런들 어떠한가.

-쓴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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