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책방 Nov 05. 2017

게리 쿠퍼여 안녕_로맹 가리

몇줄리뷰

책 이야기에 앞서 적어두고 싶은 건 읽는동안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가 자꾸 떠올랐다는 거다.


 출간일을 기준으로 하면 20년 넘는 세월의 차이가 있지만 상실의 아픔과 두려움에 떨며 과거를 외면하고 현실에서 도망치며 미래를 거부하는 스무 살(스무 살이 아닐 수도 있겠다)레니의 모습은 스무 살을 앞둔 와타나베와 닮아 있었다.


<게리 쿠퍼여 안녕>에 대해 로맹 가리를 몇 편인가 읽으며 알게된 사실 하나는 작품 속에 등장한 '부드러운 돌들'이라는 표현이 예고한 미래의 논란과 처음 출간될 때 붙였던 제목이 <스키광>이라는 사실이다.

'부드러운 돌들'도 '스키광'도 '게리 쿠퍼여 안녕'도 심지어 '상실의 시대'였다고 해도 이 작품의 제목으로 어색함이 없겠다.


 레니는 버림받음이 두려워 언제나 먼저 떠나는 남자다. 대단히 잘생긴데다 매력적이고 스키 실력도 국가대표급인 이 남자는 가는 곳마다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은 자꾸만 레니를 자기만의 것으로 묶어두고 구속하려고 한다. 구속당하기 시작하면 끝장, 사랑에 빠지는 것부터가 레니를 미치게 만든다.


 두려움을, 결코 이겨낼 수 없는 두려움과 맞닥드려보지 못한 사람은 두려워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시킬 수 없는 사람을 이해시키려 하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무수한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을 자처하는 일이다. 레니는 그 과정이 몹시 두렵고, 또 두렵기에 도망친다. 그게 모두를 위한 일이고, 더 나은 일이기에.


레니는 '마다가스카르'에 발을 들여 놓으면 끝장이라는 점괘를 받고 얽매이는데, 마다가스카르가 곧 사랑에 빠지는 일, 그녀 없이는 살 수 없게 되는 날이 찾아오는 일을 의미하는 거였다.


 1963년, 유럽과 미국, 공산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냉전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무엇을 고민했을까.
 당시의 작품을 읽다보면 동구와 서구 모두에서 마약과 술, 돈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잃어버린 세대, 상실의 시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목숨을 바치는 일, 온갖 노력을 쏟아붓는 일이 실제로는 어떤 명분도 의미도 없이 이데올로기와 돈을 위한 다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으리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자기 분열적이고 정신 없이 쏟아붓는 이야기지만 사랑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하는 모습, '사랑해야 한다'는 로맹 가리의 메시지만은 분명히 전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팔이 없는 나는 당신을 안아줄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