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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Sep 24. 2020

다 달라서 다다른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공주에서 책방을 하는 걸까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르다. 

고양이도 저마다 다 다르다.

서로가 다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다 다르다는 걸 수월히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한다. 갈등하지만 서로가 다 다르다는 걸 알기에 화해할 수 있고, 종종 이해하기도 한다. 갈등은 잠시 사그라든다. 그리고 다 다른 이유로 다시 갈등하기를 거듭한다. 

다 담미다.

다른 곳을 보지만 다 담미다. 담미는 고양이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다 담미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담미를 부른다. 다르게 부른다고 다툴 필요는 없다. 나에게는 담미인 거고, 그들에게는 다른 이름의 고양이인 걸 이해할 수 있으니까.


 공주에서 책방을 한다.

책방을 한다고 하지만 진지하게 책방을 하는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소꿉놀이 같을 수도 있다. 

무인으로 운영을 하고, 파는 책은 몇 권 안 되는 데다 주인이 갖고 있던 중고책과 새 책이 섞여있는데 사정을 모르고 들어온 사람이 보기엔 그 책이 다 그 책만 같아서 무슨 책을 팔고 어떤 책을 보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모양이라 더 혼돈의 패닉이 된다. 여기서 진지하게 책방을 한다는 건 책방에서 책을 팔아 수입의 대부분을 충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진지하게 책방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못 된다.


 책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은 누구보다 진지하다고 생각한다. 책이 간단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한다. 유시민 작가가 알릴레오 시즌 3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의 책은 읽어봤지만 방송은 본 적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럼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건 '도서 비평'을 방송 주제로 삼겠다는 소식 때문이다. 전문가와 함께 도서 비평을 하겠다고 하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첫 주제는 도서정가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도서'비평이 아니라 '도서 출판계' 비평이 되지 않을까. 만약 예상처럼 도서정가제가 다뤄진다면 기사로 찾아보는 정도는 하게 될 듯하다. 무슨 말을 누구와 했는지 궁금해질 테니까.


 전문가 얘기가 나와서 떠오른 게 있다. 2014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다.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재논의된다고 '한다'. 그때 전문가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각계 전문가 중에는 소비자 대표, 그러니까 독자 대표도 있다고 한다. 궁금한 건 그 소비자, 독자를 대표하는 이들이 누구일까 하는 거다. 도대체 누구길래 늘 독자들이 체감하는 것과 반대 방향 혹은 다른 방향의 결론이 나오는 걸까 싶은 거다. 올해도 얘기는 했다던데, 누구와 했는지 궁금하다. 그냥 궁금하다는 얘기다.

다 달라 보이지만 셋은 가족이다, 그리고 한 묘 더 있다

 다른 게 너무 많은 관계로 오늘은 책을 사는 사람들을 독자로 볼 것인지, 소비자로 볼 것인지를 얘기해보기로 하자.


 물어보자. 독자는 독자인가 소비자인가.

그전에 이렇게 물어보자. 

책은 공공재인가, 소비재인가.


 개인 '나'는 책을 소비재로 정의한다. 왜냐하면 소비재인가 공공재인가를 정하는 기준을 '생산자의 목적'에 두기 때문이다. 책을 생산하는 건 출판사다. 저자가 아니라? 그렇다. 책의 생산에 작가가 크게 기여하고 깊이 개입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고 읽는 단행본으로의 '도서'를 생산하는 최종 권한자는 출판사다. 가격을 정하고, 마케팅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대부분 출판사가 한다. 물론 공공재의 성격을 띠는 책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비율은 높다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터무니없이, 비교할 수 없이 낮은 게 현실이다. 

 출판사는 회사다. 도서를 출간하는 회사다. 거의 모든 회사의 최대 목적은 이윤 추구다. 때로는 이윤의 극대화가 최대 목표가 되기도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한 갈래인 출판사가 생산하는 제품인 도서는 상품이다. 출판사는 팔릴만한 도서를 생산하기 위해 애쓰고, 더 많이 팔기 위해 애쓰며, 더 오래 팔리게 만들기 위해 애쓴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영상, 이슈 활용. 

그 모든 활동의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판매 촉진이다. 판매 촉진의 결과는 이윤의 증가다. 

 출판사는 팔릴만한 도서를 팔기 위해 생산한다. 시대와 시기에 따라 출간되는 책의 종류와 내용이 달라지는 건 소비자들의 성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수를 점하는 소비자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재료를 고르고, 판매를 홍보하는 방식도 변화시킨다. 이게 다 도서가 상품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출판사는 책을 소비시키기 위해, 더 많이 소비시키고자 소망하면서 도서를 생산한다. 물론 사명감으로 도서를 출간하는 출판사도 얼마든지 있다. 그야말로 많지 않은 독자를 위해, 출간을 염원하는 소수를 위해 손해가 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거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경제 논리에 반한다. 반복되면 회사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고, 오래되면 회사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재가 아닌 도서를 생산하는 출판사는 존속할 수 없다. 도서가 소비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약 도서가 공공재라면 그 도서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만 한다. '가치 있다'라고 여겨지는 책을 살리기 위해 공공의 재산,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거다. 일부 도서가 그런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고 존속한다. 하지만 그 비중은 유의미할 만큼 크지 않다. 


생산자의 입장을 정리했으니 소비자의 입장도 들여다보자. 

소비재인 도서를 구매하는 독자는 소비자인가. 

그렇다.

독자는 자신의 재화를 소모해서 도서를 구매한다. 이유는 다 다르다. 하지만 그 도서에 어떤 가치를 부여했기에 재화의 손실을 감수하고 도서를 구매한다.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더 고차원적인 소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팬심, 가치 존중, 희생, 기여. 재화로 측정하기 힘든 내면의 가치라는 의미를 담아 도서를 구매하는 거다. 하지만 이 행위조차 대부분 지극히 사적이다. 단순한 희생이나 헌신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충족하는 가치 소비 행위라는 거다.


 생산자인 출판사가 소비재로 도서를 출간하고, 독자인 소비자가 소비 행위로써 도서를 구매하는데 독자가 소비자가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재화를 소진해가며 책을 얻어가는 사람들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정가제의 필요성이 공감을 얻고, 효과 역시 증명됐다고 하자. 정가제를 지켜내는 게 출판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라는데 어느 정도 공감하고 또 지지하는 바라는 건 여러 번 밝혀왔다. 하지만 생태계란 게 무엇인가. 상호작용이다. 작가와 출판사와 서점과 독자 모두의 상호작용이다. 그렇다면 이 생태계에서 독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어린 날에 배운 생태계는 피라미드 형태였다. 생산자가 가장 아래에 있고 최종 포식자가 정점에 있었다. 독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생산자가 뿌리내린 토양인가 생태계의 최상층인가. 


 지금의 도서정가제 논란에서 독자의 자리는 생산자의 아래, 토양쯤 되는 것만 같다. 물론 독자는 출판 생태계의 토양 역할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층위의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시대와 맞지 않는 책을 도태시키는 최종 심판자, 최정점의 포식자에 어울린다.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은 세상에 나올 수도 없는 시대니까 말이다.


 독자들은 상상하는 것보다 성숙하다. 자신에게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실패와 실수를 넘어가며 알아간다. 성장하는 독자들을 배제한 채 논의를 이어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줄어든다. 책을 읽는 사람도 줄어든다.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는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돈을 쓰고 시간을 들일 가치 있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시대가 변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시대착오적 인물이 된다. 우리 중 돈키호테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비를 한다. 가치를 부여하고 의미를 두는 지점도 다 다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만날 사람들은 만난다. 꾸준히 가다 보면 어딘가 목적한 자리에 다다른다.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고 말았지만 결론은 독자가 소비자라는 거다. 의식 있고, 가치를 아는. 어쩌면 보통 소비자들보다 조금 더 현명한 소비자라는 거다. 부디 알아줬으면 좋겠다. 만약 독자가 화가 났다면, 화가 난 독자가 여럿이라면, 그 화가 난 여러 독자가 책을 더 많이 사고 읽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엉뚱하지만 여기에 동네 책방, 작은 책방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가치 있는 걸 알아보는 눈이 있으니까. 책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킬 힌트는 역시 책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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