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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Sep 07. 2020

입장료는 후불입니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공주에서 책방을 하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마다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다.


 숨만 쉬는 데에도 돈이 드는 시대다. 숨을 쉬는 데 필요해진 게 늘었으니까. 쌀만 있다고 배가 불러지지 않는 것처럼 공기가 있다고 수월히 숨 쉬어지는 건 아니다. 본의는 아니지만 그런 시대를 산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걸 본다. 

남일 보듯 얘기하지만 가가책방도 나름 분투 중이다. 치열한 고민의 연속 선상에서.

그중 가장 큰 고민은 '계속' 혹은 '지속'에 있다. 

가가책방을 '계속하는 의미'와 '지속하는 방법' 뒤를 따라다니는 물음표에 완전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내내 미루어 왔으므로.


 계속하는 의미는 매일 발견한다. 

처음 책방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가가책방의 존재가 의미 없던 날이 없었다. 내가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날에는 책방을 찾은 사람이 의미를 더해주고 갔다. 사람이 찾지 않은 날에도 무의미하지 않았다. 여전히 책방을 찾고 지켜주는 존재들이 있었으므로. 


 그러나,

의미가 있다고 계속하거나 계속되지는 않는다. 

계속하려면 그만큼의 수고와 비용이 요구된다. 

가가책방은 세상에 속해있고, 그것이 무엇인가가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인 거다.


 지난해 여름 가가책방을 찾은 사람들이 가장 당황했을 부분은 '책을 팔지 않는 책방'처럼 보인 지점이었을 것이다. 팔기 위해 입고한 책이 단 한 종류인 날이 육십일 넘게 이어졌다. 소장하고 있던 책은 '그건 제 책이고, 마음껏 보고 가도 된다'라는 선언 앞에서 전시물품처럼 박제되어 버렸다. 겨울이 될 무렵 비로소 파는 책이 조금 더 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줄어들었다. 

 한 겨울에는 책방 노릇보다 고구마를 굽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사랑방 역할에 더 몰두했다. 덕분에 온기를 가득 머금어 한 여름 땡볕 아래서도 '따뜻한 책방'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리라. 

 

 1년이 넘어가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 전에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심각해져야 했다. 방송에 소개되거나 기사에 등장하는 일은 계속 생겼지만 매번 인터뷰마다 여전히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거나 얼버무려야 하는 하나의 질문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대략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돈은 벌리나요?"

다른 단어, 형태를 빌리기도 하지만 결론은 계속할 수 있는 금전적 원동력을 확보하고 있느냐는 근원에 대한 회의다. 웃으며 '이 공간의 유지비용이 크지 않고, 그 비용은 지금도 채우고 있다'라고 말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문제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조금 더 오래' 계속할 수 있는가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경제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면 투입되는 비용, 노력, 시간에 비례해서 얻어지는 수익, 만족, 결과가 늘어날 때 그 분야 혹은 사업은 계속할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더 큰 이익을 원하지 않는다면 더 큰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왜냐하면 들이는 것에 비해 얻어지는 게 적을 때, 그 상황이 계속 이어질 때, 지치지 않을 인간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결국 지쳐버린다.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혹시라도 취미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라 이익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발전하기를 원한다. 어떤 부분에서 발전하기를 바라는 가는 더 얘기해봐야 하겠지만 그것이 인간이다.


가가책방을 무인으로 운영해보자고 마음먹은 이유 두 번째다.

더 투입할 수 없다면, 현재 상태에서의 최선을 고민해야 한다는 결론.


 첫째 이유는 여러 일정, 다른 일들과 겹쳐 책방을 닫아두고 움직이는 날이 많았던 탓에 헛걸음하는 분이 생겼던 데에 있다. 가까운 곳에서 찾아오는 분들보다 멀리서, 우연히, 일부러 찾아온 분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가책방이기에 더 유연하고 지속적이며 언제든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세 번째 이유도 있다. 가가책방이 워낙 작기 때문이다. 두 명 이상이 방문할 때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혼자 오신 손님의 경우 서로의 숨 쉬는 소리까지 들리는 작은 공간이 편안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무인 운영을 시작하면서 의외의 효과가 나타났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거다. 더욱이 한 번 만난 적 없는 책방지기에게 오래, 계속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분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결과, 흔적이 나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이자, 기쁨, 의미가 됐다.

  

주인이 없으면 고양이가 주인이다


무인운영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한계는 여전했다. 계속하고 지속할 최소 적정 수준의 수익에 대한 고민이 바로 그것. 

 그래서 떠올린 방법이 입장료다. 입장료는 입장하는 비용이니 들어오면서 내는 게 맞지만 나가기 전에 내는 입장료 말이다. 책방을 마음껏 이용하고 즐거움과 만족을 느끼려는 목적으로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단순히 둘러보고 싶었던 사람도 있을 테니 모두에게 같은 비용을 지불하라고 할 수 없었기에 '좋았던 기분, 만족감'에 지불하는 입장료를 생각했다. 


 또 한 가지, 전하고 싶은 게 있었다.

가가책방을 취미나 좋은 취지에서 만들고 유지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 지불할 필요가 없는 것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는 세상이다. 게다가 '공짜'라고 하면 오히려 의심을 사기도 한다. 왜 공짜로 운영을 하지라는 단순한 의문이 어느 방향으로 퍼져나갈지 나는 알 수도, 제어할 수도 없다.


 덥다는 말보다 습하다는 말이 흔하더니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져서 중간 없이 에어컨에서 전기장판으로 계절이 넘어가 버렸다. 코로나는 예측할 수 없게 옮겨 다녀서 가뜩이나 뜸한 발길을 더욱 드물게 했다. 그럼에도 세상 어딘가에 잠시 마음을 쉬어갈 작은 공간 하나쯤은 필요하다. 어딘지 모를 곳에, 우연히 발길 닿은 곳에, 오래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바라며 떠나오게 하는 그런 공간 하나쯤 말이다.


 그렇게 세상에 후불제 입장료가 있는 책방 하나가 생겨났다.

그 책방은 소도시 공주에 있다.

이름은 가가책방이다.


가가책방에 남은 흔적과 자취 그리고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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