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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ul 15. 2020

코로나 시대 소도시 책방의 존재 이유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공주에서 책방을 하는 걸까

 오래전 일이다. 오른쪽 정강이에 금이 가는 사고가 생겨 허벅지까지 석고 깁스를 했다. 웬만한 상처는 금세 나아버리는 회복력 250%의 시기였음에도 고작 정강이에 금이 갔다는 이유로 한 달 반, 45일이나 뻣뻣한 다리를 참아야 했다.

 회복력 250%라는 얘기는 이런 의미도 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시기'

 정말 그랬다. 무릎도 굽히지 못하는 상태로, 작은 소라 껍데기를 짊어진 소라게처럼 이리저리 걷고 뛰어다녔다.


 그 부작용은 45일이 지나 깁스가 풀리고, 쪼그라들었던 근육이 회복된 후에야 나타났다.

날이 궂은날이면 금이 갔던 부분이 욱신거리고 아픈 나날이 시작된 거다. 차라리 부러졌다면 더 빨리, 더 완전하게 회복됐을 거라고 했다. 더 빨리 회복됐다면 깁스를 하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마치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필연처럼 정강이의 통증은 20년 넘게 계속됐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통증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제는 완전히 나은 걸까 아니면 더는 통증을 느끼지 않을 만큼 무감각해진 걸까. 둘 다 아니라면 그 통증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옛말에 오래전 일을 자꾸 떠올리게 되는 건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는 게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나이 들었기 때문이라면, 오늘의 나는 얼마나 나이 들어 있는 걸까."


가가책방 단골손님 가족

 이상한 일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보다 고양이를 볼 때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경험을 많이 한다.

자정 넘어 퇴근하던 날, 가늘게 뿌리는 비를 피해 가가책방 최고의 단골손님들에게 늦은 저녁을 챙겨드리러 갔을 때다. 한 분이 먼저 식당에 입장하시고 세 분이 저마다의 자리에 앉아 자신이 보고 싶은 곳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걸 찍을 때 새삼스레 이런 물음이 되살아났다.


 "비 오는 날, 고양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비가 와도 고양이가 흠뻑 젖어서 식당을 방문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딘가 안전한 곳에서 비를 피한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비가 와도 고양이는 알아서 비를 피하러 간다는 수준에서 질문이 멈췄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조금 더 나이 든 질문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얘기를 건넨 거다.


 "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추억은 어디로 가는가."

실향민이나 개발에 밀려 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얘기를 할 생각까지는 없다. 오히려 흔하게 일어나는 일, 거의 누구나가 경험하는 일에 대한 얘기다. 예를 들어, 좁고 깊던 골목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넓은 공원이 생겼다거나, 엄마 아빠 손 잡고 생애 첫 영화를 봤던 극장이 헐리고 현대적인 어울림센터가 세워졌다거나, 좁아서 차 다니기엔 불편했지만 길을 따라 문방구며, 슈퍼마켓, 친구네 집, 친척 누구네 집이 주욱 이어지던 익숙하고도 친숙한 길이 2차로에 양쪽으로 인도까지 갖춘 도로로 변해버렸다거나, 중고등학교 시절 일주일에 일곱 번씩 드나들었던 추억 속 떡볶이집 건물이 헐리고 주차장이 되어있다면.


그 많던 추억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라졌을까, 아니면 어딘가 남아 있지만 영원히 발견하지 못할 뿐인 걸까.

만약 어딘가 남아 있지만 영원히 발견하지 못하게 된 거라면 사라진 것, 없어진 것, 영영 빼앗긴 것과 무엇이 다른 걸까.


 공주 원도심에서 가가책방을 가오픈 한 '2019년 6월의 나'는 이 질문을 떠올리지 못했다. 질문을 떠올렸다고 해도 적당한 대답을 내놓았을 뿐이지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을 거다.

지난 1년, 공주 원도심은 정말 많이 변했다. 사라진 공간도 많고, 생겨난 공간도 많고, 있지만 변해버린 공간도 많다. 정말 처음 공주에 빠져들게 했던 느낌, '아늑하고 조용한 소도시'의 이미지는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 경험 덕에 깨달은 게 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고, 다니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게 된 상황이라 더 확실하고도 여실히 깨달아야 했던 가치. 공간의 존재 이유를 말이다.


 가가책방을 찾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이 공간과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완전한 이방인으로 찾아오지만 웬만한 현지인보다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이다. 또 하나는 직접적으로 책방 공간과 연결된 추억은 아니지만 공주시, 원도심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생겨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가려내고 익숙한 것에서 오래된 추억을, 낯선 것에서 새로운 추억을 꺼내놓는다.

 두 부류의 사람들 중 일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그것이 손일 때도 있고, 발일 때도 있고, 입일 때도 있고,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든 손일 때도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움직임들의 끝, 결론은 이런 식으로 표현된다.


"책방이 있고, 책이 있어 위로받고 행복함을 느낀다."

"공주에 와서 제일 기분 좋은 순간이에요."

"고양이 이름이 가가라서 가가책방인가요."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오래오래 있어주세요."


모두가 그렇게 느낄 수는 없는 거지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얘기해줄 때 책방을 만든 기쁨, 책방을 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물론 이 즐거움은 벅찰 만큼 크다.

 

주인이 없을 땐 손님이 주인이지

코로나 시대는 비대면 산업의 규모를 극대화하고 있다. 오프라인, 사람들이 모이는, 직접 찾아가는 경험은 어려워져서 점점 귀한 경험의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는 책방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공간과 사람, 이야기의 이해를 높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낯선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느끼게 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는 만나지 말라고 하고, 만나더라도 대화를 삼가라고 하고, 가까워지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없는 걸까?


 7월부터 가가책방 무인화의 방법들을 찾고 있다. 어떤 방식이 최선인지 모르니 열심히 고민하고 시도하는 중이다. 그 시도의 와중에 오프라인 공간, 소도시 책방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 경험을 했다.


 주말이지만 가족 일로 지방 도시에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내려간 날 밤 메시지가 왔다. 내일 가가책방에 들르려고 하는데, 혹시 문을 닫는 건 아니겠지라는 내용이다. 이미 지방에 내려와 있고 다음 날이 아닌 그다음 날에야 돌아갈 예정이었기에 사정을 전하고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려운 걸음이 헛걸음이 되는 게 슬퍼져서 다음 날 방문 예정이시면 도착해서 연락을 달라고 했다. 책방 문은 비밀번호 자물쇠로 잠겨 있으니, 그 번호를 알려주고 간단히 불을 켜고 이용하는 방법을 전해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실제로 다음 날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잘 이용했다는 장문의 편지와 좋아하는 책 속 문구를 써서 남겨두고 떠나셨다.

 같은 날 다른 분이 전화로 연락해 왔다. 마찬가지로 이용 방법을 알려드렸고, 손님은 주인 없는 책방에 머물다 갔다. 그분들이 남긴 메시지에는 책방 단골손님들이 등장했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고양이가 따라왔다는 얘기.

 

 공간이 없었다면, 그 공간이 책방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을 서로 나누어 갖는 일이 벌어진 거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변한다. 이 말은 너무 당연해서 늘어놓으면 바보처럼 보이는 말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변화는 무시하고 기존 관념을 따라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철학이 없이 관념을 따른 결말은 도태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도태를 택하는 이들을 보듬어 주지 않을 거라는 예측을 내놓는다면 너무 냉정한 걸까.

 

지금 이 시대는 주위를 둘러봤을 때 아무도 없어야 안심하게 되는 시대인 듯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감정,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는 여전히 존재할 거다.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만나지 않았지만 만난 것과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언제든 연결되었을 때, 만나게 됐을 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매개 공간.


 소도시 책방은 그런 매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연결되지 않고도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당장은 완전하지 못해도 언젠가는 조금 더 완전히 연결될 수 있는 순간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준 거다. 계기는 지극히 사소할 수 있지만 사소한 계기라도 하찮아지지 않기에는 충분하다.


 지금은 약한 연결의 시대라고 한다. 약하지만 강한 혹은 약하기에 강한.


고양이와 친해지는 방법 하나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한 고양이는 적당한 거리에서 더 멀어지지 않을 테니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공주에서 책방을 하는 걸까라는 물음에 계속 답을 해나가는 중이다.

나는 세상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우리만의 영화를 보는 중이다.

 그런 영화를 보려고 여기서 책방을 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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