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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an 31. 2019

[북리뷰] 이해를 구하지 않는 인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사바하틴 알리/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안녕하세요. 북큐레이터 서동민입니다.

 오늘은 1907년에 터키인으로 태어나 1948년 세상을 떠난 작가 사바하틴 알리의 장편소설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해볼게요.


마음 껏 상상해보세요.

이 사진은 뭘 그린 걸까요?

눈에 보이는 건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아래까지 디귿자로 이어진 선과 중앙에서 왼편으로 치우쳐 비스듬하게 그린 선. 이 선과 맞닿은 짦은 선 두 줄. 네모 혹은 방사형의 도형 몇 개.


이해하셨나요?

무얼 그리려고 한 건지, 그리는 이의 의도와 목표가 보이시나요?

혹은, 지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 알 듯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뭔가요?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해석을 시도하기 위해 필요한 게 있습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 막연하고 막막하며 예측 불가능한 상태를 선호하기란 어려운 일이죠.

애초에 최소한이라도 관심이 생기려면 어느 정도 이상의 정보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책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해보죠.


"이해를 구하지 않는 인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요?

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 게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없이는 이해도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때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혹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이해와 사랑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방향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그 순간의 몰이해를 자신에 대한 거부 혹은 거절, 때로는 부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인간에게, 모든 인간은 '충분한 이해'가 불가능하거나 거의 불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충분한 이해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충분하다'조차 저마다 다른 수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질테니까요. 결국 모든 인간에게는 불충분한 이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의무가 생겨나는 겁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시간, 장소, 경험을 살아온 타인과 공존하며 사랑하기 위해서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속 인물들이 지닌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결과로써의 몰이해와 원인으로써의 소통 부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고 그리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차 그 이해를 위한 노력은 최소한의 수준에 그치죠. '최소한'이라고 한 건 자기 이해에만 몰두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서로의 솔직한 마음들. 두려움, 기쁨, 슬픔, 아쉬움, 불안을 솔직하게 나눌 수 없게 만드는 무수한 이유 앞에서 서성이며 오랜 시간을 보내죠. 그 결과, 두려워했던 그대로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었을지 모를 기회,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었을지 모를 기회를 잃어버린 채로요.

 

 이 과정은 누구의 삶에서나 몇 번, 몇십 번 씩 반복됩니다. 알아차리거나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요.

누군가는 끝까지 완전한 이해를 꿈꾸며 고독하게, 외로움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자기 안에서 살아가는 걸 택합니다. 다른 누군가는 '충분한 이해'의 수준을 낮추거나 바람을 수정하면서 맞춰가죠. 또 다른 누군가는 충분한 이해는 없으며 오히려 서로 다른 환경, 경험을 가진 인간이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불충분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충분하게 만들기 위해 끝없이 시도하고 애쓰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도 타인도 포기하지 않죠. 충분한 시간과 대화, 시도를 거쳐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서로를 이해해 가죠.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는 갑작스럽게 실직한 한 남자가 친구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게 되고, 그 일터에서 만난 세상 무관심하고 식물처럼 무기력한 남자 라이프 에펜디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라이프 에펜디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무관심한 식물과 다르지 않은 내면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화를 내지도, 열정을 발휘하지도 않고 자기 일과 자기 세계라는 닫힌 세계에서 사는 죽은 것과 다르지 않은, 동요하지 않는 남자.

 같은 방에서 일하게 되면서 남자는 라이프 에펜디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을 품게 됩니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능력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는. 냉정하다기보다 따뜻하고, 무심하다기 보다 보이지 않게 배려하는 태도에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터무니 없는 가족과 회사 동료들의 무시와 모진 처사를 묵묵히 견디는 이유를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거리는 단순한 회사 동료 수준에 머물 뿐 더 친해지거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관계로 발전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 경험이 만든 두텁고 높다란 마음의 벽을 넘지도 허물지도 못한 거겠죠. 그러던 어느 날, 라이프 에펜디는 산책을 나갔다가 폐렴에 걸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대로 죽음에 가까워지죠. 마치 유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라이프 에펜디는 남자에게 사무실에 두고온 자기 물건들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남자는 라이프 에펜디의 물건 속에서 비망록을 발견하고 읽어보려 합니다. 하지만 라이프 에펜디는 거부하죠. 읽지 말고 태워달라고요. 그러나 남자는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룻밤 만에 읽고 돌아와서 다음 날에는 반드시 태우겠다고 약속하면서요. 라이프 에펜디도 남자의 노력에 답합니다. 읽어도 좋다고요.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는 라이프 에펜디가 남긴 비망록 속 이야기입니다. 젊은 라이프 에펜디가 만났던, 누구보다 사랑했던 존재 마돈나와의 사랑이야기요.


 라이프 에펜디의 마지막 말은 이거였습니다.

"안타까워˙˙˙." 

자신의 사랑, 기쁨, 두려움, 불안, 행복을 누군가와 터놓고 이야기 나눠보지 못했던 지나간 시간과 자신의 삶 모든 게 안타깝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소통의 수단과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다양한 소통의 수단과 방법이 있음에도 이해보다는 오해하는 순간이 잦죠.

마치 이해는 불가능하고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이유를 찾습니다.

거부하고 거절하며 스스로 느끼는 두려움을 정당화할 구실과 근거로 더 높고, 단단한 벽을 쌓아갑니다.


기적.

오해를 이겨낼, 몰이해를 극복할, 조금 더 충분한 이해에 닿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기보다 기적을 기다리듯 마음을 움직입니다.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를 읽는동안 이해 받고 싶어하는 사람과 그러면서도 이해 받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모순을 생각했습니다. 오래 전, 지금, 미래의 내가 구해왔고 구하고 구할테지만 닿지 못할 이해의 영역과 이해 받으려는 혹은 이해를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제는 이해란 기적처럼 찾아오는 게 아닌, 꾸준히 애쓰고 노력하며 소통하려는 시도를 그치지 않을 때 생겨나고 커진다는 걸 조금 더 분명히 알고 실감하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방황합니다.

이해받고 싶고, 이해하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해 헤메기도 합니다.

그러나 괴테가 적었듯 인간은 애쓰는 동안 방황하기 마련이기에.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가,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조금만 자신을 드러낼 용기를 냈더라면, 이런 이야기는 생겨날 수 없었겠죠. 그럼에도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라이프 에펜디와, 마리아,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 모든 순간들에요.


 초반, 라이프 에펜디의 비망록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조금 느린 전개에 답답한 흐름을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애써주세요. 누군가가 이 책을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추천했듯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앞서 보여줬던 그림.

스케치의 결과물은 바로 이거예요.

어때요. 상상했던, 예상했던 바로 그 모습인가요?

이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 책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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