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목록.
가끔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봤다고 믿고는 한다.
확신할 수 없는 걸 분명하다, 틀림 없다고 말하고는 한다.
때로는 그 믿음을 말로써 강요하기도 한다. 오만이다. 우스운 일이다.
때때로 내 일이 아니라서 화가 나는 일이 있다.
내 일이라면 그저 웃고, 참고, 견디며 넘길 일들이 내 일이 아니라서 마음에 걸리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일이 있다. 화가 나서 도리어 화를 내기도 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오지랖인가, 애착인가. 모를 일이다.
정의의 사도들은 언제나 남의 일에 더 분노한다. 정의의 사도는 만인의 영웅을 자처한다. 현실에서 정의의 사도는 힘을 쓰지 못한다. 한쪽의 영웅은 한쪽의 적이다. 찬양과 경배는 가볍고, 영광은 오래가지 못한다. 비현실 속 영웅은 단 한 명의 믿음만 있어도 부활하지만 현실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환상, 허구, 상상. 비현실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에는 '복서'라는 말이 등장한다. 다른 동물들보다 몇 배나 힘이 세고, 무척 부지런하며, 지능은 뛰어나지 않지만 우직하다. 지도자, 우두머리의 말,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무엇보다 시련이 닥쳤을 때 큰 힘을 발휘한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복서는 영웅이다. 복서는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겠어."
"내가 조금 더 많이 일하겠어."
"내가 조금 더, 내가 조금 더."
그것이 복서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열심이고 의심치 않는다. 복서를 보며 다른 동물들도 더 힘을 내기로 한다. 자신들을 착취하는 지도자들의 지시도 어김 없이 이행한다. 복서는 덜 자고 덜 먹으면서 더 일한다. 그래서 점점 더 힘들어지고, 기운이 쇠하며, 결국 다쳐서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처음에는 복서의 희생과 의지에 감탄했었다. 언제부턴가 생각이 달라졌다. 복서는 착취자들에게 이중으로 이용당한 셈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동시에 다른 동물들의 희생도 이끌어 낸 게 복서의 의지와 근면과 성실함이었다. 영웅이었을지는 몰라도 그 영웅은 세계를 바꾸지 못했다. 그를 따르는 이들을 노동으로, 노예나 다름 없는 세계로 깊이 끌어들인 게 복서의 희생 결과였다.
나는 그런 희생이 싫다.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은근슬쩍 부추기는 것도, 응원하는 것도, 희생하는 것도 싫다.
부모의 자식에의 희생(흔히 '헌신'이라 일컬어지는).
직원의 회사에의 희생(흔히 '열정'이라 일컬어지는).
구성원의 사회에의 희생(흔히 '질서'라 일컬어지는).
시민의 국가에의 희생(흔히 '애국'이라 일컬어지는).
종교인의 신에의 희생(흔히 '순교'라 일컬어지는).
희생은 보상을 기대하거나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희생은 순수할 수가 없다.
풍요, 애정, 자유, 구원.
희생의 보상 목록의 일부다.
희생이 아니라면 그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착각하고 화를 낸 것이 부끄럽지만, 때로는 착각이라 다행한 일도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제멋대로에 변덕스럽다.
나를 믿지 말라.
믿음은 그 믿음을 이뤄주기를 강요하기 마련이고, 결국 강요가 희생을 낳으므로.
앞으로도 변덕스럽다. 꾸준히 변덕스럽다. 마지막까지 변덕스럽다.
변덕은 희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희생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