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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ul 17. 2020

더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데 더 즐겁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공주에서 책방을 하는 걸까

 2020년은 2010년 이후 가장 적게 읽고 있는 해다.

책방 씩이나 하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새로 세상에 나온 책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유명 작가 누구의 신간, 베스트셀러 무엇, 요즘 인기 있는 장르.

그 모든 것이 아직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전, 이름 모르는 먼 대륙의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럼에도 삶은 그 어느 시기, 어떤 순간보다 풍요롭다.

 독서 생활 역시 가난하지 않다. 한 순간도 빈곤이나 배고픔, 허기를 느끼는 일이 없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게 그저, 자연스럽기만 하다.


 고행을 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있었다.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이 힘들다가, 조금씩 나아지다가, 마침내 고행이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거치는 사람.

 그렇게 힘들게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지에 오른 그에게도 고행은 여전히 고행이었다. 고행은 조금도 수월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고행의 절대량이 줄어든 게 아니라 견디는 힘이 자라나 균형을 맞추게 되었다는 거다. 혹은 고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견뎠다는 거다.


 고행을 견뎌내는 걸 그만둔 고행자는 보통의 사람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에 가까워진다는 게 반드시 깨달음에서 멀어졌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행에서 떨어져 나와 보통의 사람이 되어가면서 새롭게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들에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결국 고행만 계속한 사람보다, 고행을 그만두고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이 더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는 게 그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책에 쫓기듯 읽던 때의 나는 고행자와 닮아있었는지도 모른다. 즐거움을 느끼고, 깨달음이 보람되고, 때때로 만족하지만 더 나은 세계, 높은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날이 많은.

 예전에 써놓은 글 중에 <느려도 좋다, 책 천천히 읽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4년 반 동안 거의 10,000번 가까이 조회된 이 글은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도 가장 꾸준히 검색되고, 조회되는 글이기도 하다. 천천히 읽기를 찾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쩌면 빠르게 읽기, 많이 읽기에 조금 지쳐버린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긴 변명이다.

적게 읽고, 천천히 읽는 요즘을 대변하는 짧지 않은 문장이다.


새로운 책, 더 많은 책을 읽는 대신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도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읽는다. 혼자 읽을 때보다 독서모임의 주제 도서로 정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 다 안다고 생각하던 줄거리가 전혀 다른 전개를 맞이하고, 뻔하다고 결론 내린 문장들이 새로운 의미가 된다. 여러 번 읽었던 책조차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느낀다. 다섯 명이 모이면 그 자리에서 다섯 번을 읽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더 적게, 이미 읽었던 책을 읽는데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거다.


서울에서 독서모임을 할 때보다 공주에서 독서모임을 진행하는데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종종 믿지 못하겠다. 무척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게 현실. 지극한 현실이라 기쁘다.


 작품에 대해 깊이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과는 또 조금 다른 부담 없이,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이 독서모임을 스스로 기획하고, 손수 만든 공간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을 때도 있다.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

그게, 나다.


 더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데 더 즐거운 이유는 더 많이 있을 거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사람이다. 모두와 함께 하기에, 마음껏 즐거울 수 있다.


 소도시 공주에서 작은 책방을 한다. 늘, 모든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특별히 어렵다거나 힘들어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가뿐하게 맞이하고 보내고 있다는 건 진실이다.

 

누군가는 덜 욕망하기에 더 행복한 거라고 현재의 나를 진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욕심쟁이라 덜 욕망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아마 조금 다르게 욕망하고, 다르게 행복을 느끼는 거겠지.


 앞으로도 한동안, 어쩌면 앞으로 제법 오래, 지금처럼 더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며 책방을 운영할 예정이다. 견디기에 익숙해진 고행을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갔던 주인공이 고행과 다르지만 일상과도 다른 삶을 살면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던 것처럼, 어느 날에는 나 역시 지금과 다르게 읽고, 다르게 살게 되는 날과 만나리라.


 그때는 또 그때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겠지.

나는 지금 공주의 작은 책방에서 이 글을 쓰고 마침표를 찍은 참이다.


그늘 속 돌이 시원하다는 건 아기 고양이도 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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