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간_김동식
한참이나 유행한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책을 읽는 습관도 없었고 글쓰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는 판금 노동자가 쓴 소설들.
오늘은 평소와 노선을 달리해서 긍정적인 면에서 접근하도록 노력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잘 읽힌다는 거였다. 짧은 이야기라고 해도 수십 편이나 되는 소설이 모이니 보통 단행본, 장편 소설 정도의 분량은 됐다.
치밀한 구성도 아니고, 트릭이나 계획된 반전이 없이도 이야기 들은 흥미진진했고, 한 편을 얼른 읽어버리고 다음 편을 읽게 이끌었다.
순문학, 소위 문단 소설의 의미부여와 화려한 문장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보통의 독자의 이해에서 멀어졌던 이야기들과 달랐다.
특별히 추구하는 수준 높은 문학적 가치나, 문체가 없기에(반복, 단련, 독특함을 갖추면 그 또한 하나의 문체가 되겠으나) 읽으면서 편안했고 부담도 없었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옛날 유행했던 최불암 시리즈, 맹구, 만득이 같은 유머의 향기가 풍겼다. 풍자와 블랙 유머, 엉뚱하지만 충격적인 교훈들. 무에서 창조된 게 아닌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이 단점이면서 장점이 되어 있었다.
이 책 이후에도 여러 권이 쏟아졌는데 아직은 그 이야기들이 궁금하지는 않다. 하지만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썼는지, 지금 쓰는 이야기들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는 궁금해졌다.
오래 전 소위 문단에서는 '귀여니' 스타일의 소설을 폄하하며 묵살해 버렸다. 지금은 어떤가? 살아 남은 건 순문학인가, 라이트 노벨인가?
문단에서는 이 소설, 작가를 간단히 인정하지 않을 듯 하다. 많이 팔렸다고 좋은 소설이 아니고 독자가 많다고 훌륭한 작가가 아니라는 논리일 거다.
물론 많이 팔린 책이 좋은 책, 널리 읽히는 작가가 훌륭한 작가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자기들만의 리그 안에서 변화나 흐름을 외면하고 머물기를 계속한다면 스스로 안으로부터 무너지게 되지 않을까.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잔뜩 냈으면 좋겠다. 자꾸자꾸 굳어버린 세계를 뒤흔들어 균열을 만들어줬으면 싶다. 틈이 있어야 숨을 쉬고, 그 틈에서 싹이 튼다.
읽는 즐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한 누구라도 쓰기 시작할 수 있다. 기쁨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