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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un 27. 2020

"여기는 뭐예요?" 또다시 묻기 시작했다.

1년 전과 다르지 않은 대답을 내놓는 중이다.


 2020년 4월 15일은 처음으로 가가서서에 쓸 목재를 산 날이다. 꼭 1년 전에 가가책방을 만들 준비를 하며 여기저기서 버리고, 뜯기고, 내놓아진 물건들을 모으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당장 가져온 물건, 목재의 쓰임이나 용도를 특정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쏘시개가 될 오랜 기억을 머금은 '존재'를 구한다는 느낌이 강했고, 그 일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자꾸만 끌려 다녔으니 말이다. 

 이번은 다르다. 어디에, 무엇을 만드는 데, 얼마만큼이 필요한지 정확하지는 않아도 제법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기억하기로 처음 구매한 목재 비용은 34만원 정도다. 거의 모든 목재에 '구조재'란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대로 해석하면 어떤 틀, 구조를 만드는 데 쓴다는 거다. 


 그래서, 처음 만든 게 벤치와 입구 쪽 나무틀이다. 

포부는 좋았다. 짧거나 굵기가 다른 목재를 모으고 짜 맞춰 공간을 만들어야 했던 1년 전보다 훨씬 수월할 테니 작업도 슉슉 진척될 거라 믿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새 것을, 새 재료를 쓰는 작업이 쉬운 게 당연하니까. 

 이런 말을 적는 걸 보고 알아차렸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현실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혹했다. 

그러니까, 쉽게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2개월, 우여곡절 끝에 공간은 윤곽을 갖췄다. 

느낀 바가 많은 두 달이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질문이 시작됐다. 1년 전 가가책방을 만들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비슷하고 예상 가능하지만 설명하거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다시 찾아온 거다. 


 첫 번째 질문은 가오픈 파티를 하던 날 날아들었다. 밤도 깊어 9시 무렵, 공주의 밤 9시는 거의 모든 상점이 닫히는 시간, 대부분의 집이 불을 끄고 드라마를 보거나 잠을 청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환히 불을 밝힌 것도 아닌 공간에 문을 열고 던진 질문이란 이거다.


"커피, 파나요?"


얄궂은 질문이다. 

많은 책방들이 북카페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커피 한 잔 파는 게 책 한 권 파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커피는 원하는 사람이 많지만 책을 원하는 사람은 그에 비하면 매우 적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책방이 커피와 음료를 포기하기 어려워지는 게 현실인 거다. 

 1년 전에 내놓은 대답처럼 가가책방은 그래서 커피나 음료를 판매하지 않는다. 공간의 정체성 문제가 걸려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심코 혹은 고민 끝에 던진 질문들은 항상 책방지기에게 공간의 정체성을 되묻게 만든다. 그래서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그렇지는 않지만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첫 번째 요인은 '무엇을 파는가?'다. 소도시 공주에서 책방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사업활동과 콘텐츠 제작을 겸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무엇을 파는가는 특히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소도시 공간은 사실상 의미도 잃어버린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가책방은 처음부터 책을 '많이 파는 공간'이 아니라고 정의하고 시작했다. 책을 팔지만 과정과 이후의 활동에 더 큰 무게를 싣겠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북클럽이 부려놓은 마법이 공주에 책방을 내게 했고, 책방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다른 연결로 이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으니 가가책방은 연결에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은 거다. 

 가가책방의 슬로건 '오랜 새로움'도 맥락이 같다. 오래된 이야기와 새로운 사람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소망이 담긴 표현이다. 그 결과 책은 많이 팔지 못했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연결은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희박해 보이던 가능성조차 크게 키워주었다. 두 번째 공간을 준비하게 만든 확신이 거기에서 생겼다. 공간이 온전히 기능한다면, 거기에는 그 공간을 알아주고, 적절히 활용하며, 연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는 확신도 함께.


 "커피 파나요?"라는 질문은 그래서 얄궂다. 조금 밝고, 예뻐 보이는 공간은 우선, 카페로 간주되는 듯한 느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느낌이 괜찮다일 수 있으니 얄궂어지는 거다.


 두 번째 질문은 조금 어린 친구에게서 나왔다. 

"여긴 뭐하는 곳이죠?", "언제 여나요?"

그렇다. 단골 질문이다. 

 가가책방과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거라고 예상한다. 

가오픈 파티와 함께 가오픈 쪽지는 붙여두었지만, 어느 날 정식 오픈! 하고 짠 하는 게 아니라 어느샌가 '가오픈'이라는 세 글자가 슬쩍 사라지는 오픈이 될 거다. 그 과정에서 공간은 조금씩 바뀌고 성장할 거다. 책이 늘고,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고, 처음과 다른 부분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보태거나, 팔았으면 좋은 책과 물건도 추천해주게 될 거다.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오픈 형태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이용자, 고객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 

완전하게 기획되고 재단되어 어느 날 딱! 하고 문을 여는 공간보다 부족한 부분을 함께 메워가는 공간으로 기능하면 그때는 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세 번째 질문은 의외다.

"사진관 아닌가요?"

간판이 없는 탓인지 묘한 질문이 종종 날아들지만 사진관은 정말 의외의 단어다. 어디가 사진관처럼 보였을지 지금도 상상할 수 없다. 

 가가책방이나 가가서서나 밖에서 보면 '활짝 열려있다'는 느낌보다 '가려져 있다'거나 '닫혀있다'는 느낌을 준다. 의도한 바라기보다 구조상 생겨난 효과인데, 이게 참 웃프다. 좋은 건 그럼에도 들어온 사람들이 크게 기뻐해 준다는 거다. 하나의 커다란 관문(가가책방 앞에 늘어져 있는 스핑크스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데)을 통과한 결과 의외의 공간과 만난 이들의 놀라워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참 좋았다.

 슬픈 건 좀처럼 들어오지 못한다는 거다. 공간 이해도가 높거나, 비슷한 공간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아니면 문을 여는 빈도가 확실히 떨어진다. 더 많은 이들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루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는 거다.


 질문은 아니지만 네 번째가 있다. 

가가책방지기가 만드는 공간은 어디든 '공방의 느낌'을 풍긴다는 말이다. 이 말은 봉황재 사장님의 감상인데, 가가책방을 만들 때 무수히 듣고, 받았던 오해와 질문의 절반이 공방이냐는 것이었기에 그때부터 몸에 배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 기획하고 내 손으로 만든 과정이 엿보이는 어설픔 덕일 수도 있겠다. 공방이라는 느낌이 만약 무엇을 빚는 공간, 창조의 공간이라는 의미에서라면 좋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는 바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 이런 질문도 있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죠?"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이다. 결코 들어서는 안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고객이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게 능력인 시대에 말이다.

가가서서는 얼핏 보면 안으로 통하는 문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비밀은 와 보면 알기에 여기서 밝히지 않기로 한다. 수수께끼는 풀어낸 이들에겐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좋은 것이니까.


 봉황재 사장님은 책방 공사가 지지부진하자 이런 말을 했다.

"책방을 만들려고 하면 책방 말고 다른 걸 다 만든다."

그랬다, 책방 공사를 하면서 자꾸 딴 길로 새곤 했다. 그래서 두 달이나 걸리고도 다 못 끝내고 말았다. 하지만 책방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꿋꿋했다. 그 결과 책방이 되긴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많은 책이 꽂히는 서가를 갖추고 말았다. 책방은 책이지라고 생각하면 정석인데, 가가서서는 모두 파는 책으로 채우려고 했던 계획을 주춤하게 했다. 


 책방은 책방인데 어떤 모습일지 아직 완전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와 다른 점이 바로 그 지점이다. 가가책방은 안에 들어갈 책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꾸밈이라기보다 채움을 중심으로 했기에 고민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가가서서는 채움조차 고민이 크다. 꾸밈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덕분에 이번 질문들은 지난해와 닮았음에도 제법 버겁다. 


 스스로 만든 공간이지만 어떻게 기능하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이용하게 될지 완전히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 어렴풋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려면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어떤 공간이길 소망하는지, 무엇이 이루어졌으면 좋을지, 그 소원들을 듣는 기회들을 만들어야겠다.


 사실 질문을 얻는데 이렇게 긴 글이 필요하지 않다.

소원을 듣는 데에도 이런 장황함은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나 한 번은 거칠게라도 써봐야 정리가 시작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쓴다. 


 떠오르는 질문이나 이런 공간이길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남겨주었으면 한다.

혹은 생활 속 거리두기가 가능한 가가서서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다.


 가가서서는 공주시, 감영길 3에 있다.

공주사대부고, 웅장한 정문 바로 앞이다.


 오랜 새로움 두 번째 시즌.

이미 시작.


가가서서 책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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