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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Aug 26. 2020

책방, 오래 해보겠습니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공주에서 책방을 하는 걸까

 손님이 다녀간 자리에 이런 메시지가 남아있다.

"사장님, 건강하시고 책방 오래오래 해주세요."

공간이, 책방이 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행복에 겨워 나는 쓴다.


 도서정가제 논란이 뜨겁다. 

물론, 찻잔 속의 태풍처럼 다수의 이슈가 아닌 소수의 이해관계자와 해당 이슈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뜨거운 거겠지만.

 

 2014년 강화 시행된 도서정가제는 도서의 시장 가격과 할인율을 규제했다. 양서 출간의 장려, 출판시장 안정화, 동네서점 살리기가 주 목표로 제시됐다. 당시 책을 많이 사고, 많이 읽던 독자이자 소비자였던 나는 분개했다. 취지가 무색한 정책의 세부 사항에 대한 반발과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어떤 영역을 심하게 침해하는, 깊이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결론 지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싶어 한다. 이 '합리'에는 적정한 비용을 지불하고자 하는 욕구가 포함된다. 

'적정한 비용'.

이 다섯 글자를 기억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도서정가제에 대한 생각을 먼저 밝히고 시작하는 게 옳겠다. 

도서정가제 폐지에 반대한다. 오히려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지지한다. 

현행 도서정가제의 가장 큰 문제는 완전하지 않다는 거다. 완전하지 않기에 논란의 여지도 크고, 효과를 측정하기도 어려우며, 대의보다 당장 영향력이 '커 보이는' 세력에 휘둘리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 


 현행 도서정가제의 효과나 효과의 근거로 제시되는 동네서점 숫자 같은 건 여기서는 얘기하지 않기로 한다.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말이다.



 도서정가제는 출산장려정책과 닮은꼴이다. 

국가는 경제, 산업, 문화를 아우르는 국가의 발전과 존속에 필요한 자원으로 '인구'를 본다. 인구가 줄어서는 안 되는 이유, 고령 인구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져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 부작용이 국가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국가가 어려워지면 그 불이익은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결국 국민의 안정을 위해 인구와 인구비가 적정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당위성을 얻는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다. 당위와 안정을 위해 누군가가 '불이익' 혹은 '침해'처럼 보이는 걸 감수해야만 하는 모양이 되어버리는 거다. 

 

"청년은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문장인가. 

감수성이나 이해 없는 이 문장은 공격받아 마땅한 불의가 되어버린다.


 실제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결혼도 좋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도 행복한 거야."

그중에는 하나보다 둘, 둘 보다 셋이 더 큰 기쁨을 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확신에 적절한 정책 지원이 더해져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부담이 덜어질 거라는 낙관적인 예측이 가능해지는 편이 이상적이다.

 "왜 결혼하지 않는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이렇게 많은 정책과 혜택이 있는데, 왜!?"라고 소리쳐봐야 소용없다. 그건 사람들이 원하는 게 아니니까, 공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니까.


 도서정가제는 말 그대로 '정가'를 규제한다. 정가를 규제하는 방법으로 할인 제한, 사은품, 이벤트에도 제약과 규제가 따른다. 문제는 처음 강화된 도서정가제 시행 때부터 얘기했던 소비자와의 공감대 형성, 이해, 설득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책을 만들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정작 독자이자 소비자에게는 결론적으로 어느 정도의 희생을 요구하는 모양이 되어버린 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도서정가제 폐지' 요구는 강화 시행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요구의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건 소비자인 독자가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현행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완전 도서정가제로 나아가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부분은 "도서정가제가 출판 생태계를 지킨다"는 당위로 가득한 주장이다. 틀린 주장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빠져있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거다.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최소한 세 가지를 규제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

첫째는 유통의 규제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구매력이 큰 세력은 더 싼 값에 책을 공급받는다. 큰 서점이 작은 서점보다 공급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작은 동네서점은 할인 여력이 없어 도서를 정가에 팔아야만 하는 상황인데 온라인 서점에서는 할인과 적립은 물론 일정 금액 이상이면 무료배송까지 한다. 

'소비자인 나'는 무료배송에 만족하지만 왜 무료배송은 할인이 아닌가? 

강화된 도서정가제는 처음 시행될 때부터 '동네책방 살리기'를 목놓아 외쳤다. 매년 도서정가제 효과로 늘어난 동네책방 숫자를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정말 그래서 동네책방이 많아졌을까?

 도서정가제는 업체 간 유통의 공급비율을 규제할 수 없다. 그건 업체와 업체가 자율적으로 정해야 하는 것이니까. 

 도서정가제는 서점, 책방과 독자, 소비자 간 유통을 규제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책을 사는 사람은 출판 생태계와 문화를 위해 조금 더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고 설득당한다는 거다. 

 

둘째는 가격 거품의 규제다.

'할인율을 고려한 도서 정가 책정'은 독자이자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에는 비일비재했던 모양이다. 50% 할인해서 판매할 계산에서 정가를 두 배로 책정한 후에 반값 할인으로 팔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도서정가제는 재정가를 권했다. 그것도 적극적인 재정가를 권했다.

 단순히 생각해서 강화된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20% 할인해서 팔던 책이 있다면 20% 할인된 재정가가 시행되어야 옳다. 하지만 재정가는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강화 정가제 시행 직전에 반값에 팔아치우던 책들이 양서의 탈을 쓰고 할인 지옥에서 벗어난 거다. 독자이자 소비자들은 책값에 거품이 있는지 아닌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강화된 정가제 시행 이전의 할인과 정가라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갖고 있다. 왜 그걸 쓰지 않는 걸까.


 셋째는 정확하게는 규제라기보다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독자도 소비자다.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싶어 한다. 합리적이라는 건 당장의 이익뿐 아니라 더 나중의 일도 고려한다는 거다. 더 싼 책만 찾는 사람도 있지만 의미 있는 책을 찾는 사람도 많다. 정책, 도서정가제는 거듭 독자, 소비자의 당장의 요구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각해보자. 2000원이라고 하지만 1000 원주고 사 먹을 수 있던 아이스크림을 1550원에만 사 먹을 수 있다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 

 "안 먹고 말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까 적을까.

  왜 그런지 정확하게, 콕 짚어 말하기 어렵지만 할인을 달콤하고, 100원이라도 더 싸게 파는 곳을 찾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존재한다. 하지만 납득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1000원을 더 주더라도 사게 되기도 한다. 

 충분한 이해와 공감에 닿을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시대와 사람은 빠르게 변하는데 조직과 구조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도서정가제가 있어도 어느 책방이 문을 닫는다거나 닫았다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들린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아니어도 누가 책방을 준비한다거나 시작했다는 이야기, 언젠가 책방을 열고 싶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생태계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존속한다. 계속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변하고 사라지는 것도 생태계다. 도서정가제의 취지와 목적과는 별개로 누군가에 도서정가제가 생태계 교란종인 황소개구리 같았을 수 있다. 

 

 나 역시 강화된 도서정가제 방식에 의구심을 품어 왔다. 실효성이 없고, 정책 방향도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희생해야 하는 구조는 출판 생태계를 인질로 잡고 독자를 협박하는 테러 행위처럼 여겨졌다. 

 강화된 도서정가제가 보호하고자 했던 출판 생태계(출판사, 유통사, 서점)는 생태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를 외면해왔다. 결국 그게 다 멀리 보면 독자를 위한 거다는 말은 듣기 좋은 개살구처럼 신소리 같다.  


6년 간 더 많은 양서가 세상에 나오고, 양서를 출간하는 출판사가 더 흥하고, 출판 생태계가 더 다양해지고, 독자들이 더 만족스러운 책과 만났을까. 동네 사람들이 사랑하는 책 공간이 더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을까. 


나는 공주에서 작은 책방을 한다. 

누군가 남겨두고 간 메시지처럼 오래, 변함없이 책방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많은 지지와 도움이 필요하다. 

그게 정가제와 같은 제도일 수도 있고 지자체의 지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책방에 애착을 갖는 사람들의 존재다.


글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이른 아침에 쓰기 시작해서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쓰는 그리 짧지 않은 이 글의 목적은 현행 도서정가제가 문제가 많으니 없애자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가를 규제하거나 정하는 게 옳지 않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글을 시작하며 적은 것처럼 정가제는 점점 나아가서 완전 도서정가제가 될 거고, 되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정가제가 있으면 출판 생태계가 보전될 수 있다거나 정가제의 효과 자체를 부정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기 위함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떠한가, 어떻게 하고 있고, 어떻게 되길 바라며, 어떻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지금이 도서정가제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 시기라고 한다면, 정책의 향방을 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앞으로의 방향을 먼저 생각해줬으면 한다. 단기간의 효과를 위한 정책이 유효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자신이 책임지지 않으리라는 생각, 혹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판단, 누군가의 강한 요청 혹은 압력에 지지 말기를 바란다.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 사회에 양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출판사는 출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기 마련이고, 유통사 역시 유통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며,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 역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원(회원과 홍보, 유통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게 당연하다. 독자 역시 좋은 책을 적정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기를 바라고, 본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더 적은 비용을 들일 수 있다면 한정된 재정으로 더 다양한 책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떤 정책들은 마치 만병통치약을 처방하기라도 하듯 한 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욕구를 지닌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는 듯 보인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만든 좋은 제도라고 해도 악용하는 이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나쁜 것을 없애기 위해 거듭 제약과 제한을 늘려온 결과 우리 사회에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은 규제도 적지 않다.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 지원을 해줘야 하는 분야조차 발목 잡히기 일쑤다. 이번 도서정가제 논란이 전화위복이 되어 제도를 정비하고 시의적절하고 유효한 결과로 이어졌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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