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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Nov 11. 2018

[간단리뷰] 토지 10권

서술자와 전달자와 독자의 거리 = 0

토지 10권 읽기를 마쳤다. 절반 왔고, 소설 속 시간은 어느덧 30년 가까이 흘러 1924년이다.

과연 10권쯤 읽으니 이 길고 긴 이야기의 맥락이 조금 잡힌다. 보통의 소설과는 다른 특정 '주인공의 부재'와 인물들 입장에서는 몹시 중대한 사건들을 다른 인물을 통해 '사후 서술'하는 방식.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맥락을 잃지 않고 '줄거리'를 갖추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하나가 아니겠지만 그중 하나로 이 소설은 인물이 주역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최참판 댁 여인 서희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서희 이야기가 없어도 이야기를 진행 시키는데 결정적인 지장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거다. 이 소설의 맥락을 쥐고 있는 건 '역사'다. 인물의 역사가 아닌 민족의 역사, 민족이 터를 잡고 살아온 무대 위의 역사인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600명 넘는 등장인물의 존재 의미가 달라진다. 그들이 모두 주인공인 셈이다.

1919년 3. 1 만세 운동 이후 몇 년이 지나면서 일제는 표면적으로 온건, 유화책을 펴기 시작한다. 이른바 문화통치다. 그러나 실상은 내분의 씨를 뿌리는 것이요, 통제하기 쉽도록 드러내게 하려는 유인책이자 기만술이었다. 현재의 우리는 문화통치가 얼마나 지독하게 효과적으로 분열을 이끌어 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많은 이들이 속았고, 그만큼 독립에서 멀어지게 하는 실패를 늘렸다.

10권에서 주목한 한 가지 사건과 두 운동을 이야기해야겠다. 한 가지 사건은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 학살이다. 이때 일본은 위협이 되는 사회주의자들 세력과 함께 재일 조선인 6000명 이상을 학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부터 익숙한 외부의 적에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내부 단결을 꾀함과 동시에 강력한 위협으로 성장할 세력의 싹을 짓밟는 야비하고도 잔혹한 수법, 그들 전매특허를 활용한 거다.

두 가지 운동 하나는 물산장려운동이다. 민족자본을 육성해야 한다는 사명 아래 조선인의 경제적 입지를 넓히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같은 조선인 사이에 갈등의 빌미를 만들 수 있고, 일제가 마음만 바꾸면 간단히 무산 시킬 수 있는 등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는 역사가 보여주듯 현실이 된다.

다른 하나는 형평사 운동이다. 진주를 중심으로 시작됐는데,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진주에는 민란이 잦았다. 노비, 억압당하는 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겠다. 형평사 운동은 백정 등 특정 계층의 후손들에게도 평등한 교육 기회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운동이다. 1894년에 신분제가 폐지되었으나 30년 후에도 여전히 신분 갈등이 있었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형평사 운동은 내분과 일제의 간섭으로 10년 만에 무산된다.

이 사건들을 보면서 토지의 서술 방식, 독자를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에 흥미가 생겼다. 간접적인 서술, 관찰자의 증언 즉 현장 자체를 묘사하는 게 아니라 사후에 이루어지는 경험자의 진술을 통해 보여주는 거다. 이건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10권이나 되는 동안 여러 차례 등장한 인물들이 이제는 제법 친근해진 이후였기에 그들이 겪은 일, 전하는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된 거다.

몰랐던, 대략 알고 있던 사건들도 다시 찾아보게 됐다. 소설을 읽고 있으나 역사의 큰 시간표가 그려지는 느낌이랄까.

주목한 인물은 서의돈이다. 일제의 문화통치 일환, 물산장려운동의 위험성, 부작용을 간파하는 안목과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용기까지 갖춘 인물이다. 이전에는 참 못나보이더니, 이번엔 조금 달라졌다. 성숙해졌다 해야 할까.

불편함도 커졌다. 그 시대의 민중, 여성의 삶이 어떠했는지 잘 알면서도 신분의 구분에 얽매이는 모습, 극심한 여성차별을 계속 마주하는 게 의외로 힘들다.

'처녀귀신'의 이야기, 존재가 여성 차별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했다. 왜 처녀로 죽으면 한을 품게 되는가?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음이 이상했달까.

이제 11권이다. 남은 20년, 곧 만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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