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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Nov 05. 2017

사회계약론_루소

몇줄리뷰

아주 오래 전, 윤리 시간이었을텐데, 그때 들어 본 수많은 철학자들 가운데 루소라는 사람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실제로는 처음으로 마주한 루소의 저서는 배움의 시기에 단순히 반복적으로 암기했던 그때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난해한 건 아니지만 훨씬 더 복잡한 이해를 요구했던 까닭이다.


<사회 계약론>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반하는 주장으로 가득하다. 루소 당대 사회는 기독교가 득세하고 있었고, 여전히 귀족이 존재했으며, 왕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군림하던 때였다.
 그런 시대에 기독교와 절대왕권, 귀족 사회를 비판하며 평등과 자유를 주장하는 루소였으니, 박해와 탄압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비로소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렵, 루소는 <사회 계약론>과 <에밀>을 연이어 출간했고, 경찰의 체포를 피해 도망쳐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그였으나,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프랑스 혁명에 기여하고, 현재까지도 기억될 수 있었다.


<사회 계약론>은 인간이 자신의 안전과 자유의 증진을 위해 맺은 사회적인 계약(암묵적이고, 계약과 해지의 자유가 보장되는)의 배경과 그 계약에 따른 의무, 계약에 찬성하지 않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에서부터, 주권의 개념과 이양, 주권을 이양 받은 자들의 권한과 한계, 종교와 다양한 형태의 정부에 이르는 사항을 포괄적으로 살펴 보고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현대, 사회 계약이 다양한 법과 규율로 보장되는 동시에 제약되는 지금도 이루지 못한 경지를 당시의 루소가 주장했음을 알고 조금은 허탈함을 느꼈다.  루소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 폐단들, 국민이 선출한 대리인들이 마치 귀족과도 같은 지위와 특권을 누리며, 주권자인 국민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일과 권력과 부의 세습을 통해 본래 평등했던 국민 개개인의 지위에 귀천과 고하를 만드는 행위들, 법에 따라 공정히 행사되어야 할 권리가 사사로운 개인 혹은 일부 집단의 의지를 따르는 데서 생기는 잘못.  

현재의 행정과 정치 행태를 보면 지금 국회의원이니 시의원이니 하는 사람들 중에 사회 계약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여러 의미로 자괴감을 느끼게 한 책이고, 오랜만에 참 느릿하게 읽을 수밖에 없던 책이지만 꾸준히 읽고 성찰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됐다.


 국민의 주권은 양도나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권을 포기하는 순간 그는 이미 국민이 아니라 하나의 노예로 전락하는 셈이며, 모든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는 대신 권리 또한 박탈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국회 의원을 선출해 대의 정치를 시행하고 있고, 국민의 대표자로 대통령을 뽑지만 그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는 그들에게 임시로 위임한 권한을 회수할 수 있으며 또한 결코 나누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주권을 행사하여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촛불 집회를 통해 권리 이양을 철회하고 잘못을 바로잡기를 요구했던 거다.


 깨어 있는 국민은 자신의 권리를 잃어버리지 않으리니.
더디기는 했지만,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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