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목록
변명이 싫다.
변명을 듣는 것도 싫지만 변명하는 건 더 싫다.
애초에 변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부터 숨 막힐듯 느끼곤 한다.
방 정리를 하면서 굴러다니는 메모를 모아뒀는데 그 중 하나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2017.01.05
변명하지 말고,
변명하게 말아라.
사랑이 그러면 못 쓴다.
왜 적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무슨 의미로 적은 건지는 지금도 이해가 간다.
시작하며 적었듯 변명을 듣는 것도 싫지만 변명하는 건 더 싫다. 그렇기에 다른 이에게도 변명하게 만들지 말아야 하고, 변명을 듣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라면 더욱 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리라.
변명을 하지 않는 게 쉽지는 않았다.
오해하는 이도 많았고, 오만하다 말하는 이도 있었다.
변명을 해서 오해가 풀리고, 이해에 닿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면 얼마든지 했을 거였다.
오해는 간단히 풀기 어려웠고 변명은 하면 할수록 구구절절해지기만 할뿐 이해에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마침내는 허탈함 속에서 자괴감과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서툰 사람이다.
나를 설명하는 데에 유난히 서툰 사람이다.
변명하지 않아도 믿어줄 수 있는 사람,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들만 남기를 바랐다. 그거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세월의 풍파를 거치며 조금은 처세에 능숙해진 결과 지인이 조금 늘었다는 것만이 변화라면 변화다.
변명이란 그 의미 자체로 '잘못'을 포함한다. 변명을 해야 한다는 건 잘못을 저질렀음을 의미하는 게 된다는 얘기다. 결국 변명이 싫다는 건 스스로 잘못하지 않았거나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가 된다.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밝히고 사과하고 바로 잡아야 하지만 잘못이 없는데도 마치 잘못한 것처럼 느껴 죄의식에 시달려야 한다면 그만큼 억울한 게 어디있을까.
변명하고 싶지 않다는 건 떳떳함의 반증이다. 변명이 싫은 건 변명이 종종 강요되기 때문이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사과하고 미안함을 느껴야 할 것만 같은 상황에 몰릴 때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늘 무력했다. 어설픈 변명을 시작했다가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지?'라는 역공을 당하기 마련이고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거다. 변명이 변명을 부르고, 변명이 잘못을 만들고, 변명이 죄인을 만든다.
그 모든 과정, 결과가 난 싫다는 거다. 거부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그냥 변명하지 않았었던 거다.
중요한 사람이 아닌 나였음에도 적지 않은 오해를 샀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 변명하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미움을 샀다. 신물이 났다. 질렸다. 더더욱 변명하지 않게 됐다.
오만한 세상.
그렇다면 나 또한 오만해져야겠다.
변명을 요구하면 더욱 더 변명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앙다물어야겠다.
떠나겠다고 위협한다면 먼저 떠나야겠다.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싫어하는 것의 목록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냥 싫은 건 싫은 거니까 이해해 달라거나 양해를 구하거나 할 필요도 못 느낀다.
나는 싫어하는 걸 쓰기로 정했지만 좋아하는 걸 쓰기로 정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비웃거나, 응원하거나, 칭찬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그뿐이다.
아, 변명의 세계란 얼마나 넓고도 깊으며 그 유혹은 얼마나 지독하던가.
지독한 것에 맞서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더 지독해지는 것, 다른 하나는 흐릿할만큼 유해지는 것. 선택은?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할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