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책방 Jan 18. 2019

[북리뷰] 높이, 더 멀리 날자, 날자꾸나.

생택쥐페리 : 야간비행

비극이 어떻게 감동이 될 수 있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쓸쓸한 삶이 남기는 깊은 여운, 비극적 운명이 만드는 감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미스터리다.

다만,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뿐 누구나 품고 있는 비극의 가능성에 끌리는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볼 뿐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영원히 가슴에 품고 살다, 무덤까지 품고만 가는 생의 발견. 

막연하게 그렸던 삶을 생생하게 실감하는 영혼의 끌림이 비극에는 있는 게 아닐까.


'비행'이라는 제목에 신화 속 이카로스가 떠올랐다. 꽉 막혀서 틀에 박힌 인간이 되고 만 걸까? 그런 염려에도 『야간비행』과 이카로스 신화는 떼어놓을 수 없는 어울림이 있지 싶다. 

 태양을 동경해 너무나 높이 날아오른 탓에 추락했던 이카로스와 제트기도 인공위성도 없던 시대에 추락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밤하늘을 비행하던 야간 비행사는 얼마나 닮았는지.


 신화와 『야간비행』에 다른 점도 있다.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날지 말라'고, 추락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야간비행』에서 다이달로스 격인 항공 노선 책임자 리비에르는 이카로스 격인 야간비행사 파비앵을 아낌에도 불구하고 규율을 강조하며 야간비행을 강행한다. 누구보다 야간비행의 위험을 잘 알지만 실제로 사고가 일어났을 때조차 비행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우선한다. 비극의 방아쇠인줄 알면서도 당기고야 마는, 당길 수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


 이 소설은 '삶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지부진한 삶을 연명하기보다 단 한 순간이라도 최고의 풍경, 압도적인 경이로움의 체감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 이카로스나 미지의 위험을 품은 밤하늘을 비행한 파비앵처럼 말이다. 

 그들에게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며,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함께 잠들고 눈뜨며, 맛있는 걸 먹고, 소소한 하루를 나누는 일상을 소중함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고 느낄 뿐이다. 그 느낌이 너무 절실해서 "이게 전부일까?"하는 의문 앞에 멈추지 못하고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하는 확신으로 미지로 통하는 문에 과감히 뛰어드는 거다. 

 그곳에서 전혀 다른 삶의 풍경과 만날 거라는 믿음으로.


 또 한 가지, 『야간비행』은 오랜 시간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행적에 힌트를 담고 있다. 마지막 정찰 비행을 위해 날아올라 돌아오지 않았던 그. 『어린왕자』 속 소행성 B612로 돌아간 게 분명하다는 낭만적 상상을 품게 했던, 지구 최후의 어린 왕자 탄생 예언이라도 되는 듯한 이야기. 


 이카로스처럼 날개를 달아줄 솜씨 좋은 다이달로스도 없고, 야간비행처럼 특수한 경험의 기회도 없는 평범한 '나'는 어떻게 일상 너머 미지로 자신만의 비행을 시작할 수 있을까? 


때로는 무자비한 강제나 강요보다 마음 한편을 간질이는 살랑한 부추김이 무섭구나 한다. 너도 날 수 있다고,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속삭이니까 말이다. 

 『야간비행』은 짧지만 높이, 멀리 날아오르게 하는 추진력을 감추고 있는 사랑스런 소설이다.


- 이 감상문은 문학동네 북클럽 에필로그 북에 실린 글을 일부분 수정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북리뷰] 이런 장래희망 뭐, 어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