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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an 08. 2019

[북리뷰] 이런 장래희망 뭐, 어때서?

누구나 나이들고 늙지만 모두가 귀엽게 나이들지는 않음을.

혼자 드로잉을 연습한다. 

그러면서 새삼 사람들이 왜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지 깨닫는다.

새로운 세계를 보러 그렇게 열심히 걷고, 뛰고, 날아가는 이유도 함께 말이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일상이 지루해서, 다만 그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필사적 노력일 뿐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


 "보이는 대로 그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가고 있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얘기하고 다닌다. 보이는 대로 그리려고 하지만 힘이들뿐 아니라 애초에 '보이는 대로'가 어떤 상태인지 확실하지도 않다. 

전혀 생소한 문자로 된 시험지를 받아들고 풀려고 하는 수험생 같다고 할까?


 겁이 난다고 말하면 과장이라고 하겠지만, 처음에는 겁이 나기도 했다.

스스로 서툴다고, 너무 못한다고 자책하는 데 한참이나 되는 시간을 쓰기도 했다. 

그 시간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지만 길어져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서문이 길었다. 

지인이 책을 냈다.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과는 달리 정식 출판사를 통해 출간하지도, 서지 등록을 하지도 않은 순수한 독립 출판물이다. 이미 그 성격이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기에 만듦새가 허술하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받아본 책은 상상보다 더 완성도가 높았다. 유행이 지난 감탄사로 '상상 그 이상'이랄까.


노파심에 적어보자면 몇 년 전부터 쏟아지는 여행기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길. 

어디어디를 다녀왔고, 저기저기의 경치가 기가 막히고, 여기저기서 좌충우돌 흥미진진한 모험을 했다는 이야기들에도 전할 수 있는 정보와 정서가 있다. 


 작가가 이 책에 담은 건 '인연'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 흔히 말하듯 절망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바꿔놓은 우연한 만남과 그 만남에서 생겨난 인연 말이다. 

 장래희망 같이 거창한 건 없던 작가에게 장래희망을 만들어준 인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장래희망이, '귀여운 할머니'라니. 거참, 많고 많은 희망 중에 굳이 나이 든 후의 모습을 꼽은 이유는 뭘까?


 열 살, 스무 살에는 몰랐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곱게 늙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아가고 있다.

외모는 멀쩡해도 내면이 걍팍하게 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모는 험해도 내면이 비단결인 사람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외모나, 내면 어느 쪽만 곱게 나이들어서는 '귀여울 수 없다'는 거다. 


 '귀여운 노인'이 되려면 외모도, 마음도 모두 곱게 나이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보통의 노력 혹은 어지간한 천성으로는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귀여운 할머니'라는 장래희망은 몹시 원대한 포부임이 분명하며, 작가가 만난 할머니는 세상에 보기 드문, 그야말로 희귀한 할머니임에 틀림이 없다. 그 정도라면 그동안 없던 장래희망이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일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데, 나만 그런 걸까?


 사람 인(人)이 사람과 사람이 기대어 있는 모습이라는 해석은 얼마나 멋진가. 

가까이에 때론 멀리서,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늘 다른 사람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곁에 없을 때는 그 사람과의, 사람들과의 추억에 기대어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얽히고 설켜 단단히 마음 한 구석을 떠받치는 사람을 '인연'이라고 정의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작가는 나에게 있어서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인생이라는 크고, 긴 그림에 몇 가닥의 중요한 선과 몇 부분의 빼놓을 수 없는 면을 채우고 있다.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의 책을 읽는다는 건 참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내가 쓰는 글을 읽는 사람들의 기분도 그런 걸까 싶기도 하다.


 어느 날에는 조금 더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날이 올거라 믿으며.


빼놓을 뻔 했으나 기억나서 다행!

이 책은 독립출판물로 만들었기에 그 제작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인연을 사랑하는 작가의 소중한 인연이 만든 인연의 결과물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침.


*이 글의 제목에 붙이는 주석.

이 작가의 첫 책 제목은 <이런 여행 뭐, 어때서>다.


혹시 책에 관심이 있을지 모를 분들을 위해 붙이는 링크

-> 작가의 블로그입니다.

https://blog.naver.com/gingerroll/221429829308

->그리고 더 덧붙이는 링크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싣고 있는 브런치!

https://brunch.co.kr/@77summerday

처음에는 정말 '이게 뭐가 되려고 이러나?' 싶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끝까지(자기가 생각하는 끝) 그리기만 하면, 그래도 이게 그거구나 하는 정도는 되는 놀라움을 또 경험하고 말았다.


 참, 흥미진진한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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