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달의 궁전' [올드 스쿨] 모임 후기
인물과 줄거리는 진실이다.
먼지가 잦아 갇혀지냈던 이 해 봄이 끝났어도 아직은 잔먼지에 잠겨 여름 직전, 이 도시는 여느 때보다 격하게 호흡하고 있었다. 그 호흡은 뭉쳐진 구름의 모습으로 수천 대의 자동차 배기구에서 나와 이글대는 아스팔트 위를 기었다. 그러나 아스팔트 위로 솟구친 다음에는 금세 흩어졌고, 조금은 흐릿한 하늘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책은 가방 안에 묵직함을 품고 있었으며, 책ㅡ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때부터 줄곧 무거운 축에 속하는 가방의 부속이었던 책ㅡ그 무게 만큼이나 커다란 의미를 풀어내고는 했다. 달의궁전은 여전히 책으로 모이고 떠들었으며, 앞으로도 모이고 떠들리라, 그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잠깐 중단했던 일상적인 모임으로 되돌아온다. 모임 참가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위험들을 내치거나 이겨내며, 장소를 착각했다 되돌아오기도 하며. 이번에는 용케 그 위험들을 모면했다. 처음으로 버스 터미널에서 임시로 배차한 관광 버스로 상경하는 경험을 했지만 서울 종각에 그림자 하나를 드리울 수 있었다.
우리는 책을 펴고 또 덮었다. 우리는 책을 정하고 또 책을 읽어왔다, 달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대화를 다시 시작한다. 그 모든 것이 그렇듯 중요하다고 누가 생각했었으랴?
우리는 다시 떠들며 먹고 마시는 데 익숙해진다. 우리는 충만한 페이지를 조금씩 넘기면서 살아나간다, 마치 이 기이한 재료가 지나치리만큼 많다는 듯, 마치 이 재료가 다함이 없기라도 하듯이.
2019년 5월이 끝나갈 무렵 종각역 뒤편 유쾌한 발상에 여덟 명이 모였다. 누가 오라고 했던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왔다. 처음 보는 공간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이곳이 처음이었지만 먼저 도착한 자는 의무를 다한다.
여러분, R6, 여기로.
저마다 치뤄야하는 비용을 치르고서야 올 수 있었다. 애벌레의 모험에 함께 하고, 200킬로미터 밖에서부터 달리며, 이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불안과 마주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 틈에서 꿋꿋하며, 컨디션 난조를 조율하고, 5년 묵은 삼지구엽초주를 준비하고, 천 번의 버피테스트를 이겨냈다. 오늘에 아쉬움을 보내고 다음 달 만남을 보채며 안타까움을 견디는 이도 있었다. 함께 하는 이들이나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이나 저마다 치러낸 적지 않은 비용이 그 자리에 그림자 하나를 드리우는데 필요한 최소한 이었다.
텍스트는 토바이어스 울프, <올드 스쿨>.
배경은 1960년대 미국 명문 고등학교다.
부와 명예 모두를 가졌으면서도 내 것이 아니라며 소탈한 듯 아이들은 거리를 둔다. 학교는 이런 아이들을 다른 왕관으로 유혹한다. 아이들의 꿈을 위한 문학 경연, 경연 우승자는 최고의 작가와 독대하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아이들은 고민한다.
무엇을 쓸지, 어떤 작가와의 만남에 최선을 다할지, 자신이 쓰고 있는 게 진실인지 진심인지 거짓인지 헷갈려 하면서.
그 사이, 몇 번의 기회가 오고 간다. 우승자로 뽑힌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 동경과 질투가 뒤섞인다.
새로운 소식이 퍼진다. 다음 초청 작가는 바로 그. 문제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이들은 앓고, 학교는 술렁인다. 결말을 미리 돌아보면, 모두 헤밍웨이가 잘못했다.
어떤 현실은 현실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 헤밍웨이는 초청을 받아들이지도, 누군가 선별해 보낸 아이들의 작품을 읽지도, 그 중 한 편을 택하지도 말았어야 옳았다.
소설의 결말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른다. 아는 건 결말을 평가할 수 있는 건 읽어낸 자 뿐이라는 사실 뿐이다.
우리의 대화는 때로는 엉뚱하고 후라이팬 속 기름처럼 사방으로 튀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익힌 계란 후라이처럼 완전하다.
반사적으로 레삭매냐는 말했다.
"서정주 쓰레기잖아!"
색채남이 작품 평에 서정주를 언급한 다음 순간이다. 동경에서 시작한 문학활동, 대단하게 여겼던 사람에게 실망을 느끼는 아이들. 그런 걸 잘 그려냈다면서 조정래 작가가 서정주에게 실망을 했다던 느낌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헤르메스는 작품평으로 하나의 화두, 질문을 던진다. "문학은 진실을 담아야 하는가, 진실이 담기지 않아도 상관 없는가?"
누구도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진실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들어가보면 작가 자신이 학력 위조로 위기를 경험했다고 한다. 다른 데서는 이렇게 연결하기 어려울텐데 달궁에서는 자연스럽게 작가 토바이어스 울프가 타블로 관련해서 변론해줬던 이야기로 이어졌다. 추측컨대 자기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변론해줬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소설에 진실을 쓸 수는 있지만 진실인지, 거짓인지, 진실같은 거짓인지, 거짓 같은 진실인지, 그 무엇도 아닌지는 작가 자신조차 모를 수 있으므로 추측으로 끝내기로 한다.
삽하나는 소설 속에 언급된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헛간 태우기' 얘기를 꺼냈다. 이창동 감독 영화 버닝 원작 소설이다(또 하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도 원작이라고). 감독은 진실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깊어지는 좌절, 혼란을 그리고 싶었다더라고. 책 서문에도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인용문이 있어 연관지을 수 있었단다. 소설에서도 개연성있는 허구, 허구를 만드는 작가가 등장하는데 작가의 현실 모습을 보고 괴리감, 나아가 인간에 대한 모멸감까지 느끼는 모습을 그려낸 점이 흥미로웠다고.
레삭매냐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표절 관련 내용에서 나 스스로 쓴 건지, 다른 작품을 읽고 쓴 건지 그걸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뻔뻔하다고.
헤르메스는 부연한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이것도 같은 맥락의 얘기라고. 자기 자신은 정작 모른다.
시진은 공감한다. 그 심리는 너무 이해가 된다고.
나는 인용한다. P288, "글을 쓰면 세상과 분리되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정말이지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헤르메스는 분석한다. 자전적 바탕으로 철저히 쓰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자전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한 거라고.
레삭매냐는 덧붙인다. 소설과 작가를 분리한다는 건 (완전히) 사실 불가능한 것 같다고. 헤밍웨이 소설 중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 이야기가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에서도 언급되는데 이렇듯 서로 울궈먹고 있더라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의문을 던지는데 그 지점은 왜 이 작가의 소설이 번역되어 나오지 않는가였다. 본래 출간하기로 했던 예정일보다 며칠 늦어져서 기다려야 했다는 분노 섞인 일갈을 떠올리게 하면서.
느닷 없이 업자들의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업자란 출판사들 혹은 온라인 서점에서 진행하는 리뷰대회의 강자들을 아우르는 표현.
헤르메스는 리뷰대회 하는 걸 떠올렸다고 말한다. 꼭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쓰는 게 아닐 때도 있다고.(본래 표현을 순화)
레삭매냐는 마침 의문을 풀 기회를 맞이한다. 그걸 물어보고 싶었다고. 리뷰대회 리뷰는 모두, 전적으로 진심인가 아니면 맞춤형인가.
헤르메스는 독서 담론으로 이야기를 넘긴다. 책을 내고 나면 작가는 상관할 수 없다고. 작가 손을 떠나면 완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레삭매냐는 느닷없이 리바이어던을 보고 조선일보 기자가 신박한 해석을 해서 놀랐던 경험을 전한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프레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더라며.
둘의 대화를 중략한다.
숨은 너무 좋았고 너무 재밌었다며 얘기를 시작한다. 소설을 읽은지 오래 됐다고. 작품에서 자기 친구들, 주변 사람들 묘사가 생생해서 욕하고 빈정대는 표현들에 폭소를 하기도 하면서 읽었다고. 숨은 인용한다. P26, 조지의 자비로움. 이 부분이 너무 웃겼다고.
숨은 이 작가가 숨을 보고 썼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생생하게 쓸 수 있었던 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일 거라고 느낀다. 장단점을 고르게 얘기해주는 걸 보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 많고 디테일하게 볼 수 있는 건 애정있는 시각때문일 거라고 부연한다. 작가도 좋은사람이라 생각한다고 결론도 내놓는다.
시진은 명언처럼 들리는 한 마디를 던진다.
나의 거짓도 진실의 일부.
삽하나는 메모했던 내용을 읽어준다. 자신은 글을 쓰면 괴롭다. 생선에 소금뿌리듯 비린내나는 생채기 같다고. 느닷 없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이유라는 고백을 보탠다.
yeriel은 주에 한 권 정도의 책을 읽던 상황이라고 운을 뗀다. 그런데 잘 안 읽혔다고(한국 성인 연간 평균 독서 권수는 10권이 안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너무 재밌었다고. 추천해주신 레삭매냐님께 감사를 전한다. 필사하면 좋겠다는 말로 찬사를 보탠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될 거 같다고 말하고 책 뒤 추천사에 '버릴 단어가 없다'란 평이 있는데 진짜 필사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고 강조한다. 묘사에 대한, 휙- 스쳐지나는 걸 잘 포착해서 글로 잘 풀어내는 능력이 좋았다며 칭찬을 구체화 한다. 논란이 될 수 있는 견해는 비공개처리 한다.
중략
yeriel은 P109를 언급하며 램지 부인 묘사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타락을 경계하는 학교 분위기다 보니 불법적이라고 쓴 것이라고 말한다. 헤르메스는 당시, 1960년대 미국 유부녀가 젊은 학생들 사이에 있으면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보곤 했다며 시대상을 반영해 부연한다.
중략
yeriel은 문학치료에 관심을 표한다. 감사 편지를 쓰고 있다고 예를 든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잘 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레삭매냐는 꿈을 깨고 현실로 끌어내린다.
"필사하고 싶다. 그러다 신경숙 작가 꼴나면 어쩌나."
긍정한다.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드 단편 속 여성 작가 이야기를 꺼낸다. 작가는 자기 자신이 자기 복제를 할까봐 병적으로 두려워 하며 자신이 쓴 작품을 읽고 또 읽는다.
막간을 이용해 질문 시간을 갖는다.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가? 핵심은 왜 쓰는가에 있다.
결론은, 기억을 위한 기록.
글을 쓰다보면 처음에 쓰려던 느낌이 어느 샌가 사라져 버려 힘들다는 레삭매냐의 말에 전원 공감.
누구는 '동기는 뽑히기 위함'이고 그러다 보면 설득력 있는 인용문을 찾아야 하는데 그 발견이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나 그는 리뷰대회 2관왕을 하기도 했던 실력자다. 글은 결국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공감.
중략.
한 줄평의 시간.
나는 제목을 인용, 스포일러 스쿨이라 평한다.
몇몇 고전 소설의 결정적 부분을 마구 써놓았다.
헤르메스는 철학적 담론을 던진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진은 인용한다. P276, 글을 만들어내는 삶은 글로 적을 만한 삶이 아니다.
삽하나는 독서에서 발견하는 나의 거짓과 진실, 그리고 끝없는 방황.
오늘 이 사람들이 다 왜 이래, 색채남도 철학 모드다.
"정수를 발견하기 위해 필요했던 갈등과 뒤섞임."
레삭매냐는 유머를 발휘한다.
P225를 인용, 패러디 한다. "글쓰기의 모든 순간이 진실했을까?"
yeriel은 한결 같이 '필사하고 싶은 책'이라고 평한다.
마지막으로 숨은 좋은 작가를 알게된 책이라고, 훈훈함을 더한다.
독서 모임 하이라이트는 이제 시작될 참이다. 그 시작을 준비하며 다음 달 함께 얘기 나눌 책을 내놓는다.
이 책, 저 책을 오간다. 그러다 같은 울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닿는다.
문 앞에 서서 문을 열기 위해 문에 손을 뻗듯이.
쓰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넘어서야 후기를 마친다.
물론 처음 쓰기 시작한 때 생각했던 전개, 결말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사실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는 저마다 치러야할 비용을 치르고 만났고, 얘기나누고, 먹고, 마셨으며 다시 그 비용을 치르고 다음 달을 기약했다는 게 진실이며 사실이라는 거다.
다음 달에도 우리는 저마다 치러야 할 비용을 치르고 모인다. 바라는 건 치러야할 비용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아니었으면 하는 단 하나.
이 후기는 진실일까.
후기를 쓰는 마음 하나는 진실이다.
벌써 당신들이 보고 싶다.
우리 꼭 만나자.
아, 글을 올리려고 보니 제목이 M을 위하여다.
왜 M을 위하여였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글을 왜 쓰냐고, 당신은 일주일 전 점심 때 먹은 메뉴를 기억할 수 있는가.
대답이 부족하면 댓글을 달거나 모임에 나오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