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페스티벌이라는 이름도 어색하다
처음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느낀 놀라움을 지금도 기억한다.
상수역 쪽 주차장 골목에서 홍대 입구 바로 근처까지 늘어서 있던 무수한 부스들.
처음 보는, 처음 경험하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아, 출판사가 이렇게 많구나.
책이 정말 많구나.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첫 실감이었다.
책이, 책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첫 실감.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된 문제도 많았다.
출판사에게는 리퍼브 도서와 구간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
독자에게는 싸게 책을 살 수 있는 기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한계가 대표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때는 멀리서까지 사람들이 발걸음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지금도.
올해는 유난히 악재가 겹쳤다.
태풍으로 행사가 늦춰지거나 취소되고, 부스가 철수하기도 했다고.
날이 좋아진 후에는 시외 혹은 산으로 나들이를 갔을 거고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행사에 굳이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테니 웃기 쉽지 않았겠다.
몇 군데 부스에 들러 구경도 하고, 살까 말까 미뤄두었던 책 몇 권을 사기도.
작년 같은 출판사 이벤트는 못 봤지만 몇몇 부스에서는 사은품으로 작은 선물을 줬고 주최측에서도 구매 금액에 따라 선물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상수역 주차장 골목에서 시작해서 상상마당 앞에서 끝나는 그리 넓지 않은 구역이 고작이라는 생각.
이게 출판계의 현실이다.
딱 그 정도 실감.
인스타에 다녀온 사진을 올렸을 때 몇몇 지인들 - 물론 그들 모두 열혈 독자에 프로 책 구매자들 - 은 아쉬워 하면서도 이제 굳이 시간을 내서 다녀 가는 의미를 잃었음을 댓글에 적었고, 쇠락한 축제의 모습에 안타까움도 보였다.
현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던 순간, 책을 읽고, 사는 게 생활 같던 사람들에게도 도서 축제는 그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홍대, 합정을 중심으로 해서 마포에는 지금도 무수한 출판사들이 사무실을 두고 있다.
좀 더 전에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도 많았다.
지금은?
빨간책방 정도가 남았고 다른 북카페들은 문을 닫거나, 이사를 했다.
또 하나의 현실 지표랄까.
좀 서둘러 결론을 내리자면, 이번 와우북페스티벌 방문은 지난 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적인 돌아보기였다.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할 의지나, 무슨 책을 꼭 사겠다는 의욕, 누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도 없었다.
이번에는, 올해는 어떤 모습인지 얼마나 무너졌는지 눈으로 봐두려는 생각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다.
내년에는, 다시 오게 될까?
다시 오고 싶어질까?
조금은 회의적이 되어,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사진첩을 좀 뒤져봤다.
와우북 페스티벌에 갔을 때 찍었을 사진이 어딘가에 있을 거였으므로.
그런데, 놀랍게도!
사진이 없다. 포스팅도 안 했는지 흔적도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도 몇 장 첨부하기로 했다.
지난 회에도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이번에는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하나의 흐름이겠지.
동화책보다는 성인을 위한 단행본 위주로 출판사와 판매 도서가 포진해 있는 가운데, 동화책 출판사가 눈에 띄었던.
다른 행사는 보지 못하고 그나마 본 건 아이들을 위한 만들기, 체험 교실, 구연 동화 같은 행사들.
전체적으로 썰렁한 느낌이었다.
올해에는 참가하지 않았나 했는데, 놀랍게도 한 부스에서 대형 출판사 두 곳과 만났다.
열린책들과 창비.
이 풍경이 말해주는 건, 조화일까 부조화일까.
장자끄 상뻬 책, 비싸지만 크고 보기 좋게 - 그림이 많으니까 - 만들었더라.
그러나 열린책들은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다 골라서 가지고 나왔는지, 빈손으로 나왔다.
어쩌다보니 창비 계간지를 구독하고 있어서 슬쩍.
그 옆에 노회찬 의원의 유작.
1인 출판사가 많아졌음을 실감한다.
1인 출판이라고 해도 분류상 그렇지 대표 혼자 책 만드는 모든 과정을 해결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노고는 치하받아 마땅하다. 큰 출판사에서조차 출간하지 않는 의미있는 책들을 출간하기도 하고, 탁월한 기획력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기도 하는 힘은 저력이라기보다 노력이겠지.
인문 출판사 도서를 모아둔 부스가 있기에 잠깐 들렀다가 궁금해서 사두고서는 아직까지 서문만 읽었던 책 <을의 민주주의>를 발견했다. 언제부턴가 충동적이지만 완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일은 자제하게 됐고, 당연스럽게 이 부스에서는 한 권도 사지 않고 나왔다. 이건, 발전인가?
이 역시 하나의 흐름이라고 하겠는데, 3분 소설을 표방하는 부스가 있어 눈에 띄었다.
SNS세대, 긴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 맞춘 소설이라고 할까?
자세히 듣지는 않았는데, 앞으로 어떤 형태의 콘텐츠로 발전해갈지 궁금해진다.
1인 출판 부스에서 두 권을 샀다.
요즘 관심 있는 분야라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 단서도 될 듯 하다는 순수한 목적에서.
현 시대를 '각자도생'이라고 하는데, 그렇기에 더욱 더 서로 돕고, 연대하는 일의 필요성이 더 간절하다. 독립과 자립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공존하고 함께 하는 일. 거기에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는 게 아닐까.
벌써 몇 년 전, 변덕스런 관심으로 참여한 희망제작소의 소설 디자이너 스쿨이 떠오른다.
소셜 디자이너 스쿨 12기,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았던 경험이 조금은 구체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워낙 유명한 평론가의 평론과 얼마 전 타개한 시인의 시집을 샀다. 사실 허수경 시인의 시집이 더 있었다면 가져오고 싶었는데 준비된 재고가 보이지 않아 한 권만 샀더란다. 죽음 이후에나 발견하고 마는 더딘 독자의 미안함이라고 할까. 시인이 세상에 없어도 시는 남았다는 자기 위로일까. 지금은 그 중간이라고 해두자.
사은품이다. 지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마스킹 테이프 사러 갔구나?"
그도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사는 사람이다.
웃픈 농담.
북마크와 북라이트는 1인 출판사 부스에서 사은품으로 줬다.
더 말해 뭐하겠는가.
독특한 옷을 입고 있는 네 사람과 만났다.
우연히 '코제트'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다시 보니, 네 사람.
소설 속 주인공인 모양이다.
코제트와 짝으로 보이는 사람, 중절모를 쓴 남자는 장발장이겠다.
그리고 좀 더 중세차림인 남녀 두 사람이 있었다.
힌트는 레 미제라블보다 더 과거라는 것.
화려한 드레스에 가면, 무도회 차림인가 보다.
그렇다면, 로미오와 줄리엣.
그렇게 네 사람의 정체를 맞춘 상으로 스티커 두 장을 얻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이벤트랄까.
이 '와우'북 '페스티벌'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와우'일까, '북'일까, '페스티벌'일까.
출판사? 독자? 행인? 시민?
솔직히 정체, 대상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모두를 위한 축제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과는 달라져야만 하는 게 아닐까.
책을 사고 파는 사람들 중심의 부스 기획.
온라인 서점 그 이상의 매력이 없는,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을 잃은 형식적 축제.
지난 해의 실패를 답습하는 과오의 반복과 게으름.
무관심이라고 해도 좋을 홍보와 지원의 부족.
누구보다 와우북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출판사의 부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이 축제 현주소의 증거가 아닐까.
내년에도 들여다 보기는 할 생각이다.
서울에, 멀지 않은 곳에, 마침 시간이 비어있다면 말이다.
이 조건은 달라질 수도 있다.
축제가 달라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와 규제 안에서 얼마나 여지를 넓힐 수 있을까.
바라기는 하지만 그 희망에는 회의적이라는 것.
그것이 제 14회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에 다녀온 결론이다.
취향의 시대,
사람들의 취향에서 멀어진 책의 현주소를 굳이, 증거하는 기회라는 오명을 벗었으면.
다만, 그렇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