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_내게 무해한 사람
나는 불만을 불만이라고 간단히 풀어놓는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책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을 대놓고 잘 하는 편이다.
프로불편러인가 하는 게 있다던데, 책으로 치면 나는 프로불편러가 맞다. 조금 다르다면 굳이 공감을 얻지 못해도 할말을 하고 만다는 거다. 이번에도 불평 좀 해볼까?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다. 소설로 말하지 못하고 전하지 못한 걸 그 안에 간추려 놓았을까봐 지금은 읽고 싶지 않았던 거다.
전작 <쇼코의 미소>를 무척 인상 깊게, 감명 받으며 읽었던 기억에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이번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나와는 먼 세계 같던 이야기를 내 옆으로 끌어다 놓더니 이번에는 뉴스와 사람들을 통해 자주 접했던 가까운 세계의 이야기를 저만치, 10년은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일곱 편의 소설은 뉴스에서 자주 접하게 된 소재를 담고 있었다. 게이, 레즈비언, 지역감정, 가정폭력, 남아선호, 여성차별 등등.
현재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제기되는 문제들이 거의 총출동한 셈이다. 그러나 그 감정과 인식의 거리는 2018년이 아닌 가깝게는 10년, 멀게는 20년 이상 동떨어져 있었다.
만약 작가의 의도가 과거에는 더 처참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말하려던 데 있지 않다면 이 소설들에 드러난 인식에서 기술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정당한 요구와 투쟁을 통해 겨우 닿게된 현재의 인식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을 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내가 어린 시절에도 소설 속 인물들이 공유하는 인식과 비슷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과 사람과의 관계에 절망해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며 죽음을 택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고민하게 하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이 규정하는 존재 기준에 흔들리고, 크고 작은 부정과 맞닥뜨렸을 때 절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을테니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말고, 감정은 숨기고, 보이지는 않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걸까?
등장인물들이 겪는 비극은 시대의 산물이지만 결국 그 모든 일의 원인 제공자는 세상, 인물들을 둘러싼 인간의 책임이다. 과거에 함께 아파하지 못해서, 막아주고 지켜주지 못해서, 이해해주고 함께 하지 못해서, 눈을 감고 도망치는 게 겨우였던 게 미안해서 뒤늦게 하는 속죄라면 그건 너무 늦어버려서 의미를 잃은 자기 위로에 불과하다.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누군가에게 유해할 수 있다. 인간은 타인을 올바로 보고 판단할 수 없는 자기 사고라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종종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 착각은 때로 유익하지만 대개는 무익하며, 자주 해롭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내게 유익하기보다 무익했고, 무익함에 더해 때로 해로웠다.
언제 마음이 내킨다면 작가의 말을 읽어봐야겠다. 왜 십수 년이나 뒤쳐진 감수성, 성인식, 사회 감정을 이제야 풀어냈는지 말이다.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쇼코의 미소>를 읽어보세요. 그리고 다음 소설을 기다려 보세요. <내게 무해한 사람>은 안전한 거리에 두어 무해한 채로 남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