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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un 16. 2017

두 팔이 없는 나는 당신을 안아줄 수 없다

그로칼랭_에밀 아자르

그로칼랭은 이 미터 이십 센티미터짜리 비단뱀이다.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현재는 쿠쟁이라는 파리에 거주하는 서른아홉 살의 독신남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비단뱀을 키우는 일이란, 그것도 혼자 살고 있는 남자가 비단뱀을 키우는 일이란, 몹시 기이하고 또 기이한 일이라 사람들의 놀람과 경계를 사게 된다. '얼마나 외로웠으면'하는 연민 섞인 시선도 적지 않고, 도시에서 비단뱀을 키우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쟁은 자연의 이치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생활한다.  그렇게 봐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현실은 쿠쟁의 생각과 조금 다르다. 로맹 가리는 쿠쟁과 그로칼랭 사이에 존재하던 인간과 비단뱀이라는 경계를 간단히 허물고는 둘의 존재를 모호하게 섞어버린다. 때로는 뒤바뀌기도 한다.
아니다.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처음부터 둘은 하나였으며 둘이었던 적이 없었다. 이렇게 적어두면 '이 소설이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고 하게 될텐데, 실제로 처음 읽어본 느낌이 딱 그런 거다.
"이 소설, 그래서 내가 뭘 읽은 거지?"하는 혼란.
이것이야 말로 첫인상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로칼랭>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첫 작품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에밀 아자르의 다른 작품인 <가면의 생>도 읽어봤는데, <가면의 생>에서 여러차례 등장하던 비단뱀 '그로칼랭'의 정체를 이제는 조금 알겠다.
또 한 가지, <가면의 생>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이대로 가다가는 헛소리만 잔뜩 늘어놓고 끝나버릴테니 조금 정리를 해봐야겠다.
 로맹 가리가 마지막까지도 연연해 하던 '사랑'의 문제가 <그로칼랭>에서도 끊임없이 드러난다.
사랑과 존재.
이 두 가지야말로 로맹 가리가 작품을 통해 풀고자 했던 인생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문제를 풀기 위해 자꾸 문제를 만든다는 게 기이하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무감각하게 전체로 살아가기보다는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혹음 몹시 괴롭더라도 개인의 존재를 실감하며 사는 게 더 나을 거라는 데 공감한다.
 이 작품도 한 번은 더 읽어봐야 조금 알게될 듯한데, 전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남 얘기 같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게 참 신기하다.  나는 내 안의 무엇을 숨기고, 내 안에 무엇을 감추고, 인간의 탈,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허물을 벗으면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몇 번이고 허물을 벗더라도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같은 모습으로 남을까.
역시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답을 알지 못하리라.
이 결론도 조금, 많이 이상하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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