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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un 30. 2017

2017년, 나의 181일을 함께 하며 지켜준 책.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실패는 언제나 나를 성장시킨다.

2017년 6월 30일.

기분은 엊그제가 시작인 2017년도 절반을 보냈습니다.

지난 반년을 돌아보거나, 결산하는 건 좀처럼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안 하던 짓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2017년, 6개월, 181일.

반가움, 기쁨, 즐거움으로 나를 채워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현재 저는 1,800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을 2010년 11월 이후에 사들였고, 7년 간 2,000권이 조금 넘는 책을 구매했습니다. 

굳이 이런 수치를 밝히는 이유에 시답잖은 자랑이나 늘어놓으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어왔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함이죠.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는 20,000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자신은 '책을 고르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거였죠.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물론 다 읽지는 못했지만(참 솔직하고 겸손한 말입니다) 자신은 20,000여 권의 책을 산 '경험'을 한 사람이고, 이 경험에서 20,000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자신에게 맞고, 필요한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있다는 믿음에서라는 거였습니다. 


 저는 이동진 씨의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비록 그 10분 1에 불과하지만 저 역시 2,000여 권의 책을 산 경험이 있고, 2,000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었죠.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읽고 싶은 책이 넘치기에 다른 사람의 추천이나 조언은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간단히 휘둘릴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제 방식대로 경험을 해나가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죠.


  사람이 2,000번쯤 시행착오를 겪으면 분명 눈에 띄게 나아지는 순간이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지난 6개월 동안 읽은 책들은 거의 다 만족스러워서 돌아보며 뿌듯해하고 있거든요.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책 소개는 간략히 하겠습니다. 

굳이 모든 책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김영하 작가의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서 읽는 것이다'라는 말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마구 사다 보면 수납과 금전적인 부분에서 곤란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요. 


1. <게으름에 대한 찬양_버틀런드 러셀>/사회평론

<게으름에 대한 찬양_버틀런드 러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틀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은 '나태'나 '태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여유', '인내', '관용'을 의미하죠. 효율성과 성과주의에 밀려 사라지고 잃어가는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


2. <제 5 도살장_거트 보니것>/문학동네

<제 5 도살장_거트 보니것>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에 파괴된 도시 드레스덴 이야기를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서 벌어진 비참하고, 참혹한 사건들을 조금은 삐딱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는 소설입니다.

제목인 제 5 도살장은 유대인을 수용하는데 썼던 시설 중, 동물의 도살장으로 쓰던 곳을 개조한 곳이 있었는데 그 도살장이 제 5 도살장이었습니다. 짐승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했던, 오히려 동물보다 지독하고 또 비참한 인간의 모습을 빗대고 있는 걸로 읽었어요.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래서 믿기 어려운 이야기죠. 

 역사에서 나열하는 지루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역사를 읽고 싶은 분들에게 권합니다.


3. <내 삶의 의미_로맹 가리>/문학과지성사 

<내 삶의 의미_로맹 가리>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자,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공쿠르상을 두 번 받은 전설적인 작가이며, 삶을 권총 자살로 끝장낸 비극의 주인공으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다 간 작가 로맹 가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로맹 가리를 좋아해서 소장하고 있지만 책의 분량으로 생각해보면 가격이 너무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 책은 작가, 외교관, 전쟁영웅이기 이전에 인간이자 어머니의 아들로서의 로맹 가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 로맹 가리가 왜 에밀 아자르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는지, 그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로맹 가리를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에게 권합니다. 에밀 아자르의 대표작은 <자기 앞의 생>입니다.


4.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_카트리네 마르살>/부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_카트리네 마르살>

 2017년에 2016년과 제일 크게 달라진 독서 패턴은 '페미니즘'이라는 화두가 더해진 거였습니다. 흔히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간과한 경제의 중요한 한 축. 애덤 스미스의 일상과 생활을 책임진 '어머니'라는 부분에 논점을 맞춰서 여성의 경제적 지위와 기여 문제를 환기시키면서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경제학이 간과한 여성의 역할을 이야기합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밥을 누가 하지 않아도 저절로 식탁에 식사가 차려지는 게 아니고 청소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끗해지는 게 아니죠. 여전히 집안일을 '여자의 일', '달리 할 일이 없는 주부의 몫', '경제적 가치가 없는 활동'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일침을 가합니다. 꾸준히 문제 제기되고 있지만 간과되고 무시되는 가정 내의 경제적 가치와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5. <책을 처방해드립니다_카를로 프라베티>/문학동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_카를로 프라베티>

먼저 적어두고 싶은 건 이 책이 '독특하다'는 점입니다. 줄거리로 간추리면 사실 별 거 없는 흔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도입부터 전개, 결말까지 이끌어나가는 방식이나 관점이 무척 독특하죠. 처음에는 살 생각이 없이 들춰보다 사게 된 드문 경우에 들어가는 책입니다. 

 제목이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인 이유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위해 도입한 방식이 '책 처방'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존재의 불확실함과 모호함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그들이 되고 싶거나, 이입할 수 있는 인물, 이야기가 담긴 책을 처방함으로써 존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치료 방법이죠. 

 '가면의 나'에 가려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가 유난히 힘들게 느껴지는 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은 소설입니다. 


6.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_하인리히 뵐>/민음사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_하인리히 뵐>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언론의 보도가 선량한 한 존재를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부제인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는 우리가 '폭력'이라고 부르는 게 단지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사회적인 부분, 명예, 인격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그 부작용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와, 악의적인 비방과 흑색선전, 선동과 교란,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문제 제기, 언론이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권력 기관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릴 것 같을 때 읽으면 정신이 번쩍 들 그런 안타깝고 서글픈 한 편의 비극입니다. 

 타인의 일이라고 해서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 나의 일, 우리의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7. <나는 왜 쓰는가_조지 오웰>/한겨레출판

<나는 왜 쓰는가_조지 오웰>

 2017년 상반기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조지 오웰을 재발견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정치와 세계에 깊은 통찰을 보여준 <1984>나 <동물농장>만으로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휴머니스트 조지 오웰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인 버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며 깨닫게 된 제국주의와 전체주의, 전쟁의 부작용과 참상,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의 삶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긴 에세이를 추려 연대 별로 싣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에세이를 읽다 보면 이때쯤에 어떤 작품을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 시기가 꼭 들어맞는다는 점입니다. 차갑고 딱딱하고, 건조하게 보였던 조지 오웰이 얼마나 깊은 사랑을 품은 사람인지 알게 될 겁니다. 트럼프 집권 이후에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회복했다는 조지 오웰의 작품들과 함께 즐기면 더욱 좋겠습니다.


8.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_유시민>/돌베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_유시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스스로 '어용 지식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한 유시민 작가.

한 차례의 수정도 거치지 않은 <항소 이유서>가 두루 읽힐 정도의 명문이었다는 지식인. 

박학다식, 전 장관. 수식어가 참 많이 붙어 다니는 유시민 작가가 쓴 '경제의 속살' 이야기입니다. 

 경제가 정치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선택의 문제가 왜 중요한지, 우리가 합리적이라 믿는 인간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신문이나 뉴스만으로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정계와 재계의 행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내리읽지 않더라도 관심이 가는 부분을 찾아 읽어보면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경제도, 정치도 '남'에게 맡겨두기만 하면 되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 기억해두셔야 합니다.


9. <바다의 뚜껑_요시모토 바나나>/민음사

<바다의 뚜껑_요시모토 바나나>

요시모토 바나나를 말할 때면 얘기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말.

'바나나는 만국 공통 바나나라서 나는 바나나'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의사 표명.

참, 그런 생각을 하다니 기특하면서 놀라운 일이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자기 이름에 달린 수식어에 맞는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세계와 연령을 넘어 두루 읽어도 부담 없고, 저마다 느끼는 바가 있는 이야기를 쓰니까요. 

 이 소설에는 여름에 잘 어울리는 '빙수'와 '바다'가 나옵니다. 어느 해변, 혹은 비가 오는 날, 혹은 시원한 빙수를 먹으러 들어간 카페나 빙수집. 언제 어디서 펼쳐도 좋은 편안하고 가벼운 이야기. 

 하지만 읽고 나면 차가운 빙수를 먹은 듯, 찌르르한 느낌이 한동안 머무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10. <우리들_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열린책들

<우리들_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만큼이나 어려운 이름을 가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디스토피아의 원조 격인 소설입니다. 

 제목인 '우리들'이 의미하는 바, <우리들>의 세계에는 '자유'나 '나'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직 '우리들'이 있을 뿐이고, '자유'는 미개하고, 천박한 머나먼 옛날, 과거의 유물처럼 여겨지죠. <우리들>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200년이나 지속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와 분리된 '우리들'만의 세계에서 '은혜로운 분'의 은혜로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개성이나 정체성, 욕망은 사라지고, 개성 또한 말살된 세계죠. 디스토피아 소설에서는 늘 그렇듯 이 세계에도 이러한 체제를 전복하고 자유를 되찾으려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시도가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지켜보는 긴장감과 기대, 안타까움을 동시에 안깁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의 세계관을 모두 발견할 수 있으니, 디스토피아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자유와 개성, 독재와 전체주의에 흥미가 동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아아, 짧고 간단히 적으려고 했지만 적다 보니 조금씩 늘어지고, 기억도 흐릿해져서 결국 10권을 적는데만 한참이나 걸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넓고,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읽고 싶은 작품은 넘치다 보니 참 욕심으로 부풀고 부풀다 터질 것만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사가 다망하고, 읽는 속도는 점점 더뎌져서 자꾸 가려 읽게 되는 경향도 있고요. 

 여기 적은 10권의 책은 그저 제가 읽었을 때 좋았고, 다른 사람들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추려 본 책일 뿐입니다. 절대적으로 좋다,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와는 거리가 멀죠. 또한 처음 읽은 책만을 소개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읽은 책은 빼놓았어요. 이미 여러 번 이야기하고 소개한 책들이라 몇 번씩 중복해서 권하면 오히려 싫어질지도 모르니까요.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는 말은 아주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고르는 일, 잘 맞지 않거나 읽기 힘든 이야기를 헤쳐 나가는 일. 그 모든 경험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되어줄 거고, 하나의 기준이 되고 가능성이 될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읽어 나가시기를.

한두 번, 일이백 번, 그 정도의 시행착오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에서 시작하며 적었지만, 이동진 씨도 20,000번의 시행착오라고 말했으니까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 생각과 시야를 넓혀줄 생각들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저는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읽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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