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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Oct 11. 2017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예언

<변신 이야기>_오비디우스
 오비디우스는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기의 시인이다. 그런 그가 <변신 이야기>를 쓴 건 로마에서 추방당한 후였다. 죽기 직전까지도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바랐던 그는 <변신 이야기>에 그 마음을 담는다. 어쩌면 이야기 속 변신의 주인공들처럼 자신도 변신해서라도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태초, 세상에 오직 혼돈만이 존재하던 시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후에 천지가 생기고, 신들이 태어난다.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짓는 건 좀 더 나중이다. 인간이 지상에 살기 시작한 후로 무수한 혼란과 갈등이 생겨난다. 중재해야 할 신들은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편들며 다툼을 키운다. 그 혼란 속에서 무수한 변신이 이루어진다.
영웅들의 사랑, 모험, 전쟁의 시기를 거쳐 이야기는 로마의 창건과 아우구스투스의 집권에서 끝이 난다. 신의 자손으로, 신들의 인정을 받는 영광을 얻게 될 위대한 황제 아우구스투스. 자신을 용서하기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오비디우스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결말이다.

 

현대는 신화가 숨진 시대다. 신과 대면하는 것도,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신의 계시를 받는 것도 희귀한 것, 믿지 못할 것이 되었다. 신의 핏줄, 신의 아들이라는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인간의 시대, 문명의 시대, 육신의 시대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지식, 인간의 이해를 벗어나는 현상들을 초월적인 존재의 행위나 기적으로 해석하고 믿었다. 강과 숲, 길짐승과 날짐승, 인간의 삶을 품고 먹이는 대지를 어머니처럼 여겼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바다와 닿을 수 없는 하늘, 뜨고 지는 태양과 달 또한 신으로 받들었다. 재난과 재해를 신의 노여움이라 믿고 두려워하고 삼갔다.


 신화 속에서 강자, 학살하는 자는 언제나 신이었다. 전세는 역전됐다. 과학을 손에 넣은 문명은 지상에서 신의 자리를 빼앗았다. 신을 모시던 신전은 영광을 잃었고, 무너지고 버려져 마침내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인간은 기술의 편리를 얻었는지는 몰라도 낭만을 잃었다. 무지는 극복했는지 몰라도 믿음은 버려야 했다. 인간이 모든 영광을 지상에서 누리려 하는 이유가 그래서 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상에서 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지상에 가두고 속박하고 말았던 거다.


<변신 이야기>는아직 신들이 지상에 머물던 오랜 옛날의 이야기다. 인간을 사랑하고 질투하며 안타까워했던 지극히 인간적 인신들의 향연. 2000년 전에 살다 간 오비디우스가 현대의 우리에게 보낸 신들의 시대로의 초대장이다.


 이 초대에 응할지 아닌지는 스스로 정하면 그만이다. 여기서는 <변신 이야기> 속 변신의 이미지와 사연, 결과를 속속들이 적기보다는, 읽으며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던 세 가지를 적기로 했다. 이세 가지는 내가 보내는 초대다. 역시 응할지 아닌지는 스스로 정하면 그만이겠다.


 <변신 이야기> 속 신들의 면면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남신들은 희대의 난봉꾼으로 마음에 들었다 하면 신이고 인간이 고를 떠나 가지려 든다. 여신들은 인간의 재능과 미모를 질투하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신이면서 운명에 종속되어 있고, 때로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신의 모습은 어딘가 격이 떨어진다. 완벽해야 할 신이 질투하고, 슬퍼하며,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고, 두려움을 느낀다는 걸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신의 미추 기준이 인간과 다를 테니 인간의 아름다움을 시기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허기를 느끼거나 죽음에 이르는 일도 없을 테니 굶주림이나 빈곤을 염려할 이유도 없다. 신은 생사와 존재의 섭리에 통달한 존재이므로 삶과 죽음을 별개로 여기지도 않으리라. 그런데 이 전지전능한 신들은 어쩌면 그렇게 다들 인간적이기만 한 건지.


 "신이 정말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할까?"

 한 번 생각해줬으면 하는 첫 번째다.


전쟁의 패배로 멸망한 트로이의 후예인 아이네이아스가 유민을 이끌고 나선 항해 끝에 이탈리아 땅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 후에 로마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바로 그 나라다. 그런 로마 땅에 역병이 돌기 시작하더니 끝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아폴로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만이 역병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었고, 로마는 그리스로 사신을 파견한다. 그리스 장로들은 자신들의 신을 내어주지 않으려 하지만 의신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전을 떠나 로마로 건너간다. 마치, 과거 그리스에 있던 영광과 축복이 로마로 옮겨 갔음을 상징하듯이 말이다.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에서 로마 황제의 뿌리를 신에서 찾는다. 로마의 황제야 말로 신의 자손이라는 논리다. 단군의 조선에서 고구려와 신라, 가야에 이르기까지 개국 시조가 상서로운 존재 혹은 신의 자손이라는 전설은 얼마든지 있다. 고구려와 로마가 다른 건 세상의 모든 길이 고구려가 아닌 로마로 통한다는 것뿐이다.

 아무리 화려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해도 로마는 결국 침략과 약탈혼을 통해 건국되었고, 신의 자손을 자처하지만 그 신들의 이름은 그리스에서 가져와 바꾼 것에 불과하다.


 "잔혹하고도 이기적인 나라, 로마는 정말 위대했을까?"

 한 번 생각해줬으면 하는 두 번째다.


 한 번 생각해줬으면 하는 세 번째는 ‘변신의 아이러니’에 관해서다.

이 아이러니는 단순하게는 신의 자비 혹은 저주 혹은 그들의 기도에 의해 변신하게 된 이들이 그 변신에 만족했을까 하는 데에 있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신을 피하기 위해 나무가 되고, 물이 되고, 새가 되고, 돌이 된 이들이 이 변신을 기뻐했을까 하는 거다.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다.


오비디우스는 로마 사람이기에 본래 그리스 식이었던 신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고쳐 적었다. 그 변신의 과정에서 혼란이나 혼동이 전혀 없었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신의 존재가 뒤섞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의 이름이 바뀌면 역사 전체가 바뀔 수도 있는 거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떤 신이 이득이고, 어떤 신이 손해를 본 걸까.


<변신 이야기>에서 가장 주목하게 된 신은 신들의 왕인 유피테르(제우스)가 아니라 박쿠스(디오니소스)였다. 박쿠스는유피테르의 아들로 유노(헤라) 여신의 질투로 태어나지도 못할 뻔하다가 가까스로 유피테르의 허벅지에 숨겨져 세상 빛을 보게 된다. 태어난 후에도 박쿠스의 삶은 순탄치 않았는데 유노 여신이 분노를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박쿠스는 자신을 모시는 신전도 없이 오랜 시간 떠돌아야 했고, 인간들 사이에서도 신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했다. 박쿠스는 자신을 부정하는 인간들을 용서하지 않았고, 박쿠스신의 신도들은 축제날이 되면 광란의 파티를 벌이기로 유명해져 사람들의 두려움을 샀다. 당한 만큼, 그 몇 배로 되갚아 주었다고 해야 할까?


핍박당하던 자들이 이제는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신의 이름으로 치장된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는 변신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수천 년 간 디아스포라로 나라를 잃고 세계를 떠돌았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저지른 만행은 정당한 ‘변신’이었을까?


<변신 이야기>는 한 편의 서사시에 불과하지만 거기에는 역사와 민족의 기원, 한 국가의 구성원이 주장하는 건국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포함되어있다. 우리가 옛이야기를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이야기가 현대의 독자와 만나는 순간 그 일부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현실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오비디우스는 이야기를 마치며 선언하듯 혹은 유언하듯 이런 말을 남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변신 이야기> 중

오비디우스는 자신의 예언을 이루었다. 적어도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말이다.

세상도 이야기도 시간이 흐르며 보태지고 빠지며 변신해 갈 것이다. 그래서 <변신 이야기>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침내는 인간의 이야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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