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책방 Nov 11. 2018

[간단리뷰] 인격신과 분노조절장애 차별주의자의 기원

실낙원_존 밀턴

사진만으로는 간단히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 두 권의 책 제목은 <실낙원>이다. 파라다이스 로스트. 나를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천국을 잃었는가/ 정도의 부제를 달아두고 싶다.

 17세기 인간인 존 밀턴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운문으로 번역하는 등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그 능력을 발휘한 대표작이 이 두 권의 책이다. 후에 <복낙원>도 썼는데 조만간 읽을 예정이긴 하지만 크게 기대 않는 건 어떤 내용일지 예상이 가기 때문이다.

줄거리라고 해야 할까, 인간이 천국을 잃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 아는 그 일이 있었다.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지혜의 열매를 따먹은 죄, 원죄.

좀 더 친절히 원죄 이전의 이야기, 천사 중 높은 지위에 있던 천사가 신과 동등해지고자 하나님에 대항해 세력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하늘은 큰 전쟁을 치른다. 당연히 져서 지옥행.

지옥에 떨어졌어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타락한 천사는 이번에는 자신들의 배신 이후 하나님이 새로 만들었다는 인류를 한 번 더 타락시킴으로써 하나님에게 타격을 주고자 한다.

그리고, 뱀이 등장한다. 타락한 천사는 혼자 타락할 수 없기에 아담과 하와도 타락시키려 하는데 접근하기가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뱀의 몸에 들어가서 속삭인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한 열매를 먹었더니 말할 수 있게 되고 지혜로워져 선악을 알게 되었다고. 천한 뱀이 이 정도면 귀한 인간이 그 열매를 먹으면 신과 같아질 거라고 말이다.

유혹의 결과? 선악을 아는 열매를 따서 나눠먹고 천국에서 쫓겨난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선과 악을 아는 열매를 먹은 쪽이다. 무슨 말이냐. 부끄러움과 잘못을 알고, 지혜를 얻으려 애쓰며, 스스로 더 나은 삶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다른 의미도 있는데, 이런 책. 옛날옛날의 낡고 낡은 남성우월주의와 성차별,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인격신의 태도와 생각에 분노하며 화를 삭히는 쪽에 속한다는 거다.

그렇다. 지금, 이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기가 다 막힐만큼 팽배한 차별의식이 당연시되고 오히려 칭송받던 시대의 이야기를 읽는 데는 깊고 큰 인내심이 필요했다.

존 밀턴이 비열하다는 생각도 했는데 여자가 식사 준비를 떠맡고, 남자는 손님을 맞으며, 중요한 인물이 전하는 이야기를 홀로 듣고 가르쳐 주고, 무지하고 모자라는 여자를 이끌어 주는 식으로 썼기 때문은 아니다. 그 시대에는 그게 정당했을 테고, 당연한 일이었을테니 지금 탓해 무얼 하나.

비열하다는 생각은 여자의 부족함, 모자람, 약함, 유혹받기 쉬움을 여자 스스로 고백하게 하고,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게 하는 서술 방식에서 느꼈다. 정말, 치졸하기 짝이 없다.

내게 이 두 권의 책이 갖는 의미는 오래 전, 거의 15년 전에 읽었던 성경을 회상하게 하는 효과와 인간적 하나님이 이후 이 세상에 미친 악영향을 알아차리게 하는 데에 있었다.

밀턴의 이야기 속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인간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인간을 믿는 척 하면서 시험하는 걸 허락한다.

그리고서는 이게 무슨 짓인지, 그럴 줄 몰랐다는 듯 심판하고 낙원에서 쫓아내며 저주도 내린다. 남자는 수고해야 먹을 걸 얻을 거고, 여자는 출산의 고통에 시달릴 거라는.

거기까지면 그나마 이해하는데 수천 년 후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다시 회복시킬 거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은 인간의 육신을 얻어 세상에 갈 거고, 죽음을 맞을 거다.

이게 무슨 가학성 변태인가 싶었다. 사랑해서 시험하고, 죽게 하겠다니.(밀턴은 혹시 하나님 안티 아니었을까?)
 하나님의 계명, 신앙 아래 있는 자들이 만든 이후의 역사를 보자. 그러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신과 닮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들보다 열등한 '것'은 지배하고,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몰살하며, 복종함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지게 되고,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지어 저주를 받아 다른 이의 노예가 되는 게 당연하므로 같은 인간이 아닌 가축이나 짐승과 다르지 않게 부리고 죽이는 일의 무한 반복.

두 번 사랑받았다가는 목숨이 2개여도 모자라지 싶다. 선민 사상, 선택받은 민족이 지금도 저지르는 일을 보면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리라. 지금 내겐 문학적 가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지독했구나, 그래서 지독하구나 하고 깨닫게 할 뿐이다.


350년도 더 전 사람인 존 밀턴을 현재의 잣대로 판단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그가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진면목을 알고자 했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이 책에 그려진 하나님은 구약의 진노하고, 질투하고, 복수하는 두려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밀턴의 시대에도 그랬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후 낙원의 회복까지 생각하고 이야기를 지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이나 은혜로움이 더 자애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는 조금의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신이 알고자 하고 말하고자 했던 신의 모습이 아닌 당대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성경 그대로의 신을 그리는데 몰두했던 게 아닐까.


인간은 늘 신,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단순히 문학적 호기심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는 읽지 않고 지나쳐도 되는 게 아닐까 한다.

 

 대체한다면 시대도, 줄거리도 다르지만 엔도 슈사쿠의 <침묵> 쪽을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단리뷰] 토지 10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