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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Aug 26. 2018

[간단리뷰] 힘 빼고 읽을 것

나, 참 쓸모 있는 인간_김연숙

수영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은 말이 '몸에 힘 좀 빼세요.'였다. 처음 물에 들어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텐데 힘을 빼면 가라앉을 듯한 두려움이 일지 않던가? 당연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그 반대보다 크기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배겨낼까.

몸에 힘을 빼면 가라앉는 게 아니라 뜬다는 걸 알게된 후에도 여전히 매번 힘을 빼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그도 그럴게 팔을 젓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수영인데 힘을 빼라니 수영을 하라는 건지 제자리에 떠 있으라는 건지? 싶었던 거다.
 
물론 나중에 익숙해지고 나니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팔을 젓고 발차기와 호흡을 맞춰야 수영이 수월하다는 걸 실감하게 되긴 했다. 오히려 괜히 힘을 주다보니 쉽게 지치고 다리에 쥐가 나 허우적거리게 된다는 걸 알게된 거다.
 
수영 다음으로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게 글쓰기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배운 적이 없으니 정확히는 읽은 말인데, 힘을 빼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거였다.
 
어려웠고 지금도 터무니 없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차라리 생각이 없던 때는 겉멋 든 글이나마 끄적일 수 있었고, 한 번 끄적이고 나서는 돌아보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마음 편했구나 싶다.
 
 뭔가를 쓴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건데 하고 싶은 중요한 말에 힘을 주지 않으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인지 아닌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까 싶었다. 소설에는 줄거리가 있어야 하고, 주인공이 있어야 하며, 사건의 기승전결이 분명해야 읽는 재미가 있는 거 아니냔 말이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하지만 자꾸 생각하게 된다. 정말, 그것 뿐일까?
 
 이 책은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 속 인물들의 삶과 생각,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4년 전 인가에 읽기 시작해서 이제 5권을 읽고 6개월은 잊고 지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완독에의 의지가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타오르는 걸 느꼈다.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는 잔혹하다. 그 소설을 내가 읽기 전에는 어떤 매력적인 주인공도 환상적인 스토리도 내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토지>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배경이 되는 시간이 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소설 속 배경으로부터 7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에 마음을 끌리게 할 인물이 얼마나 되겠어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신분의 빈천도 없고, 자유니 독립이니 싸워야할 외적도 없는 평화로운 이 때에 말이다.

그런데, 있었다.
70년 전 보다 세상이 복잡해진 만큼 더 강렬하게, 당시 세상이 앓았던 병적인 문제들이 모습만 바꿔 퍼져 있었던 거다. 그 문제들을 끌어 안고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다.

이 책은 나에게 일종의 백신처럼 느껴졌다. 세상과 사람의 맛을 보여주는, 목숨이 오갈 질병을 열이 조금 나고, 살이 얼마쯤 따끔한 정도로 그치게 하는 백신 말이다.
 
 토지에는 기구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같은 상황에 놓였어도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한계를 이기고 구속을 넘어 성장하는가 하면 높은 데서 떨어져 더러운 시궁창을 구르듯한 인물도 있다.

그런 인물들의 삶을 이 책은 힘빼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건네듯 전해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고, 당신이 깨닫길 바라는 건 저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토지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고 환대하지 않고 토지를 읽고도 잊어 버렸다고 박대하지도 않는다.

이렇게까지 읽으면서 좋은 책이구나 하게 된 건 오랜만이다. 덜 읽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헤아림이 얕은 탓도 있겠지만 얼마쯤 마음 편하게 '한 번 읽어봐요'할만한 책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외국 작가 누구,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고전 무엇이 아니고는 말이다. 그래서 반가웠다. 이 만남이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몇 년 간 책을 잔뜩 힘을 주고 대했다. 아마 그래서겠지 싶은데 제법 지치기도 했고. 새로운 시작에 앞서 토지를 읽고 싶게 만든 책을 만나서 참 좋았다.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의 작가님 정도는 아니라도 나에게 매력적이었던, 몹시 미웠던, 가장 사랑했던 인물을 고르고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구나 한다.
그럼, 당장 내일부터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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